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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아무튼, 주말] 7번 국도 따라 양미리·방어·물곰… 초겨울 입맛을 깨우는 '피시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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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생선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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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무분별한 조업으로 어획량이 줄었던 양미리가 올해는 풍어(豊漁)다. 바짝 구워 한 입 씹으니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게 없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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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철이었던 '국민 생선' 명태 대신 동해 겨울 왕좌는 어떤 생선 차지일까? 단단하게 살이 오르거나 알이 차 생선이 더욱 맛있어진다는 겨울의 시작. 우리나라 최북단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해 부산까지 이어지는 7번 국도 따라 '피시 로드(fish road)'를 다녀왔다. 동해를 곁에 두고 달리자 비릿한 내음이 후각을 깨웠다. 양미리부터 과메기까지 식도락은 덤이다. 7번 국도에서의 싱싱한 겨울 마중.

올겨울 '양미리' 풍어(豊漁), 도루묵도 제철 시작

"풍랑주의보 있는 날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앵미리(양미리)' 조업을 나가는데 요즘은 작년보다 확실히 어획량이 좋아요." 지난 9일 속초항에서 만난 '해금호' 이강수(66)씨의 말. 지금 동해는 양미리 차지다. 고성군 거진항부터 동해시 묵호항까지 어디에서나 양미리를 만날 수 있다. 속초 일대는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 매일 만선(滿船)을 이룬다. 흔한 생선 중 하나였던 양미리는 한동안 무분별한 조업으로 어획량이 많이 줄었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속초시수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조업이 시작된 10월 중순부터 11월 15일 현재까지 어획량이 16만8000㎏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3000㎏보다 5배 증가했다. 오랜만에 양미리 풍어를 맞은 속초항 어민들은 양미리를 삽으로 퍼 수레에 실어 나르고, 줄로 엮어 널어 말리느라 바빴다.

동해가 삶의 터전인 이들에게 양미리는 겨울을 알리는 생선이다. 10월 중순부터 제철 시작을 알리는 양미리는 12월 중순은 돼야 살이 오르고 알이 꽉 차오른다. 속초항 '양미리 부두'(속초시 금강대로 230)의 '일광호' '한흥호' 선주 박삼숙(62)씨는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동트기 전 잔새우가 풍부해지면 그걸 잡아먹으러 톡 튀어나오는 양미리는 예부터 '서민 생선'으로 통했다"며 "겨우내 구워 먹고, 조려 먹고, 시래기 넣어 끓여도 먹고, 그래도 남아 고기 미끼로도 썼다"고 했다. "하도 흔해서 '엿 바꿔 먹는 생선'이라고도 했죠. 하하." 강원도에선 양미리, 사투리로 앵미리라 불리지만 동해안에서 잡히는 양미리는 사실 덩치가 좀 큰 '까나리'다.

뼈째 먹는 고칼슘, 고단백, 저칼로리, 불포화지방산과 필수 아미노산이 함유돼 골다공증 예방에 좋은 겨울 보양식을 그냥 놓칠 순 없는 법. 소금 뿌려 숯불에 구워 먹는 게 정석이다. 뼈째 먹어 식감이 꺼끌꺼끌하지만 씹을수록 담백한 맛이 느껴진다.

같은 시기에 많이 잡혀 '양미리 친구'로 알려진 도루묵은 어획량이 양미리에 비해 많지 않지만 지금부터 즐기기 좋다. 때마침 '속초 도루묵 축제'가 오는 25일까지 속초시 이마트 건너편 주차장 일원(항만부지)에서 열린다. 도루묵은 임진왜란 피란길에 올랐던 조선 선조가 '목어(目魚)'를 먹고 나서 맛있다 하여 '은어(銀魚)'로 고쳐 부르라고 했다가 고향에 돌아와 그 맛이 그리워 다시 먹었을 때 맛이 없어 '목어'로 바꾸라 하여 도루묵(還目魚)이 되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비운(悲運)의 생선. 아마도 그땐 제철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도루묵은 11월 초부터 잡히기 시작해 가장 맛이 오를 때는 12~1월이다.

양미리, 도루묵은 고성, 속초, 양양 항구 주변 생선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대개 구워서 판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고 싶다면 속초 동명항, 속초항 양미리 부두(위판장) 주변으로 가볼 것. 양미리축제가 끝났어도 12월 말까지 부둣가 포장마차에선 양미리, 도루묵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다. 2인분 2만원으로 양미리 20마리 정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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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선 '복어' '도다리', 거진·장호항선 '방어'

양미리와 도루묵은 지금부터 1월 말까지 강원도 바다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다. 다만 어류는 해수에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조업 현황, 위판장·시장에서 거래되는 시세와 양이 '제철'의 기준이 되는 셈. 한때 회를 사면 오징어를 서비스로 주던 주문진수산시장 각 점포 수족관은 '귀한 몸'이 된 오징어 대신 복어를 비롯해 도다리, 가자미, 자연산 우럭, 방어 등이 채우고 있다. 12월 7~9일 주문진수산시장 일대에선 '주문진 복어축제'가 기다린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먹고) 죽더라도 그 값을 할 맛'이라고 극찬했다는 복어는 최고급 흰 살 생선이다. 복어에 있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 성분은 3월 산란기 때 가장 강해지며 겨울에 접어들면서 약해진다. 겨울에 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단 얘기다.

주문진수산시장 상인들이 복어와 함께 추천하는 겨울 생선은 도다리다. 주문진수산시장 내 '주혁이네' 주인 서은주(36)씨는 "'봄 도다리'로 알려져 있지만, 산란하기 전인 가을·겨울이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주말보다 평일에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강원도 고성 거진항, 삼척시 삼척항과 장호항에선 방어가 인기다. 12월엔 경북 울진 후포항에서도 많이 잡힌다. 붉은 살 생선인 방어는 초가을엔 지방 함량이 적어 별로 맛이 없다가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지방 함량이 풍부해지면서 맛있어진다. 김용태(53) 삼척수협 장호출장소 소장은 "방어는 회뿐 아니라 방어 머리 매운탕도 이 지역에선 알아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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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생대구탕 맛집‘속초생대구’의‘이리전’. 새하얀 이리는 식감이 크림치즈 같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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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도 겨울에 더 맛있는 생선으로 꼽힌다. 곤이(암컷의 알집), 이리(수컷의 정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계절이다. 맑은 국물로 끓여내는 속초 생대구탕 맛집 '속초생대구' 집주인은 "대구의 곤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겨울이 제철이고, 부드러운 살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사실 제철이 따로 없다"고 했다. 이 집에선 맑은 '생대구탕'(1인 2만원)과 함께 '대구·이리전'(2만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 대구전과 달리 크림치즈를 부쳐낸 듯 식감이 부드럽다.

울진에선 뜨끈한 겨울 별미 '물곰국' 한 그릇

물곰(곰치)으로 끓이는 탕과 국 요리는 동해 주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다. 경북 울진 죽변항에선 찬 바람 불기 시작한 요즘 물곰국집이 북적인다. 지역에 따라 '곰치국' '곰치탕'으로 불리지만, 울진에선 '물곰국'이라고 부른다. 물곰의 진짜 이름은 '미거지'. 이수정 동해수산연구소 연구사는 "물곰, 곰치 등으로 불리는 '미거지'는 동해안에만 서식하고, 물메기로 불리며 미거지와 자주 혼동되는 '꼼치'는 남해안과 서해안에 주로 서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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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죽변우성식당’의 ‘물곰(곰치)국’. 묵은 김치를 넣어 얼큰한 국물은 해장에도 좋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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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김치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물곰국 한 그릇이면 추위에 언 몸이 녹는다. 물곰은 동해에서 일년 내내 잡히지만, 산란기를 맞은 11~1월이 가장 맛 좋고 어획량이 많다. 이재현 죽변수산업협동조합 지도상무는 "최근 몇 년 물곰이 잘 안 나다 올핸 10월부터 잡히더니 이달엔 배 이상 어획량이 늘었다"고 했다.

물곰을 실제로 보면 첫인상이 '비호감'일 수 있다. 못생긴 것으로는 '아귀'에 대적할 만하고 흐물거리는 데다 최대 1m까지 자랄 만큼 크다. 20~30년 전만 해도 잡는 즉시 바다에 던져버려 '물텀벙'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맛본 사람은 계속 찾는다. "물곰국은 뱃사람들이 해장용으로 자주 먹던 음식이었죠. 요즘엔 외지 분들이 먼저 찾아요." 올해로 51년째 2대에 걸쳐 성업 중인 '죽변우성식당' 김상진(67)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버림받던 생선의 '어생역전'이다. 물곰국은 물곰 자체가 시원한 맛을 내고 김치는 얼큰함과 씹는 맛을 더한다. 순두부처럼 흐물거리는 살의 식감엔 호불호(好不好)가 갈리기도 한다.

물곰회도 색다르다. 회를 뜨고 나서 숙성 시간을 두고 얼음에 넣어 살을 단단하게 만든 다음 낸다. 울진에선 금어기(禁漁期)를 끝내고 다음 달 10일부터 대게 잡이가 시작된다. 어선 대부분이 대게 잡이에 나서기 때문에 물곰 수량이 달려 몸값이 오른다. 물곰을 맛보기엔 11월이 최적기다.

포항 구룡포항, 제철 맞은 과메기

과메기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겨울 대표 별미다. 포항 구룡포는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본고장. 11~2월이 제철인 과메기는 꽁치를 해풍에 말려 만든다. 겨울철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 장관을 이루던 해안가 덕장 풍경은 요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과메기 생산 시설이 현대화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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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구룡포 해안가에서 만난 과메기 덕장. 꽁치를 해풍에 말리면 쫄깃하고 고소한 겨울 별미가 된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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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창우물회’의 과메기 차림. 과메기는 김, 미역, 채소 등을 곁들여도 좋지만 김치에 싸먹어도 맛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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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과메기는 동해에서 잡힌 청어로 만들었다. 과메기라는 이름도 말린 청어인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유래했다. 꼬챙이 등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1960년대 이후 청어 어획량이 줄면서 꽁치로 대체됐다. 과메기는 꽁치의 배를 갈라 내장과 뼈, 머리를 제거하고 나서 말리는 편과메기가 일반적이다. '배지기 과메기'라고도 부른다. 새끼줄에 매달아 통째로 말리는 통과메기도 있다. 포항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 김영헌 이사장은 "배지기 과메기의 경우 자연 덕장에서는 3일, 공장에선 2일이면 완성되는데 통과메기는 20일 정도 걸린다"며 "통과메기는 만들기 까다롭고 오래 걸려 요즘 하는 곳이 적다"고 했다.

잘 말린 과메기는 고소하고 쫄깃하다. 과메기 철이면 물회나 대게집에서도 과메기를 반찬으로 내거나 메인 메뉴에 추가한다. "과메기를 초고추장에만 찍거나 김, 미역에 싸먹어 봐야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넣어 쌈처럼 먹으면 과메기 맛을 느낄 수 없어요." '창우물회' 주인 손철호(56)씨가 말했다. 시원한 김치에 과메기를 싸먹는 맛도 색다르다. 과메기는 살이 검붉고 껍질이 은빛을 띠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무엇보다 신선해야 한다. 올해부터 구룡포산 과메기에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는 스티커가 부착된다. 신선도에 따라 스티커 색상이 변하니 골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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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속초·강릉·울진·포항=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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