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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맛과 식품의 과학] `쓴맛 보기` 즐기는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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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봄이 오면 많이 불렸던 동요다. 방송에서도 이들 봄나물을 통해 잃었던 식욕과 활기를 되찾으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바구니 옆에 끼고 산과 들녘으로 봄나물을 캐러 가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힘들고 달래, 냉이, 씀바귀를 먹는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다. 예전이라면 겨울 내내 똑같은 반찬을 먹다가 봄이 되면 새로 나온 봄나물이 인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사시사철 온갖 나물 재료와 다른 풍성한 반찬이 있는데 굳이 쓴맛이 강한 봄나물을 좋아할 이유가 별로 없을 것 같다. 심지어 씀바귀는 강한 쓴맛 때문에 이름마저 씀바귀다. 어른들은 쓴맛에 둔감해져 있고 예전부터 먹었던 것이라 별미로 즐길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매우 벅찬 도전이다.

사실 인류의 쓴맛에 대한 감수성은 이미 많이 약해진 것이라고 한다. 풀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초식동물은 풀 중에 독초도 많기 때문에 쓴맛에 예민하다. 인류는 침팬지와 고릴라 등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도 쓴맛 수용체가 많이 퇴화됐다고 한다. 인류의 쓴맛 유전자가 퇴화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0만년으로, 다른 영장류의 780만년에 비해 4배 정도 빨랐다고 한다. 뇌가 발달하면서 해로운 음식에 대한 학습·식별 능력이 발전했고 먹어보지 않고도 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짐에 따라 쓴맛을 느끼는 능력이 빨리 퇴화한 것이다.

채소는 대부분 단맛이 적고 쓴맛이 약간 있는데, 쓴맛에 둔감한 사람은 채소를 먹고 달고 맛있다고 느낄 것이고, 특정 쓴맛에 예민한 사람은 그 쓴맛이 단맛과 다른 장점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채소는 그냥 맛없는 쓴 풀이라고 느끼기 쉽다. 그래서 쓴맛에 둔감한 사람이 쓴맛에 예민한 사람보다 채소를 훨씬 많이 먹는다. 쓴맛에 민감한 집단과 둔감한 집단의 연평균 채소 섭취량이 무려 200인분이나 차이가 나기도 한다. 특정 유전자 때문에 쓴맛에 예민한 사람들은 쓴맛이 강한 채소뿐 아니라 모든 채소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쓴맛도 적응하기 나름이다. 어릴 때는 커피를 싫어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콤한 커피를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마저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채소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다. 장류가 발달하고, 나물 형태로 채소를 조화롭게 먹는 문화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음식 중에는 쓴맛이 강한 식재료도 곧잘 쓰인다. 외국인은 처음 먹어보고 깜짝 놀랄 정도의 쓴맛인데 별미로 즐기는 것이다.

[최낙언 식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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