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미국 군산복합체’ 장단에 춤추는 ‘대한민국 보수기득권’

댓글 1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39

뉴욕타임스 ‘삭간몰 비밀 기지’ 보도 파장

8개월 전 상업용 위성사진 근거로 ‘거대한 속임수’ 주장

청 대변인 “군사위성 면밀 주시···새로운 것 하나도 없다”

트럼프 “우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새로운 것 없다”

정세현 “미 실무자들 군산복합체 먹이사슬 들어가 있다”

이른바 보수 ‘문재인 정부는 북한 대변인’ 색깔론 공세

1980년대 전두환 시절 보도지침 만들고 따르던 사람들

국익 외면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기득권 세력



지난 한 주 <뉴욕타임스>의 ‘삭간몰 비밀 기지’ 보도로 인한 파장이 요란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과 우리나라 내부에서 어떤 사람들이 북-미 대화를 방해하고 갈등을 조장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미국에서는 군산복합체 먹이사슬에 들어가 있는 실무자들, 한국에서는 분단 체제에서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온 정당과 언론입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건의 경과를 <연합뉴스> 보도와 몇 가지 자료를 이용해 간략히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였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 내에 미신고된 것으로 추정되는 20곳의 미사일 기지 가운데 최소 13곳을 확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16곳의 비밀 기지를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했다며 특히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일대의 미사일 기지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보고서가 연구소 빅터 차 한국 석좌가 주도하는 ‘분단 너머(Beyond Parallel)’ 프로그램 보고서라며 “위성사진은 북한이 큰 속임수(great deception)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습니다.

‘큰 속임수’라는 표현이 문제였습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전 세계를 완전히 속이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북핵 문제는 미국보다 우리가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몸이 단 기자들이 청와대에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아침 브리핑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청와대 안보실과 논의한 내용입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CSIS 보고서 출처는 상업용 위성인데 한미 정보당국은 군사용 위성을 이용해서 훨씬 더 상세하게 이미 파악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면밀하게 주시 중인데, 새로운 건 하나도 없습니다. 삭간몰에 있는 미사일 기지라고 하는 건 단거리용입니다.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입니다. ICBM, IRBM과는 무관한 기지입니다.”

“기사 내용 중에 ‘그레이트 디셉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북한은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미사일 기지를 폐지하는 게 의무 조항인 어떤 협정, 협상도 맺은 적이 없습니다. 이걸 기만이라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표현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기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협상을 조기에 성사시켜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신고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고를 해야 할 어떠한 협약, 협상도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고를 받은 주체도 없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런 북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 북미 대화를 비롯해서 협상과 대화의 필요성을 더 부각시키는, 더 보여주는 그러한 사실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로 진화에 나섰습니다.



“부정확하다. 가짜뉴스다. 우리는 언급된 장소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새로운 것은 없다. 비정상적인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도 ‘북한 미사일에 관한 <뉴욕타임스>의 사실 오도 기사’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안보협력프로젝트 국장의 글입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건전한 보도 대신 극단적인 과장법을 사용한 것이 아마도 이 기사를 1면에 올릴 수 있도록 편집자들을 설득했겠지만, 독자들에게는 해가 된다. 미국과 북한은 아직 북한의 미사일 배치를 억제할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다. 사실을 과장하고, 평양의 배신을 미리 비난하고, 본격적인 핵 외교 노력에 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말고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의 제거와 억제에 관한 협상에서 할 일은 아주 많다.”



빅터 차는 반박에 나섰습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글을 리트윗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삭간몰 기지)은 가동 중이며 BM(Ballistic Missile·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당신이 그 장소들(북한의 미사일 기지들)에 대해 알 수도 있지만, 과연 그 장소들이 북한의 신고에 포함될까?”



그는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을 반박했습니다.



“어떻게 한국(ROK)이 북한의 미공개 미사일 운영 기지를 변호할 수 있느냐. ‘가짜 외교’(fake diplomacy)를 위해서? 북한의 무기 보유에 대한 이러한 합리화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번 보고서에 대한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뉴욕타임스> 보도나 빅터 차의 주장과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이번 보고서 내용에 관해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지만 ‘걱정할 이유’(cause for concern)는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미 CBS 방송이 전했다.

에이브러햄 덴마크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이러한 사실이 놀라운 소식(surprise)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상외교들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오늘도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켈시 대븐포트 군축협회(ACA) 비확산정책국장은 “흥미롭지만 놀랍지는 않은 보고서”라며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단지 장거리 미사일 시험의 중단을 자발적으로 약속했을 뿐”이라고 논평했다.



저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뉴욕타임스>와 빅터 차가 북한의 위협을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되게 평가하는 이유가 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은 평생을 남북회담과 북미대화에 직접 참여하고 연구해 온 사람입니다.

지난 15일 아침 일찍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비핵화 대책 특별위원회 창립 회의가 열렸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이 기조 강연을 했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핵 문제에서 미국이 리비아 방식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며 우리 정부의 비상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강연했습니다. 강연 내용 중에 <뉴욕타임스>와 미국 실무자들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페이크 뉴스를 내놓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페이크 뉴스라고 규정한 게 정말 다행이다. 아니 3월29일에 찍은 사진으로 이렇게 몰아가는 게 어디 있나?

이번에 <뉴욕타임스>에 실망했는데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클린턴 대통령에게 지지받고 금강산 관광을 지시하던 때다.

98년 8월18일에 <뉴욕타임스>에서 북한이 별도 핵 활동을 하고 있다며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 전화에 의하면’이라고 기사를 냈다. 북한은 그런 일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미국 고위층은 사진까지 나왔는데 우기지 말라고 했다. 클린턴 정부가 왜 끌려가느냐고 비판을 받던 때다. 북한이 ‘누명을 씌우면 어떻게 하느냐. 와서 봐라. 아니면 어떻게 할래. 명예훼손죄로 뭘 내놓을 거냐’고 했다. 식량 60만톤 주고 들어갔다. 봤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이 속인 것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페이크 뉴스로 여론몰이 해서 클린턴 정부의 소위 햇볕정책 지지를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저는 후자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뉴욕타임스>가 그때도 보도해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도 그 짓을 했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바로 불을 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은 그간 핵 문제가 터진 이후에 북한의 핵은 ‘나쁜 행동’이라는 성격 규정을 하고 있다. 나쁜 행동에 대해 ‘이건 있을 수 없다. 나쁜 행동을 하고 무슨 보상을 달라고 하나. 감히 네까짓 게 핵을 가지려고 하냐’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합의했지만, 트럼프가 잘 몰라서 김정은에게 넘어간 것이고 실무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 문제는 그렇게 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실무자 생활을 많이 해 봤지만, 대통령이 지시하고 좋은 말을 해도 실무자들이 애먹이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

그리고 미국 실무자들은 퇴직 후를 생각한다. 군산복합체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군산복합체 먹이사슬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긴장이 유지되고 무기시장이 유지되는, 나아가 확대되는 쪽으로 상대방의 협상 전략을 분석한다. 그리고 시장 확대될 수 있는 쪽의 대책으로 대통령도 흔든다. 처음에는 빨리 해결한다고 하다가도 서두르지 않겠다, 북한이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겠다 밖에 안 된다. 그래서 걱정하는 것이다. 아니길 빈다.”



정세현 전 장관의 분석에 의하면 이번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빅터 차가 바로 군산복합체에 먹이사슬로 연결된 실무자인 셈입니다. 정세현 전 장관은 16일 <티비에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빅터 차에 대해 조금 더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김어준 : 그러니까요. 북한이 속이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한마디로.

정세현 : 그렇죠. 북한이 속이고 있는데 트럼프가 모르고 그걸 당하고 있다. 그러니까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6월12일 이후에 그런 일을 했다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북한이 미국하고 협상하면서 약속한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엔진을 해체하고 발사대를 해체하겠다는 겁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단거리미사일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그러니까 빅터 차는 또 어떻게 한국 정부가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가져도 된다는 식으로 변호를 하느냐고 하는데 모든 미사일 기지를 없애야 된다는 식으로 한다면 그건 군비감축협상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김어준 : 그렇죠.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군비감축 하자고.

정세현 : 그러니까 미사일 문제는 남북 간에 동수로 이걸 감축을 하라는 군비협상을 해야 되고 그건 평화협정이 시작되면 자동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문제예요.

김어준 : 그다음 단계인 거죠.

정세현 : 그렇죠.

김어준 : 완전히 섞어 버렸어요.

정세현 : 섞어 버렸죠. 그러니까 이게 국제 정치나 외교 문제에 있어서 시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 아까도 조금 전에 변호사 나오셔서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느냐 가지고 법정에서도 판결한다고 하는데 국제 정치 사건은 시간이 굉장히 중요해요. 사진 자체가 16년 3월 거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것이 아닌데 이걸 섞어서 얘기를 하고. 장거리미사일 ICBM과 단거리미사일도 섞어 버리고.

김어준 : 미사일이라는 단어가 똑같다고. 완전히 다른 건데.

정세현 : 빅터 차는 무슨 섞어찌개집 주인이에요? 웃을 일이 아니에요.

김어준 : 일반인들은 헷갈리죠.

정세현 : 그런 식으로 해서 소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자기 논리를 내려 먹이려고 하는 그런 방법이 있긴 있어요.

김어준 : 자기는 그걸 충분히 구분하면서 일부러 일반인들은 헷갈리라고.

정세현 : 그렇게 되면 학자들의 분석이 아니라 정치인의 선전선동이 되는 거예요.

김어준 : 맞습니다. 저는 빅터 차가 이번에 정치를 했다고 봅니다. 학자의 주장을 한 게 아니라.

정세현 : 그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은 없는데 CSIS는 옛날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혈통이 한국 아닙니까? 친척들도 여기 살고 있을 거예요. 아무리 시민권자지만 그럴 수 있어요, 고국에 대해서? 고국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남 말 하듯이 전쟁 나도 좋다, 때려 부숴라, 이런 식의…

김어준 : 예전에 그런 말을 했었죠. 예전에 북한 타격 얘기했었죠. 맞습니다. 자, 그리고 게다가 CSIS 자체도 또 미국 군수업체 그리고 특히 펀드를 대는 일본 쪽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정세현 : 그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

김어준 : 다 아는 일인데 잘 안 알려져 있어요. 전문가들이나 알지.

정세현 : 우리 국민들이 그것까지는 잘 모르죠. 일상생활에 바쁜데 뭐 그것까지 알겠어요?

김어준 : 그런데 알아야 되는 사안이 됐어요.

정세현 :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모든 기사는 정보원이 있잖아요. 소위 정보원이 뒤로 어느 쪽으로 물줄기가 연결되어 있는지, 어느 쪽으로 끄나풀이 연결되어 있는지 그것도 중요합니다.

김어준 : 정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제공됐는지를 알아야 되니까.

정세현 : 말하자면 친북 성향의 인사가 한 얘기와 반북 성향의 인사가 한 얘기는 완전히 화살표가 다르잖아요. 의도도 다르고. 그러니까 미국에도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사실상 대변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국내에도 많아요.

김어준 : 그렇죠. 국내에도 많죠, 사실. 왜냐하면 긴장이 고조되면 무기가 잘 팔리니까요. 긴장이 유지되면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무기 판매가 가능하니까.

정세현 : 간단히 말해서 지금 군산복합체와 그 이익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비핵화가 되어 버리면 무기시장이 반으로 확 줄어요, 한국의 무기시장이. 대한민국이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무기를 제일 많이 사들인 나라입니다.



정세현 전 장관의 이런 시각은 사실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1998년 2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김대중 정부 청와대 출입 기자였습니다. 당시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사람들은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미국 내부 세력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햇볕정책 방해 세력의 정체를 그들은 ‘군산복합체’라고 파악했습니다. 전쟁과 긴장을 먹고 사는 군인들뿐만 아니라, 무기 생산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미국의 정치인, 경제인, 학자들이 바로 군산복합체의 구성원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한 우리나라 내부의 파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의겸 대변인의 13일 오전 논평에 대해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이런 논평을 했습니다.



청와대는 북한 비밀 미사일 기지에 대한 도를 넘은 옹호로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

“성적 올리겠다고 약속했으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건 약속하지 않았어도 당연한 것이다. 협정이 없으니 약속 위반이 아니라는 청와대 대변인은 과연 누구의 대변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와 함께 미사일과 같은 운반수단의 폐기를 포괄하는 것인데 청와대가 북한 미사일 기지를 옹호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의 논평입니다.



南은 北으로 귤을, 北은 南으로 미사일 날릴 준비?

“문제는 미사일 기지발견에 대해 “북한이 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해당 기지를 폐기하는 게 의무조항인 어떤 협정도 맺은 적이 없다”며 북한을 두둔하고 나선 청와대의 인식이다.

두둔할 것을 두둔하라.

문 정부의 치명적 약점은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비밀 미사일 기지 발견은 북한의 실질적 위협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재완화’, ‘제재완화’만을 무한 반복하는 문재인 정부가 참으로 걱정이다.”



다음 날 아침 신문 사설 제목입니다.

<조선일보> 정권의 北 대변인 행태 도 넘는 것 아닌가

<중앙일보> 변하지 않은 북한, ‘문제 없다’는 청와대

<동아일보> 비핵화 팽개친 미사일 기지···그래도 北 대변하는 靑 대변인

이른바 보수 정당의 논평이나 이른바 보수 신문의 사설이나 맥락은 비슷합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의 진위에 대한 판단은 대충 넘기고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편만 든다는 색깔론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내 다른 많은 전문가의 평가에 따라 <뉴욕타임스> 보도는 과장이었던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설 때문에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북한을 지나치게 ‘대변’해 주었다는 인상은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른바 보수 세력이 처음부터 노린 정치적 효과는 충분히 거둔 셈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이른바 보수는 미국 군산복합체의 장단에 맞춰 한바탕 춤판을 벌인 셈입니다.

이른바 보수가 해외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우리나라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을 북한 편들기로 깎아내리는 현실을 보면서 저는 엉뚱하게도 1980년대 보도지침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부의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이 하루도 빠짐없이 각 언론사에 내려보낸 홍보조정 지침입니다. 용기 있는 언론인과 재야인사들이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의 보도지침을 입수해 폭로했습니다.

당시 보도지침 내용 중에는 해외 언론의 기사를 국내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도하지 말라는 지침이 꽤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1985.12.26.

와다 하루끼(반한 일본 지식인)가 이끄는 일본 지식인 단체에서 ‘창비’ 복간 건의와 전 대통령에게 탄원서 제출(외신보도)한 사실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1986.1.14

워싱턴 AFP통신이 보도한 ‘남북한 인권 상황 비교분석’은 보도하지 말 것

1986.1.30.

김대중, 로이터 통신과 회견한 내용, 일체 보도하지 말 것



자유한국당은 전두환 정권의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당입니다. 또 이른바 보수 성향의 신문사 대부분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 통제를 받아가며 신문을 제작하던 언론사들입니다. 그랬던 정치 세력과 신문들이 이제는 <뉴욕타임스>의 부정확한 보도는 믿고, 우리나라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은 믿지 못하겠다는 이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보수는 오랫동안 분단 체제에 기생해서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취해 온 분단 기득권 세력에 가깝습니다. 안보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안감을 이용해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를 교묘히 방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틈만 나면 문재인 정부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가끔은 이들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심마저 듭니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대한민국 전체의 국가 이익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가 훨씬 더 소중할 것입니다. 한반도 분단 체제의 기득권 세력이 미국 군산복합체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을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자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참 서글픈 일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