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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3분 과학] 한겨울 얼지않는 '새 다리'…비밀은 동맥과 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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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황새 세마리가 눈 밭 위에서 외발로 서 있다. 발 하나를 품 안으로 감추는 것 또한 겨울철 찬바람에 노출된 다리를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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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막바지. 나뭇가지가 앙상해지고,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벌써 털 달린 점퍼입니다. 철원 등 중부 내륙지방엔 영하의 날씨로 내려간 곳도 있습니다. 사람이야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으면 그만이지만, 동물은 어떻게 추위를 이겨낼까요. 흔히 보는 도심의 비둘기는 겨울에도 가냘픈 맨다리, 맨 발로 아스팔트를 누비는 데 추운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물속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오리는 또 어찌 겨울 얼음판에도 무사할까요. 사람 같으면 잠시만 맨발로 겨울을 누벼도 동상에 걸릴 텐데, 비결이 뭘까요.

새 다리는 뛰어난 열 교환기 겸 체온 조절기


그래서 3분 과학이 찾아봤습니다. 비결은 새의 다리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새의 다리는 뛰어난 ‘열 교환기’겸 ‘체온 조절기’였습니다. 진화가 낳은 신비의 결과입니다. 미국 듀크대학 동물학과에서 1975년 일찌감치 연구를 했더군요.‘차가운 물속에 잠긴 오리 다리에서의 열 손실(Heat loss from Ducks’feet immersed in cold water.’라는 논문이 그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앞선 학자들의 연구가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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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다리의 열교환 원리. 동맥과 정맥이 가까이 붙어있는데다 특정 부위에서는 그물처럼 얽혀있어 온도차에 따른 열을 주고 받기 좋게 돼있다.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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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과 정맥이 그물처럼 얽혀 있어


우선 조류의 다리를 해부학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새 다리 속 혈관은 동맥과 정맥이 가깝게 붙어있습니다. 특정 부분에서는 동맥과 정맥이 여러 가닥으로 나눠져 그물처럼 얽혀있습니다. 온도차가 있다면 열을 주고 받기 딱 좋은 구조인 거죠. 겨울철에 다른 사람과 악수하면서 ‘손이 참 따뜻하구나’하고 느껴 본 적이 있지요? 이게 바로 열 교환, 즉 열을 주고 받은 증거입니다. ‘손이 차갑구나’라고 느끼면 열을 빼앗긴 것, ‘손이 따뜻하구나’라고 느끼면 열을 얻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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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도 기능적으로는 일종의 열교환이다. 단 맞잡는 손에 온도차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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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체온 뺏기기 전에 안에서 열교환


조류의 경우 심장에서 나온 뜨거운 피가 동맥을 따라 흘러 내려오다가 다리에 와서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 정맥에 열을 빼앗깁니다. 이렇게 온도가 내려간 피는 발에서부터 정맥을 따라 올라오면서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동맥에 열을 얻어 심장으로 들어갑니다. 새의 몸 안에서 뜨거운 피는 차가워지고, 차가워진 피는 다시 뜨거워지는 순환이 일어난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다리 속 동맥과 정맥이 나란히 붙어있지 않아 열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생각해보면 이해가 더 쉬워집니다. 뜨거운 피가 식지 않고 다리를 지나 외부에 노출된 발까지 내려간다면, 추운 겨울에 체온을 엄청나게 많이 빼앗기겠지요. 또 그렇게 차가워진 피가 심장으로 바로 올라간다면, 체온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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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눈덮인 공원에 앉은 울새 한마리.가냘픈 다리가 그대로 얼어버릴 듯 하지만 저 속에도 정교한 열교환시스템이 있어 체온을 유지해준다. [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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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흐름 조절할 수 있는 밸브 장치도 있어


더불어 새 다리 속 동맥에는 ‘밸브’가 있어 피의 흐름을 느리게 또는 빠르게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외부 환경에 따라 다리의 온도바꿀 수 있다는 얘기지요. 듀크대 논문은‘영하의 날씨에도 새 다리와 발의 피부 조직이 얼지 않는 것은 체온이 0℃ 이상 유지될 수 있도록 피의 흐름이 증가하기 때문이며, 실험을 통해 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얼음과 닿는 새의 발바닥은 어떻게 동상에 걸리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새의 다리와 발은 상대적으로 딱딱한 조직으로 돼있어 더운 피가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다고 합니다. 발을 움직이는 근육 또한 다리의 위쪽에 몰려있습니다. 부드러운 조직, 움직이는 조직일수록 에너지, 즉 열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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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움츠린 모습의 오리들이지만 그래도 차가운 물 위에 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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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다리는 진화의 신비 그 자체


새의 체온은 종류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보다 높은 40℃ 정도입니다. 아마도 진화 과정 속에서 다리 속 혈관들의 열 교환 등의 방법으로 체온 유지에 뛰어난 새들이 살아남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겠지요.

경희대 동물생태학연구실의 이진원 박사는 “추운 지방에 사는 조류일수록 다리 속 동ㆍ정맥의 그물망이 더 정교해 열 교환을 더 잘할 수 있다”며“이 외에도 발로 가는 혈류 조절과 피하지방에서의 생리학적 방어 기작 등으로 추운 겨울에도 잘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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