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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빨간날]12시 점심시간…"낮잠 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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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잠 못 드는 사회-②]돈 내고 수면공간 빌리는 '수면 카페' 인기 직접 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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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수면카페 내부의 모습. 조용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공간은 좌석 별로 칸막이가 있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됐다. /사진=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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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1874~1965)은 "내 활력의 근원은 낮잠" 이라고 말했다. 처칠은 독일군이 공습을퍼붓는 와중에도 점심식사를 마치면 군복을 벗고 낮잠을 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전쟁통에서도 '충분한 수면'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매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며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처칠의 낮잠은 한가한 소리로만 들린다. 잠을 잘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부족하기 때문. 이에 일부 직장인들은 아예 점심식사를 포기하고 수면카페를 찾아 돈을 내고 잠을 사기도 한다.

◇바쁜 직장인 "잠이 모자라"

한국인의 수면부족은 이미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인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41분에 불과하다. OECD 평균(8시간22분)보다 41분이나 덜 자는 것으로 1년으로 따지면 1만4965분이나 된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무려 10일 넘게 깨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직장인 수면시간은 더 짧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4월 직장인 773명을 조사한 결과 직장인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에 불과했다. 바쁜 업무는 물론 잦은 야근과 회식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 실제 지난 7월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209시간(평균 1795시간)에 달했다. 가장 근로시간이 짧은 것으로 조사된 독일(1356시간)에 비해 1000시간 가까이 일한 것이다.

바쁜 일상으로 생긴 만성 수면부족은 고통을 낳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부족은 비만과 당뇨, 심장질환, 우울증 등의 각종 질병과 연관 깊다. 심할 경우 치매까지 부를 수 있다. 효율적인 업무에도 지장을 준다. 직장인 김모씨(33)는 "잠이 부족해 두통이 심해져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며 "못다 한 일을 마무리하려고 야근하면 또 수면시간이 부족해 악순환의 반복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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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면부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최근 수면산업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수면과 경제를 합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다. 개인의 신체·습관에 맞춰 최적화된 수면을 돕는 각종 용품이나 수면 유도 서비스 등이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수면산업 시장 규모는 2조원으로 추정된다.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지만 매년 규모가 커지고 있다.

◇수면부족사회, 돈으로 잠을 산다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일정 비용을 받고 수면 공간을 대여해주는 서비스인 '수면 카페'다. '빠르게 힐링한다'는 뜻으로 '패스트힐링'(Fast healing) 으로도 불린다. 짧은 낮잠으로 수면을 보충할 수 있어 많은 직장인들에게 인기다. 회계사 김모씨(28)는 "점심을 포기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수면카페를 이용한 적이 있다"며 "쌓여 있는 피로를 풀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낮잠을 사러 간다는 수면카페는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를 찾았다. 수능 시험으로 온 나라가 조용했지만 증권사를 비롯, 많은 기업이 밀집한 여의도의 지하철과 거리는 직장인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직장인의 표정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수면카페는 증권가 한복판에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서 본 첫 모습은 여느 카페들처럼 밝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벽에 걸린 메뉴판은 일반 카페와 달리 '잠'을 팔았다. 안마의자 30분과 음료 1잔이 7500원이었고 편한 자세로 잠을 잘 수 있는 리클라이너가 1시간에 6000원이었다. 직장인 평균 점심값 7000~8000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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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찾은 수면카페에서 안마의자를 체험했다. /사진=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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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안마의자를 선택해 실내화로 갈아신은 뒤 안내를 받아 안마의자가 비치된 방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의 커다란 방에는 수십 개의 안마의자가 놓여 있었다. 안마의자마다 커튼이 달려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개인적인 공간이 보장됐다. 리클라이너룸 역시 마찬가지로 프라이버시가 보호됐고 기기마다 TV가 달려 있는 등 꼭 잠이 아니더라도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오전 11시30분 서비스를 받는 중 계속해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달려온 손님들이었다. 정오가 되자 리클라이너룸은 복도쪽을 제외하고 만석을 이뤘다. 카페를 찾은 여성 동료 직장인 세 명은 함께 카페를 방문해 자연스럽게 각자 원하는 곳으로 흩어져 휴식을 취했다. 카페 관계자는 "총 60석 정도인데 월요일을 빼면 평일 낮에는 직장인들로 거의 꽉 차서 기다리는 손님도 있다"며 "아예 정액권을 끊고 자연스럽게 점심시간마다 찾는 직장인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이어 "점심시간이 지나면 인근 자영업자들이 들러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딱 20분이면 보약 한 첩

수면카페는 여의도뿐 아니라 강남, 광화문 등 서울 내 직장인 밀집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신한트렌드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면카페 등 패스트힐링업의 2016년 카드 결제액은 전년 대비 135%나 성장했다. 2015년 국내 최초로 수면카페를 연 '미스터힐링'은 3년 만에 가맹점 수가 100개를 돌파했다. 여의도 CGV는 지난해 중단한 '시에스타'(Siesta·낮잠) 서비스를 직장인들의 성화에 다시 재개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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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은 '개인적인 공간'에서 '낮잠'을 즐길 수 있어 수면카페를 찾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찾은 수면카페처럼 대부분의 시설이 조명을 낮출 뿐 아니라 칸막이나 커튼 등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놓았기 때문. 서울 강남구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모씨(28)는 "회사에 휴게실이 있긴 하지만 마음 놓고 잠을 자기에 눈치가 보여 조금 걷더라도 수면카페를 찾는다"고 말했다.

잠깐의 낮잠이 지친 몸의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도 직장인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잠을 사는 이유다. 이날 카페를 찾아 안마의자에 몸을 맡긴 직장인 최모씨(30)는 "잠깐이지만 걱정 없이 푹 자고 일어나면 몸이 정말 개운하다"고 말했다. 실제 잠깐의 낮잠은 큰 도움이 된다. 1995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6분의 낮잠으로 업무수행 능력과 집중력이 각각 34%, 54% 증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낮잠이 항상 올바른 답은 아니다.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30분 이상의 낮잠을 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지나치게 오래 자거나 깊게 잠들면 회복시간이 더뎌 오히려 업무에 복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전홍준 건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낮잠을 자더라도 가장 졸린 시간과 근무 리듬, 사회적 환경 등을 고려해 규칙적인 시간에 20분 내외로 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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