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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돈은 돌고 돌지 않고 갈만한 곳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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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30)
중앙일보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머니 스크립트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욜로'와 삶의 균현을 추구하는 '워라밸' 시대다. [그림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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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머니 스크립트를 가지고 있다. 머니 스크립트란 ‘배우에게 행동을 지시하는 대본(스크립트)’처럼 돈과 관련한 행동을 좌우하는 생각, 또는 고정관념을 말한다.

돈을 벌고 쓰고 불리고 나누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머니 스크립트는 가장 크게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어떤 머니 스크립트를 가지고 있었는가가 스크립트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영향도 받는다.

한 시대는 비슷한 머니 스크립트를 공유한다. 한 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생각이 공유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욜로(YOLO)'와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시대다. 지금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머니 스크립트, 즉 돈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재무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생각은 무엇일까.

한국 재무심리센터의 NPTI 진단은 25가지 머니 스크립트를 제시하고 그중에서 긍정과 부정반응을 재무심리 평가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상담과 코칭을 진행하고 있다. NPTI 검사고객 1833명을 분석해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머니 스크립트를 살펴보았다.





1833명 대상으로 돈에 대한 생각 조사
중앙일보

머니 스크립트 분석 결과.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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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사람이 긍정 반응을 보인 스크립트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공유하고 싶은 사실은 ‘부자와 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부에 대한 부정적인 스크립트, 예를 들어 ‘돈은 악이다’ ‘부자는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질 자격이 없다’ ‘많은 돈을 벌었다면 그것은 비도덕적으로 번 것이다’ ‘가난이 미덕이다’ 같은 스크립트에는 부정적 응답이 많았다. 아직 일부의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하지만 많이 약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재무심리 검사를 한 1833명 중 70% 이상이 긍정적으로 응답한 머니 스크립트는 무엇이고, 그것은 우리의 재무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가장 많은 1608명의 긍정 응답을 끌어낸 스크립트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엔 누구나 긍정 응답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고정관념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세계 최고의 근로시간,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사무실과 상가, 일과 삶의 불균형으로 인한 고통을 만들어 내고 있다.

두 번째 머니 스크립트는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스크립트다. 이 역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스크립트는 불필요한 지출을 불러오기도 한다. 누군가 어려울 때 자신의 형편이나 실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거나 퍼주는 경우다. ‘대표님, 저는 누가 돈 빌려달라고 하면 옆에서 빌려 도와줄 때도 있어요. 저 미치겠어요’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돈이 사람보다 중요하다’는 스크립트가 그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 돈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도와주는 그 사람이 그 도움으로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나와 우리 가정에는 큰 어려움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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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머니 스크립트는 생각에 따라 소득이 기준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많은 돈을 좇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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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머니 스크립트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이다. 돈은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이 생각은 자신의 상황이나 추구해야 할 가치와 상관없이 돈을 추구하게 될 수 있다. 직장을 선택할 때 적정한 연봉 이상이면 일의 성격이나 적성, 가치관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따라 소득이 최고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많은 돈을 좇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70% 넘는 긍정적인 반응을 가져온 네 번째 머니 스크립트는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다. 돈은 돌고 돈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나에게도 그 돈이 오겠지’라는 희망과 기대를 주기도 하고, ‘돈을 낭비하거나 의미 없이 누군가에게 줘 버렸을 때 자신을 합리화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사실 돈은 그렇게 돌고 돌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는 돈이 자꾸 쌓이고 어떤 이는 굴러 들어온 돈을 밀어내 버린다. 가끔 실패하거나 사소한 잘못으로 인한 손실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힘들어하거나 자책할 때 ’돈은 돌고 돈다‘는 머니 스크립트는 위로가 된다. 하지만 이 위로가 과하면 돈에 대한 부주의나 잘못된 태도를 습관적으로 용인하곤 한다.

머니 스크립트는 그 자체로 잘못된 게 아니지만 고착해 버리면 바람직하지 않은 재무행동을 끌어내곤 한다. 그래서 스크립트를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수정 머니 스크립트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면 늘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 생각을 ‘효과적으로 일하면서 삶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수정 머니 스크립터로 바꾸어보면 좀 더 균형 잡힌 사고를 할 수 있다. 물론 역의 관계도 성립한다. ‘효과적으로 일하면서 삶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스크립트를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로 수정할 수 있다.





돈의 양보단 지나치게 추구하는 태도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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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돈이 중요할 때가 있고 사람이 중요할 때가 있다'로 바꿔 생각해보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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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이렇게 수정해 볼 수 있다. ‘돈이 중요할 때가 있고 사람이 중요할 때가 있다.’ 막연하고 맹목적으로 사람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현실을 망각하고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스크립트도 늘 맞은 것 같지만 사실 ‘돈을 이기고 다룰 수 있는 역량이 있을 때'라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돈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 돈 때문에 생기는 많은 문제는 돈의 양이 적어서라기보다 돈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태도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가끔은 돈이 많아 문제가 많아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돈은 돌고 돈다’는 스크립트는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까. ‘돈은 갈 만한 곳에 간다’, ‘돈은 역량 있는 사람, 돈을 가질만한 사람을 찾는다’로 말이다.

’돈을 벌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야근을 하고,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사주고 빌려주고 떼이면서 돈보다 사람을 선택하며,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사람에게 줘버린 돈을 아쉬워하고, ’돈은 돌고 돈다‘면서 언제가 그 돈이 내게 올 날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많은 한국인이 공통으로 엮어낸 모습이다.

이런 결과를 들여다보면서 우리 이웃의 선함을 본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돈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잃어버린 돈에 집착하기보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 그려져 참 좋았다.

당신의 머니 스크립트, 당신의 돈에 대한 고정관념은 무엇인가. 위에서 살펴본 네 가지 머니 스크립트에 동의하는가. 기억하라. 당신의 재무행동은 돈에 대한 고정관념, 머니 스크립트에 좌우되고 있음을. 변화를 원한다면 그 스크립트를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신성진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ruth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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