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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내일 화이팅 아니라 내년 화이팅"…불수능 치른 고3 교실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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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난이도 10년 만에 최고

최저등급만 맞춰도 반 전체에서 박수 쳐

중앙일보

2019년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 하루 뒤인 16일 서울 경복고등학교 3학년 교무실의 모습. 학생들이 가채점 결과를 제출하고 입시 상담을 하기 위해 방문했다. 이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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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내려가서 농사지으려고요. 오늘도 그냥 김장 도와드릴 거예요."

전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박성훈(19) 군은 16일 "시험이 끝난 뒤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박 군은 "우리 반 1등이 어려웠다고 하는 걸 보면 올해가 정말 난이도가 높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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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이 끝난 지 하루 뒤인 11일 서울 경복고등학교 3학년 2반의 모습. 학생들이 가채점한 성적을 표에 적고 있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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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 하루 뒤 서울 경복고등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시험이 어려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국어가 어렵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입시기관에서 예측한 1등급 컷 점수가 85점으로 2005년 이후 최고 난도가 될 전망이다. 방원준(19) 군은 "이번 수능 국어가 진짜 지옥(Hell)이었다. 평소 모의고사에서는 1등급 나왔고 시간도 남았는데 이번엔 시간이 모자라 가채점도 못 했다. 국어 시험 끝나고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과인 이도현(19)군은 “국어가 나만 어려운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전부 다 어렵다고 하더라. 특히 비문학 지문 중 지동설과 관련 된 문제에서 크게 당황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학생들이 작성한 가채점표를 보니 국어 점수를 적는 칸에 점수 대신 물음표가 보였다. 2반에 재학 중인 조모(19) 군은 "보통 국어 3등급, 수학 1등급, 영어 2등급, 사탐 1·2등급이 나오는데 이번에 가채점으로는 수학 2등급, 영어 3등급, 사탐 2·3으로 한 등급씩 떨어졌다. 국어는 가채점 자체를 못 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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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고등학교 3학년 1반 학생이 제출한 2019년 대입수학능력평가시험 가채점 표. 국어 점수에 물음표를 적었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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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은 끝났지만,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도 많았다. 최저등급은 맞췄다는 조모(19)군은 "이제 남은 논술 시험에 올인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술을 6개 준비하고 있다는 우형원(19)군은 "아직 논술시험이 5개나 남았다. 일요일에 시험 하나 더 봐야 하지만 오늘은 피시방 가서 스트레스 좀 풀고 싶다"고 말했다.

시험이 어려웠던만큼 교실에서는 친구가 수시를 위한 최저등급만 맞춰도 거의 합격에 버금가는 축하가 나왔다. 9반에서는 한 학생이 3과목 등급 합 6등급인 최저등급 기준을 맞췄다는 가채점 결과에 반 학생 전원이 손뼉을 쳐주기도 했다.

2년 동안 고3 담임을 맡은 국어 교사 이모씨는 "언어가 너무 어려워 가채점을 아예 못한 학생이 많다"며 "낙담한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실망하게 해 죄송하다'고 말할 때 마음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최선 다한 것만으로 대단하다. 쉽게 얻기보다 어렵게 얻으면 보상과 의미가 더 크니 너무 낙담하지 않길 바란다"고 제자를 위로했다.

교실에는 엎드려 울고 있는 학생도 보였다. 김영혜 3학년 부장 교사는 "수학 답을 맞혔는데 친구와 답이 달라 영어, 사회탐구를 망쳤는데 알고 보니 본인이 정답이었다는 학생이 많이 울었다"며 "평소 마음이 약해 모의고사 때 청심환도 먹던 친구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담임 교사들은 낙담한 제자를 달래기 바빴다. 4년 연속 고3 담임을 맡은 서혜진 교사는 "수능 하루 전날 제자에게 '내일 화이팅'이라는 쪽지와 선물을 줬는데, 시험 끝난 뒤 '선생님 쪽지에 오타가 있어요. 내일이 아니고 내년이요'라고 답장이 왔다"며 "오늘 학교에도 아직 오지 않았는데 위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윤·김정연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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