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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주인 눈엔 '순둥이', 남들 눈엔 '맹견'… "우리 '개'는 안 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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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맹견①] 반려인구 1000만 시대, 맹견 관리는 허술

견주가 없는 사이 오피스텔 문밖을 나섰던 생후 6개월 된 로트와일러 품종 맹견이 마취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맹견 관리에 경각심을 주고 있다. 반려동물 양육인구가 1000만명에 가까워져 왔으나 그에 맞는 제도와 문화는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로트와일러의 견주는 지난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제 태어난 지 6개월 된 귀여운 아기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에 따르면, 개는 자동 도어락 레버를 발로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주민신고로 출동한 119안전요원이 쏜 마취총에 맞아 숨졌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꼭 마취총을 쐈어야 했나” “과도한 조치로 개가 죽었다”며 분노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로트와일러는 맹견이다. 맹견이 견주의 관리 없이 혼자 바깥에 나가게 하면 어떡하냐”고 지탄하는 목소리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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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맹견 외출 시 목줄-입마개 필수... 어길 시 300만원 이하 과태료

로트와일러 품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맹견 중 한 종이다. 한국애견협회에 따르면 평균 체고 58~69cm, 체중 40~50kg의 대형견으로 개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생후 6개월이면 평균 체고의 약 80% 정도 크기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로트와일러가 주인에겐 생후 6개월 ‘강아지’이지만, 주민들에겐 위협적인 맹견으로 느껴졌을 거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맹견 관리 기준을 엄격하게 올려놓았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맹견은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 5종과 그 잡종으로 규정된다.

법률상 관리자 없이 맹견이 홀로 밖에 나가게 해선 안 된다. 또한 견주가 생후 3개월이 넘은 맹견과 외출할 때는 목줄과 입마개를 착용시키거나 탈출방지용 이동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맹견 사육이 엄격히 제한되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특수학교 등의 출입도 금지된다.

맹견소유자가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하면 부과하는 과태료도 현행 50만원 이하에서 300만원 이하로 상향된다. 반려견이 사람을 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상해를 입히거나 맹견을 유기했을 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러한 법규정은 내년 3월 21일부터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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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아이를 물어 사살된 개. 연합뉴스


◆급증하는 반려견 안전사고... 피해자 5명 중 1명이 어린 아이

급증하는 개물림 사고도 맹견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분석이다. 지난 3월 경북 상주에서 70대 여성이 3년간 기른 도사견에게 밥을 주려다 크게 물려 숨졌다. 2016년 6월 충북 청주시에선 2세 여아가 핏 불테리어에 물려 목숨을 잃었다. 도사견, 핏 불테리어 등은 모두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맹견이다.

개물림 사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소비자원 발표를 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간 반려견에 물렸다고 신고가 접수된 건수는 총 6012건이다. 2016년 1019건에서 2017년 1408건으로 전년 대비 약 38.2% 증가했다. 피해자 5명 중 1명은 어린이들이었으며 머리, 얼굴 부위를 가장 많이 물렸다.

상황이 이렇지만 목줄 등 반려견 안전조치는 소홀한 분위기다. 지난해 서울시 발표를 보면 반려견이 목줄을 하지 않아 적발된 사례는 한강공원 11곳에서만 연간 4만건에 달한다. 지난달 12일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자료를 보면 한강공원 내 ‘반려견 매너(펫티켓)’ 위반행위 과태료 부과 건수는 올해 9월까지 231건으로 지난해 총 부과건수인 204건을 이미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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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들개’ 되는 맹견... “공격성 강해질 수 있다”

‘멋지다’는 이유로 맹견을 무턱대고 입양했다가 무책임하게 유기하는 일도 사회적 문제다. 전문가들은 맹견이 야생화하면 공격성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6월 광주시 서구 한 축사 앞에 핏불테리어 2마리가 유기된 채 발견됐다. 몸무게가 30kg 정도로 작은 송아지만 한 덩치였다. 한 마리는 묶여있었으나 한 마리는 목줄이 풀려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시 유기동물 구조팀 소속 A씨는 “3년 동안 구조-포획을 하며 핏불을 많이 접했지만 이렇게 공격적인 개들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축사 근처에는 유치원이 있어 자칫 공격성 강한 핏불테리어에 의해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최근 6년간 버려진 반려동물은 51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8만마리가 길거리로 내몰린 셈이다. 지난 9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손금주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총 51만7407마리의 반려동물이 유기됐다. 개정된 동물보호법상 맹견을 유기한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해외선 맹견 엄격히 관리

국내의 미성숙한 반려견 문화가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된다는 비판도 크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맹견에 의한 인명사고 발생 시 견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심지어 개를 안락사시키는 경우도 있다. 독일은 맹견을 1, 2급으로 분류한 19종으로 규정해놓았다.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등 4종은 아예 키울 수 없다. 사전에 공격성 등을 확인하는 기질테스트를 거쳐 입마개를 할지 말지 결정한다.

영국에서는 맹견을 사육하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개물림 사고 발생 시 법원은 견주에게 최고 징역 14년까지 선고 가능하다. 맹견 견주는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미국에선 목줄을 채우지 않은 반려견이 사고를 내면 견주가 1000달러 벌금형이나 6개월 이하 징역형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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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된 것으로 보이는 대형견. 김경호 기자


◆전문가들 “맹견 사고 견주들 책임 커... 훈련은 선택 아닌 필수”

전문가들은 맹견 안전 관리 제도의 확충도 필요하지만 반려견주들의 의식 제고가 급선무라고 꼬집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구조119’의 임영기 대표는 15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훈련 교육을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진행하는 게 문제”라며 “특히 맹견은 미리 견주가 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걸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생각한다. 견주들이 개를 컨트롤할 수 없어 사고가 자꾸 발생하는 것”이라고 교육 문화 확산을 촉구했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은 이날 통화에서 “이번 로트와일러 사건에서 가장 억울한 건 사실 견주가 아니라 개”라며 “로트와일러, 핏불테리어 등 맹견은 운동량이 많이 요구되는 개인데 이런 지식 없이 키우는 반려인들이 많다. 이런 개들은 충분히 에너지를 발산시켜주지 않으면 뛰쳐나가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박 총장은 “해외 선진국에선 맹견뿐 아니라 반려견들에게 제대로 된 훈련을 하는 게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개를 키우기 전에 그 개를 자신이 키울 수 있는 환경인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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