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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95] I am not a terro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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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의 귀로 들어라. 연민의 눈으로 보라. 사랑의 언어로 말하라(Listen with ears of tolerance. See through eyes of compassion. Speak with the language of love).’ 이슬람교도 시인 루미(Rumi)의 글입니다.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사진)'은 인간이 관용의 귀를 닫고 연민의 눈을 감고 사랑의 언어에 인색할 때 일어나는 비극의 한 사례입니다. 무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년 샘이 학교에서 집단 폭행당해 목숨을 잃습니다. 오열하며 아이 어머니가 외칩니다. "샘은 당신 성(姓) 때문에 죽은 거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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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슬람교도 칸입니다. 힌두교도 모자(母子)가 칸과 새 가정을 이루면서 아버지 성을 따른 샘이 증오 범죄에 희생된 겁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건 인류의 인간성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믿는 칸은 대통령을 만나 이렇게 외치겠다고 결심합니다. '제 이름은 칸입니다. 저는 테러범이 아닙니다(My name is Khan. I am not a terrorist).'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칸이 위험천만하게 들릴 이 발언으로 뭘 주장하려는 걸까요.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그에게 일깨운 교훈입니다. '세상엔 두 부류 사람뿐인데, 그건 좋은 행위를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사람이다.' 나쁜 짓을 안 해도 종교나 신념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를 증오 범죄의 표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게 함의(含意)이지요.

천신만고 끝에 칸은 대통령 행사장에 찾아가 외칩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의 육성(肉聲)이 TV로 생중계되려는 찰나 경호원들이 그를 덮칩니다. 어눌한 말투 때문에 군중의 환호성에 뒤섞인 그의 말이 ‘나는 테러범이다(I’m a terrorist)’로 와전된 겁니다. ‘제일 좋은 종교는 관용이다(Tolerance is the best religion).’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이 글과 메시지가 일맥상통하는 칸의 호소는 과연 대통령 귀에 들어갈까요.

[이미도 외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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