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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제보로 뚫은 삼바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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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복잡하고 난해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

익명의 제보자들에 힘입은 취재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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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정은 제보를 위한 계정으로 메일 수신 확인 후 탈퇴 예정입니다. 아무쪼록 삼성의 민낯을 보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재경팀 심아무개 부장이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임아무개 부장에게 보고한 ‘바이오, 바이오젠 콜옵션 평가 이슈’ 보고서를 보도한 지난 11월1일, 기사가 온라인에 게재된 뒤 4시간 만에 첫 제보 전자우편이 도착했다.

이날의 기사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를 ‘법원’ 격인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 냈다는 내용이었다. 삼성바이오 재경팀은 바이오젠의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부채로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회피하기 위해, 콜옵션 계약서 조항을 고치거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회계기준을 바꾸거나, 에피스의 가치를 낮추는 3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삼성바이오가 회계를 이른바 ‘마사지’(손질)하고 있다는 고백과 다름없는 내용이었다.

제보 뒤 사라진 전자우편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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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기사를 읽은 제보자는 삼성바이오와 옛 삼성 미전실이 어떻게 소통했는지 알려줬다. “임아무개 부장은 창구 역할을 할 뿐이다. 지시는 예전엔 미래전략실 소속 김아무개 부사장이, 현재는 김아무개 전무가 그룹 수뇌부의 지시를 받아 직접 하거나, 임 부장을 통해 전하는 경우가 있다.” 또 최순실 국정 농단 문제가 불거진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시로 미전실이 해체된 뒤 최근엔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삼성바이오가 경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 중 민감한 지시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오랜 검찰 수사를 당해서 얻은 경험이다”라고 했다.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가 단순히 이 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힌트였다.

제보자는 이 전자우편을 수신하면 계정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가끔 기업의 민낯을 세상에 알려달라는 제보를 받지만, 전자우편 수신 확인 뒤 계정 탈퇴 예정이라는 낯선 문구는 ‘무섭다’는 제보자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시 답장을 했지만 주소를 찾을 수 없다며 전자우편은 반송됐다. 그는 진짜 전자우편 계정을 탈퇴했다.

전자우편 계정을 탈퇴한 제보자는 그만이 아니었다. “에피스는 2015년 말부터 상장을 추진하는 것으로 내부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미전실의 지시로 당시 갑자기 바이오사업 설명회 개최와 상장 발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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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을 폭로한 11월7일에도 한 금융계 제보자로부터 전자우편이 왔다. 그는 바이오사업 설명회를 하라는 지시가 갑자기 떨어지자 당시 삼성바이오 내부 직원들의 역량으론 설명회 자료를 정해진 시간 내에 만들 수 없어서 (상장 관련 일을 함께하는) 투자은행 직원들까지 삼성바이오에 가서 자료 작성을 도운 사실을 들었다고 했다.

그가 전자우편으로 전한 여러 정황은 당시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당시 기사들을 보면, 삼성바이오는 사업설명회를 송도공장에서 하겠다며 전날 급작스럽게 전자우편을 보냈고, 기자들은 송도 공장을 찾아 르포를 썼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정이 엘리엇 등 헤지펀드의 반대로 주주총회 표대결로 이어지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려고 삼성 미전실이 조바심을낼 때였다.

그의 전자우편은 중요한 정보도 담고 있었다. <한겨레>가 취재한 삼성바이오의 내부 문건 가운데 해독이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현재 바이오젠사의 콜옵션 행사와 일부 지분 매입 및 에피스의 후속 제품 마케팅 협력 계약 등에 대한 협상력 약화 우려가 있으며, 바이오젠사의 연내 동의 여부도 불투명.” 콜옵션 관련 조항을 수정하겠다는 방안에 나온 내용인데, 눈에 띈 ‘일부 지분 매입’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일부 지분 매입’ 주체는 삼성바이오

문건 내용은 모르는, 제보자가 뜻밖의 힌트를 줬다. “삼성이 콜옵션 행사와 같이 추진한 건 바이오젠 지분을 삼성이 사와서 에피스 경영권을 갖는 것이었다. 혹시삼성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시 삼성바이오의 내부 사정을 아는 그의 말과 합쳐보면,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다시 지분을 되사오려 협상하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그동안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의 가치가 급등함에 따라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져 지배력을 잃을 상황에 처해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기준을 바꿨다는 설명과는 배치됐다. 제보자는 삼성이 최근까지도 바이오젠 지분을 되사오려다 삼성바이오 회계를 들여다보는 금감원 감리위원회가 시작되자 작업을 멈췄다고 했다. 삼성바이오 쪽 주장의 신빙성은 계속 의심받았다.

여기까지 말해준 제보자 역시 “비 오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수고하세요”를 남기고 인터넷 공간에서 사라졌다.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는 매우 어려운 이슈였다. 이를 오랫동안 추적해온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도 “종속회사, 관계회사, 지배력 상실, 콜옵션 외가격, 복잡하고 어려우니 많은 분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리고 삼성이 국제 회계기준의 모호성과 바이오산업의 특수성으로 더더욱 복잡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강력한 삼성의 방어막 속에 감춰진 분식회계 이야기는 삼성바이오의 내부 문건과 제보를 통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퍼즐을 맞춰 분식회계가 있었던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15년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결정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식을 가진 실질적인 그룹의 지주회사 격이었다. 삼성에버랜드에서 이름을 바꾼 제일모직의 대주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 일가였다. 합병 비율이 제일모직에 유리해 이 부회장이 적은 지분으로 합병 회사의 지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논란 속에서 두 회사의 합병은 성공했다. 이 부회장은 이를 통해 삼성전자 등 그룹 경영권을 더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합병이 끝났으니 두 회사의 회계도 하나로 합쳐야 했다. 상장사인 두 회사의 장부를 꺼냈는데 앞서 합병 때 시끌시끌했던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피해야 했다. 그러려면 제일모직의 기업가치가 높아야 했다. 합병 비율(1 대 0.35)상 제일모직이 삼성물산보다 가치가 훨씬 높아야 말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제일모직의 사업 중에 눈에 띈 것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였다. 삼성그룹의 새 먹거리로 꼽혔던 바이오사업인데다 사업 초기라서 미래지향적으로 보였다. 삼성바이오의 자회사 에피스도 바이오의약품 개발 회사니 미래가 유망해 보였다. 그래서 삼성바이오와 에피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모회사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게 만들었다. 안진회계법인은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6조8천억원으로 산정했다. 이 가운데에피스의 가치는 4조8천억원에 이른다.

모회사 합병 뒤 뜻밖의 후폭풍

이렇게 모회사 제일모직의 회계장부와 삼성물산과의 합병 이슈를 깔끔히 해결했는데, 그 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회계 처리를 이렇게 하면 바이오젠이 가진에피스 콜옵션의 가치가 1조8천억원에 이르러, 삼성바이오의 자본이 잠식될 위험에 빠진 것이다.

삼성바이오의 내부 문건은 이런 정황을 생생히 드러냈다. 삼성바이오 재경팀은 2015년 11월10일 작성한 문건에 “회계법인은 물산 합병시 바이오 사업가치 평가와 관련하여 바이오젠사의 콜옵션에 대해 부채 및 손실 반영을 바이오로직스에 요구” “부채로 반영시 바이오로직스는 자본잠식 예상→자본잠식시 기존 차입금 상환 및 신규 차입, 상장 불가”라고 기록했다.

김경율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는 내부 문건을 검토하고 “삼성바이오가 모회사 합병 때문에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방안들을 다급히 검토하고 허둥대는 게 확인된다”고 말했다. 결국 삼성바이오는 2015년 에피스의 회계기준을 변경해 적자에서 흑자로 바꾸는 ‘회계상의 마술’을 부린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2016년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한다. 이런 스토리는 내부 문건과 제보 등에 의해 드러나고 말았다.

11월14일 증선위는 마침내 1년8개월에 걸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앞서 증선위는 7월 1차 심의 때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 콜옵션을 공시하지 않고 누락한 것만 지적하고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구했다. 증선위는 재감리 결과를 토대로, 삼성바이오와 회계업체 등 의 이야기까지 들은 뒤 판정을 내렸다.

핵심은 삼성바이오가 2012년 자회사 에피스를 합작 설립한 뒤 2015년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할 때까지 회계 처리가 적정했느냐였다. 증선위는 일단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회계 처리하지 않은 것은 모두 위법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2012∼2013년은 국제 회계기준이 2011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점을 들어 회계 위반동기를 ‘과실’로 판단했다.

제보로 여기까지 왔다

2014년은 회사가 콜옵션 내용을 처음공시하는 등 중요성을 인지했던 것을 고려해 ‘중과실’로 결정했다. 2015년은 회계 처리로 막대한 평가차익을 얻었고, 자의적으로 회계기준을 해석한 것을 들어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했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을 제보 받지 못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검찰이 이제 수사에 나서 남아 있는 다른 증거를 확보할 차례다”라고 했다.

이완 <한겨레>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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