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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육군 첫 여성 포대장 "무사히 임무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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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육군 1포병여단 대위

공군 父 영향으로 군인 꿈 품어와… 대학 때 취직 준비하다 장교 입대

"전시(戰時) 상황에서 '이 사람을 따르면 살 수 있다' 믿음을 주는 지휘관이고 싶었어요. 포대장 임무를 마친 지금, 예하 부대원의 마음을 더욱 헤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육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 포대장'이라는 이력을 남긴 이고은(30) 1포병여단 대위가 씩씩하게 말했다. 작년 6월 경기도 파주에 부임한 그는 지난 13일 임무를 마쳤다. 화기가 무겁고, 야외 훈련이 많다는 등의 이유로 2013년까지 포병은 여군을 받지 않았다. 진입 장벽이 없어진 후에도 한동안 포대를 지휘하는 여성 포대장은 없었다. "여자라 안 된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맡은 일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포대장 임무를 수행했다"는 이 대위를 파주 부대 안에서 만났다.

조선일보

포대장 임무를 마친 이고은 대위가 K-9 자주포에 기대선 채 웃고 있다. 남편도 같은 부대 포대장인‘군인 부부’다. 그는“아들이 아빠보다 군인 엄마인 날 더 무서워한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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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위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재작년까지 35년간 공군 항공정비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준위로 전역했다. 중학생 때까지 공군 비행장 안 관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이 대위는 "200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서산 관사에 살 땐 이 세상 모든 아버지가 군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네 살 터울 오빠와 축구, 농구를 함께 할 정도로 운동을 즐겼다. 유독 달리기를 잘해 초등학생 땐 선생님에게 육상선수 제의도 받았다.

중앙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취직 준비를 하다 학사사관(당시 여군사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다. 일반 기업 합격 통보도 받았지만 장교의 길을 택했다. 그는 "조종사가 꿈이던 고등학생 땐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하기도 했다"며 "아쉽게 떨어졌지만 이후에도 늘 마음 한쪽에 군인이란 꿈을 품고 있었다"고 했다. '전투화가 지겹다'며 반대하던 어머니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말에 입대를 허락했다. "훈련소에 들어갈 때 아들 군대 보내는 것처럼 우시던 어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이젠 누구보다 절 응원해주십니다."

이 대위는 2010년 공병으로 임관하고 포병의 매력에 빠져 2014년 전과했다. 그는 "포를 쏘면 주요 건물 등 핵심 시설이 단숨에 폭파되고 멀리 있는 산에 구멍이 나기도 한다"며 "현대전(戰)에 꼭 필요한 화력 지원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군수과장 임무를 하며 "포대장을 해보고 싶다"고 대대장에게 직접 이야기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포대장을 맡아 봐야 현장 상황을 더 정확하고 꼼꼼하게 살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포대장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대량전상자처리 훈련' 지휘를 꼽았다. 화포가 부서지고 아군이 절반 이상 사망하는 등 위급한 전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다. 그는 "부하들이 전사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말이 나오지 않더라"면서도 "실제 상황에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게 지휘해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졌다"고 했다.

이 대위는 이제 17개월간의 여정을 마치고 사격지휘장교 임무를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임무여서 떨린다"는 그는 대대를 옮겨서도 부대원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겠다고 했다. "국가를 지킨다는 자부심과 용사들을 지휘한다는 책임감…. 군인은 제게 최고의 직업입니다. 내 아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군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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