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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국어선생님도 못푸는 31번… 학교마다 "죄다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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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국어 가장 어려워"… "모평보다 과목마다 10점 떨어져"

전문가·교사도 비판 "국어지문 문맥 연결안돼, 시간 너무 부족"

"망?" "응, 망."

16일 오전 8시 40분 서울 마포구 서울여고 교문 앞. 전날 수능을 치른 고3 학생 두 명은 만나자마자 이렇게 인사했다. '망'은 시험을 망쳤다는 뜻이다.

이날 만난 고3 학생들은 "수능이 너무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이과반인 8반 담임 선생님이 메모지를 나눠주자, 학생들은 과목별 가채점 점수를 적어내려갔다. 한 학생이 "국어, 휴~" 하며 한숨을 쉬자, 옆에 있던 학생이 "난 수학도"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나는 죄다 망했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은정(18)양은 "다들 모의평가보다 과목별로 10점씩 내려갔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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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국어가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이날 입시 기관들이 발표한 예상 1등급 커트라인은 국어 85~86점, 수학 가형 92점, 수학 나형 88점이었다. 국어 예상 커트라인은 작년 94점보다 8~9점 떨어졌을 뿐 아니라, 2005년 이후 처음으로 80점대다. 김모(18)양은 "국어가 너무 어려워 정신이 무너져내렸는데, 그 영향이 2교시 수학, 3교시 영어, 4교시 탐구까지 이어져 눈물이 났다"고 했다.

수험생들은 국어 시험지 16장을 80분 만에 읽고 45문제를 풀어야 한다. 올해는 특히 31번 문제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웠다. 31번을 풀기 위해 학생들은 먼저 거의 시험지 한 장 분량의 '동서양 우주론'에 대한 지문을 읽어야 했다. 그다음 시험지 반장에 달하는 '보기'와 ①~⑤까지 선지를 또 읽어야 한다. 보기는 '만유인력' '질점' '부피요소'에 대한 내용인데, 언뜻 이해가 잘 안 되는 문장들로 구성돼 있다. 본지가 현직 고교 국어 교사들에게 31번에 대해 물었더니 교사들조차 "지나치게 어렵다" "고교생 시험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나도 못 풀겠더라"는 교사도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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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뚫자" 설명회 긴 줄 - 16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 앞에 입시업체의 대입 설명회에 참석하려는 학부모들이 길게 줄을 섰다. 올해 수능은 국어·수학·영어 영역 모두 작년보다 어렵게 출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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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는 "문제를 봤는데 머리가 멍해지더라"며 "보통 배경 지식이 없는 글이더라도 문맥을 보면 이해가 되는데, 31번 지문은 문맥 간 유기적으로 연결이 안 돼 독해가 어려웠다"고 했다. 서울의 한 국어 교사는 "나도 풀다가 시간이 오래 걸려 중간에 그만뒀다"며 "교사가 이럴진대, 시험장에서 중압감을 견디며 문제 푼 학생들은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국어 교사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1등급 받고 싶으면 31번 같은 문제는 일단 제치고 다른 문제에 집중하라고 권할 것"이라며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시험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과반에선 수학이 어려웠다는 목소리도 컸다. 문과생이 주로 치는 수학 나형은 최근 7년간 1등급 커트라인이 주로 90점대였는데, 올해는 88점으로 예상된다. 한 서울 여고 학생은 "수학에 자신이 있었는데, 너무 어렵게 나와 어떻게 입시 전략을 짜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입시 업체들은 영어 영역도 지난해보다 어렵게 출제돼 1등급 비율이 작년 10%보다 크게 줄어든 4~6%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정시 전형에서 서울대 문과 최상위 학과와 최하위 학과의 커트라인이 작년엔 6점 차이였는데, 시험이 어려운 올해는 10점으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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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 쇼크… 이젠 엄마·아빠들의 대입 전쟁 - 수능 다음 날인 16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한 입시업체 대입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료를 보며 강사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설명회엔 전체 좌석 3000석의 두 배가 넘는 6500여 명이 참석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올 수능에서 어렵게 출제된‘국어 쇼크’로 수험생의 성적이 대폭 떨어졌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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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어렵게 출제돼 재수생이나 자사고·특목고생이 유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정근 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장은 "수능 점수가 평소보다 낮게 나온 수험생들은 일단 가채점 결과를 보고 원서를 넣은 수시 전형 중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출 수 있는 곳을 찾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6일 현재 이과 수험생 4명(재수생 3명, 재학생 1명)이 가채점 결과 만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어 31번 정답 ②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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