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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장은수의 책과 미래] 엄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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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엄지의 법칙(Rule of thumbs)'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엄지로 세계를 잰다는 뜻으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된다.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세상의 모든 사태를 판단하려 하는 태도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 끝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자수성가한 이들이나 혼자 공부해 지식을 쌓은 독학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눈대중의 법칙이요, 어림짐작의 원칙이다.

사태가 빠르게 진행되고 해결이 급박할 때에는 누구나 '엄지의 법칙'을 사용한다.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해결책을 마련할 충분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경우, 이럴 때 부여받은 권한을 이용해 지도자가 우선 결정하고 행동한 후 결과를 책임지도록 돼 있다. 당연한 일이다.

체험이 신념으로 변질되고 나서가 문제다. '엄지의 법칙'을 사용하는 이들이 대개 헛똑똑이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확고한 성공 경험은 주변에서 다가오는 기회들을 무시하도록 만들고, 진화의 장기적 방향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과학적 통계자료 등 현실의 각종 지표가 자신의 체험과 어긋나는데도 이들은 신념을 고치지 않고 지표에 화를 낸다. 삶과 유리돼 있는 자기 생각을 교정하기보다 지표 자체를 은폐하거나 수정하거나 해석을 왜곡한다. 이들 사전에는 "그때는 옳고 지금은 그르다"는 격언이 없다.

'엄지의 법칙'을 좇는 이들은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른바 '꼰대'의 고집을 반복한다. 현재의 단단한 사실이 아니라 미래의 흐물흐물한 희망에 내기를 걸려고 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함께,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넥스트'다. "다음 분기에는" "내년에는" "조만간" 등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학자라면 몰라도, 현실을 직접 다뤄야 하는 지도자라면 치명적 태도다. 영어에서 "나한테는 엄지만 있어(I am all thumbs)"라는 말은 '둔감하다'는 뜻이다.

사회 원로들이 대통령 등 최고경영자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조언은 "사람을 많이 만나라"는 말이다. '엄지의 법칙'에 빠져 현실을 무시하고 변화를 따라잡는 데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 말을 한 차례 더 다듬어 받아들여야겠다. "친구가 아니라 적을 많이 만나라" "주변 사람과 다른 생각, 체험, 문화를 가진 이들과 대화를 자주 하라" 등이다. '디지털 경제를 지배하는 10가지 법칙'(황금가지)에 따르면 오래된 성공을 포기하고 새로운 성공을 추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혼자서 사막을 건너지 말고, 네트워크를 바깥으로 내보내라." 조선시대에는 이를 탕평(蕩平)이라고 불렀다. 탕평을 실시한 이들은 모두 태평한 세상을 이룩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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