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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국정원 직원들 “김호, 초기조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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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수감 중인 김호씨가 변호인단에 보낸 자필 편지. 국정원에 제출했다는 서약서 내용이 담겨 있다./변호인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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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간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대북사업가 김호씨(47)를 일종의 남측 ‘조력자’로 활용한 사실이 검찰 조사 단계에서 드러났다. 만약 검찰이 김씨에 대한 공소유지를 계속할 경우 김씨는 사실상 이중간첩으로 활동한 셈이 된다.

국정원, 김호에게 격려금 50만원 지급했다



<주간경향>이 단독 입수한 검찰의 국정원 직원 진술조서를 보면 ‘이 실장’, ‘권 이사’, ‘최 이사’로 불린 국정원 직원들은 김씨를 조력자 혹은 협력자로 활용하며 2년 이상 관계를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지난 9월 5일 북한에 얼굴인식 프로그램 개발비 등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군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국정원이 김씨와 접촉한 시점은 2011년 말이다. 이 실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국정원 직원 이모씨는 검찰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2011년 10월 대북 IT 정보수집 부서로 이동한 후 상급자인 최모로부터 김호를 한 번 만나보자는 말을 들었다. 상급자도 김호가 IT 관계자와 접촉한 바 있고 북한 주민접촉 신고를 했다는 정보를 제공받은 것 같았다. 내가 김호에게 전화해 ‘국정원에서 대북 쪽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인데 대북교류나 북한 IT기술 관련 자문을 받고 싶다’고 하면서 만남을 제안했다. 김호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2011년 12월 7일 서울 삼성동 근방에서 최 이사(국정원 직원)와 함께 김호를 만났다.”

이씨 진술에 따르면 김호는 ‘초기 단계’ 조력자였다. 그는 ‘그렇다면 2011년 12월 이후부터 김호는 국정원의 조력자로 활동했다는 것인가’라는 수사검사의 질문에 “대북사업가들을 조력자로 활용하기 위해 신뢰성 검증절차를 거친다. (북한 개발자들을) 활용할 수 있느냐는 요청을 한 적은 있지만 조력자로서는 초기 단계였다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김씨는 실제로도 국정원에 북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국정원으로부터 북한 윈도 프로그램인 ‘붉은별’이나 백신 프로그램 등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다음 2012년 3월 29일 북한의 백신 프로그램 ‘클락새’를 e메일로 보낸 것이다. 김씨는 그 대가로 국정원 직원 이씨로부터 격려금 명목으로 50만원을 받았다. 대가라고 하기에는 현저히 적은 금액이었다.

김씨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정보, 북한 개발자와의 대화록, 북한의 배급동향 등도 모두 보고했다. ‘권 이사’로 활동하는 국정원 직원 권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씨를 대북 정보원으로 국정원이 이용한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그는 다만 “기술적인 내용은 이해를 하지 못했고, (배급 관련 정보는) 정보로서의 가치도 거의 없었다”고 단서를 달았다.

문제는 국정원이 이미 김씨가 대북사업가로서 북한과 어떤 사업을 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판매하려 했는지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씨의 활동을 이미 알면서 국정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결국 김씨의 활동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자체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국정원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행위를 방치하고 동조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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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2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주화가족실천협의회 목요집회에서 민가협 소속 어머니들과 비전향장기수 등 참석자들이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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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내용과 접촉인물 알고 있었다 ”

특히 얼굴인식 프로그램은 이미 국정원 직원들도 알고 있는 김씨의 사업내용이었다. 김씨는 북한에서 개발한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국내에 납품한 혐의와 군에 납품을 시도하면서 군사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그러나 군에 납품되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얼굴인식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012년 6~7월쯤 김호가 내게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데 국내업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게 잘되면 빚도 갚고 국정원에서 요청한 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한다.

그는 ‘북한의 IT 전문가가 개발하는 얼굴인식 프로그램이 국내에 유포될 것이 예상됨에도 왜 국정원에 정보보고를 하지 않았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별도로 보고하지 않아도 김호가 정식절차를 밟으면 국정원 보안인증 부서에 보고될 것이고, 안전성은 검증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답했다.

국정원 직원은 검찰이 ‘북한 공작원’으로 지목한 양모씨(그는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이다)와 박모씨(얼굴인식 프로그램 개발자·김일성종합대학교 교수)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김호가 접촉하고 있는 상대를 알고 있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국정원 상급직원인 최씨(‘최 이사’로 불렸다)는 “양모는 재중총련 의장 아들이고 박모는 김일성종합대학교 교수인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대북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접촉 대상자(김호)가 북한 관련자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우리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들에 대한 특별한 제재조치 준비 등을 한 바가 전혀 없다.

2011년 말부터 시작된 국정원과 김씨의 관계는 2013년 10월까지 이어진다. 2013년 6월 국정원 전임자 이씨로부터 김씨를 소개받은 국정원 직원 권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호를 한 달에 한 번가량 만나서 친분을 쌓기 위해 식사도 하고 술을 마시면서 북한 IT 관련 동향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정보를 받은 바는 없다”고 진술했다. 권씨는 이어 “2013년 8월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서 김호를 상대로 북한 관련 사건에 대해 내사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3년 9월 초순 김호에게 나와 접촉한 사실을 비밀로 유지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다음부터 연락을 끊으려 했다”고 말했다. 해당 서약서는 재판부에 제출된 상태다.

재판부에 제출된 서약서에는 ‘북한과의 접촉사항을 누락하거나 은닉해 발생되는 귀결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민·형사적 책임을 감수할 것이며, 국정원 보고 관련 사항이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에 관한 기밀사항임을 주지하고 있고, 영구히 누구에게도 일절 누설하지 않을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씨의 변호는 현재 법무법인 상록의 장경욱 변호사가 맡고 있다. 장 변호사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은 김씨가 누구와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알면서도 2년 동안 관계를 지속했다”며 “이것은 김씨의 사업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김씨의 사업이 정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면 그 위험한 것을 가만히 둔 국정원 역시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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