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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아무튼, 주말] 도로 하나 사이로 수억 차이 '위례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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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6차선 도로를 두고 서울, 성남, 하남으로 갈라지는 위례의 중심가./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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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서울 집값이었습니다. 강남뿐 아니라 강북의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여의도, 영등포…. 서울에 1년 새 수천만~수억원씩 집값이 오른 곳이 수두룩했죠. 다른 지역도 집값 오른 곳이 많았지만 서울만큼 오른 곳은 없었습니다.

서울 집값이 이렇게 비싼 건 당연합니다. 서울은 돈과 일자리부터 교육·쇼핑·문화생활 등 모든 인프라가 집중된 곳입니다. 이른바 '서울 프리미엄'이란 이런 인프라를 가까운 거리에서 누릴 수 있다는 혜택이 집값으로 반영된 결과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서울 프리미엄이란 도대체 정확히 얼마쯤 되는 걸까요? 다시 말해, 조건이 비슷한 집이라도 서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더 비싸지는 걸까요. 현실에서 이 서울 프리미엄을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파트만 해도 입지나 면적, 건축 연도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 우연히 통제된 지역이 한 곳 있습니다. 바로 서울과 경기도에 걸친 위례신도시입니다. 위례는 2008년 조성을 시작해 2020년까지 완성될 2기 신도시입니다. 2015년 입주가 시작돼 이미 인구가 10만명이 넘습니다. 이곳은 위례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여 개발됐지만, 행정구역은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하남시 등 세 곳에 걸쳐 있습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서울, 남쪽은 성남 하는 식입니다. 덕분에 '위례 삼국지'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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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프리미엄은 대체 얼마?

위례가 서울 프리미엄 가격을 측정하기 좋은 이유는 행정구역 구분을 제외한 나머지 조건 대부분이 같기 때문입니다. 입지는 물론이며, 대부분 아파트이고, 입주 시기도 모두 3년 이내 신축 아파트입니다. 시공사별로 아파트 브랜드 차이가 있지만, 대우나 GS, 현대 등 비슷한 수준이라 서로 자부하는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들이 지역별로 고루 섞여 있습니다. 즉 이 아파트 단지들 간에는 서울 소속이냐 성남 소속이냐 하남 소속이냐 외에는 차이가 거의 없는 집이라고 볼 수 있단 겁니다.

그렇다면 위례 삼국지에서 측정할 수 있는 서울 프리미엄은 과연 얼마일까요. 결론부터 얘기하겠습니다. KB부동산 시세와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실거래가를 종합해보면, 3.3㎡(1평)당 약 300만~1800만원 사이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30평대 아파트라면 적게는 9000만원에서 많게는 5억4000만원가량을 서울 프리미엄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죠.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겠습니다. 같은 푸르지오 주상 복합 아파트로 입주 연도가 같고, 가구 수도 비슷한 위례중앙푸르지오 2단지(서울)와 위례아트리버푸르지오 1단지(성남)는 3.3㎡당 가격은 900만원가량 차이가 납니다. 같은 푸르지오 30평대 집이라도 서울에 있으면 2억7000만원 정도 더 비싸단 얘기죠.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하남 지역인 위례신안인스빌아스트로 아파트는 3.3㎡당 가격이 3870만원으로 서울 쪽에 속한 몇몇 아파트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이 아파트도 4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서울 소속 위례중앙푸르지오2단지에 비하면 3.3㎡당 가격이 700만원 정도 낮습니다.

같은 동네 주민들끼리 편 갈라 갈등

위례 삼국지는 지자체 간 합의 실패의 산물입니다. 신도시 개발 당시 위례 전체를 한 행정구역으로 통합하는 논의를 진행했지만, 서울과 성남, 하남 간 이견을 정리하지 못해 기존 경계선을 일정 부분 조정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이 때문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슷한 집 사이에 가격이 1억~2억원씩 차이가 나는 일이 생겨난 겁니다. 문제는 비단 집값만이 아닙니다. 도로 하나로 행정구역이 갈리기 때문에 아이들은 걸어서 5분 거리 학교를 놔두고 한참 걸어야 하는 학교에 배정받습니다. 같은 학원 다니는 아이들끼리도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으로 편가르기를 한답니다. 행정상 편의로 그어둔 선이 아이들 마음에도 선을 그어버리는 셈입니다. 행정 이기주의가 빚어낸 씁쓸한 풍경입니다.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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