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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세상사는 이야기] 아이들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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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며칠 전 슬하에 자녀를 아홉 둔 대니얼 래조 씨를 만났다. 현재 우리 아들 데이비드가 다니는 중학교 교장선생님인 그는 서울에 있는 한 국제학교에서 9년 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몇 달 전 그의 아내 미셸이 딸 아들 쌍둥이를, 그러니까 여덟째와 아홉째를 낳았단 소식을 듣고 나는 언제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아이 아홉을 키우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였다.

내가 어렸을 때 1970년대 한국에서는 다 자기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며, 혹은 아들을 꼭 얻기 위해 아이들을 계속 낳는 분이 많았다. 그래서 정부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캠페인을 이행했다. 40여 년이 지난 요즘은 몹시 내려간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출산율이 매우 떨어진 대표적인 이유는 물론 한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아이에게 드는 액수가 4억원에서 7억원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더욱이 궁금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뉴저지주 버건카운티는 메디안(median) 가정소득이 9만3683달러나 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다. 따라서 물가도 그만큼 높은 편이다. 사립중학교 교장의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아홉이나 되는 자녀를 키우기에는 많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래조 씨는 확신하고 있었다. 큰 집이나 새 차와 같은 축복을 거부하지 않는 것처럼 자녀라는 축복을 기쁘게 반겨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과 필요에 따른 선택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에게 가족이 중요한 만큼 다른 이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가 믿는 성공의 정의를 가르쳐줬다.

아이들이 각각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세상에 기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양육하는 것이라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높은 교육 수준이나 모두가 갈망하는 직업, 그리고 편한 생활 수준이나 다른 이들의 인정 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치관에 맞는 선택으로 그들은 열한 명의 생활을 꾸려간다고 했다. 우선 버건카운티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것들을 아주 드물게 한다고 했다. 특별한 날에 주고받는 선물, 1년에 한두 번 가는 휴가, 매년 혹은 계절마다 사는 새 옷 등. 그의 가족은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을 사 입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패션에 신경 쓰지 않고, 몸에 맞는 멀쩡한 옷을 두고 새 옷을 사는 돈 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위 아이들을 보면서 원하는 것이 많은 청소년들을 어떻게 설득하는지 물어봤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그런 것들을 풀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7학년인 그의 아들이 스마트폰을 사 달라고 했을 때 그는 폰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고 오히려 아이를 더 산만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토대로 아들을 설득했다. 폰이 꼭 필요할 때가 되면 필요한 기능이 있는 폰을 사주기로 했단다. 비싼 스포츠 레슨을 원하는 아이와도 대화를 통해 다른 선택을 하도록 격려했다. 돈 투자가 대학 장학금으로 혹은 프로급 운동선수로 연결시켜줄 가능성은 지극히 작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축복이라는 것은 나와 아내 그레이스도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경제적 부담이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경쟁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 못지않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래조 씨의 자녀들은 별다른 보충 지원 없이 학교 공부도 잘하고, 큰딸 이사벨은 10학년 때 책을 출간하기까지 했다.

한국에도, 버건카운티에도 비슷한 가치관을 토대로 아이들을 여럿 낳아 양육하는 용기 있는 부모가 많아지기를 소망해본다. 둘이든 아홉이든 아이들은 분명히 축복이니까.

[신순규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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