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가을빛은 고운 빛 [여행]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산의 짧은 晩秋]

세계일보

한 끗 차이다.

‘클라이맥스, 절정, 최고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순간 화려한 갖가지 미사여구가 허락된다. 사계절 중 가장 성대한 한 편의 쇼가 펼쳐진다.

‘그새 떨어지네.’

고개를 떨구며 어김없이 한숨을 짓는다. 매년 반복되는 모습인데도 마음 한쪽이 허해진다. 넋 놓고 바라보게 하던 이가 이렇다 할 이별 통보도 없이 떠난다. 화려함에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며 밝은 웃음을 짓게 하던 존재가 한순간 돌변해 시련을 겪는 드라마 속 주인공인 양 처량한 느낌이 들게 가슴을 찢어놓는다. 이만 한 감정이입의 대상도 드물다.

마치 변덕쟁이 같은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기간은 한 달도 채 안 된다. 누군가 ‘봄여어어름갈겨어어울’이라고 사계절을 말한다. 조금 따스해졌다 싶으면 무더워지고, 조금 시원해졌다 싶으면 추워진다. 봄과 가을은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후딱 지나가고, 긴 여름과 겨울을 맞는다. ‘떨어지는 잎새’를 보며 짧은 가을이 끝나고, 한 해가 슬슬 마무리되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은 초겨울이란 말보다 늦가을로 불러야 할 때인 듯싶다. 화려하고 화사한 분위기보단 차분하고, 처연한 기분으로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거니는 것이 어울릴 때다.

세계일보

황금 터널로 변한 충남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에는 제방을 따라 2㎞에 걸쳐 360그루의 은행나무들이 양편으로 열 맞춰 서있다. 발길 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걷기만 해도 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고즈넉한 풍경 품은 늦가을

충남 아산의 곡교천 은행나무길 황금 터널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치는 표정들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진짜 황금이 아닌데, 황금을 품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불과 1, 2주 전만 해도 그득그득하던 노란 잎사귀에 가려 하늘 보기가 힘들었지만, 이젠 노란빛과 하늘의 모습이 반반씩 보인다. 노란 지붕이 약간의 파란 하늘을 허락한 대신 나무 아래로 황금 카펫이 깔렸다. 이곳에선 딱히 봐야 할 것이 없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다. 평소 하던 대로 걸을 뿐인데, 마음은 쿵쾅거린다. 꼭 어디까지 갔다 와야 하는 것도 없다. 그저 발길 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갔다가 돌아오면 된다. 정취에 빠져든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분위기다.

은행나무를 이곳에 심기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다. 현충사 성역화 사업 일환으로 수령 10년 된 은행나무를 심었으니, 이제 나무들은 지천명을 넘어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곡교천 제방을 따라 2㎞에 걸쳐 360그루의 은행나무들이 양편으로 열 맞춰 서있다. 이 기간 많은 이들이 오갔지만, 타박 한 번 없이 매년 가을을 보내며 노란 물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일보

공세리 성당은 성당 자체의 모습도 빼어나지만, 그 주위의 나무들과 어우러진 모습에 반하게 된다.


노란빛과 다른 색의 고즈넉함을 원한다면 공세리성당이 있다. 공세리성당 부근에 이르면 작은 마을을 지난다. 단층 주택 지붕들 위로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한 성당 지붕 위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언덕을 걸어 오르면서 성당과 함께 시야에 잡히는 것은 나무들이다.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뽑은 거목, 노목들이 성당을 둘러싸고 있다. 성당 자체의 모습도 빼어나지만, 그 주위의 나무들과 어우러진 모습에 반하게 된다. 이맘때는 성당과 단풍, 낙엽이 모두 붉은빛으로 어우러져 있다. 붉은 벽돌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고, 사이사이 쌓인 회색벽돌의 질서정연함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기에 벽에 새겨진 흰 문양들은 단조로울 수 있는 성당 건물에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화려함을 더해준다. 성당 입구로 향하는 계단에서 바라보는 정면 모습과 계단을 올라 맞는 성당의 옆 모습은 또 다른 분위기다. 이때도 나무들이 한몫한다. 정면이든 옆면이든 오롯이 성당만 볼 수 없다.

세계일보

외암마을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들.


성당의 일부를 가린 나무들이 12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는 성당과 세월을 함께하는 존재라는 듯 보는 이에게 자신을 각인시킨다. 성당과 주위 모습이 잘 어우러져 이런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성당 주변의 팽나무, 느티나무 등 5그루의 보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 자체만으로도 범상치 않은데, 오랜 성당과 함께하고 있으니 양쪽이 서로를 더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성당 맞은편 박물관엔 이 성당에 1895년 부임한 프랑스 에밀 드비즈 신부가 사용한 찻잔과 안경, 낡은 의자들이 전시돼 있다. 나이 지긋한 이들이면 알 만한 ‘이명래고약’도 이곳에서 나왔다. 드비즈 신부는 프랑스에서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해 고약을 만들어 나눠줬다. 이를 배운 이가 이명래다. 이후 ‘이명래고약’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퍼지게 됐다.

처음 온 이들도 어디선가 본 듯하고, 우리나라의 오래된 성당이라면 이 같은 분위기를 떠올릴 듯싶다. 직접 오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이 성당을 봤기 때문이다. 공세리성당은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아내가 돌아왔다’ 등 7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곳이다.

세계일보

겨울을 나기 위해 초가 지붕 위에서 이엉 얹기 작업을 하고 있다.


◆전통과 어우러진 늦가을

우리네 오래된 마을의 늦가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외암민속마을이다. 오래된 마을들을 찾으면 느낄 수 있는 배산임수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설화산을 배경으로 앞에는 하천이 흐른다. 아담한 높이와 폭의 산과 하천이어서 아늑하다. 선조 때 예안 이씨 집안이 정착한 후 집성촌을 이뤘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성리학자인 외암 이간을 배출해 외암마을로 불린다.

세계일보

외암마을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돌담이다. 논밭을 일구다 나온 돌로 담을 쌓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하천에 걸쳐 있는 물레방아와 정자가 눈에 띈다. 그 옆으로 허수아비들이 정겹게 방문객을 맞는다. 요즘엔 시골에서도 허수아비들을 만나긴 쉽지 않다. 다양한 표정의 허수아비들이 추수한 논에 서있는 모습이 민속마을임을 느끼게 한다.

마을을 둘러보면 참판댁, 건재고택, 외암정사 고택들이 있지만,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돌담이다. 마을의 거의 모든 담장이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작을 위해 논밭을 일구다 나온 돌로 담을 쌓은 것이다. 돌담 너머로 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돌담이 이곳저곳 뻗어 있지만, 길을 따라 돌다보면 어느새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게 된다.

세계일보

온양민속박물관을 설립한 구정 김원대 선생 동상.


외암마을 인근의 맹씨행단에서도 늦가을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맹씨행단(孟氏杏壇)은 이름 그대로 ‘은행나무 단이 있는 맹씨 집안’이란 뜻이다. 행단이란 공자가 은행나무 단 위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얘기에서 나온 말로, 학문을 닦는 곳을 상징한다. 맹씨행단의 대표적인 인물은 조선 초 정승이자 청백리의 상징 맹사성이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살던 집이었다. 맹사성의 부친 맹희도가 이곳에 자리 잡았고, 최영이 맹사성을 알아보고 손녀 사위로 삼았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이후 최영 장군이 죽었고, 맹씨 집안에서 이 집에 들어오게 된다. 몇 번의 중수를 거쳤지만, 고려 때부터 현재까지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옥으로 가장 오래된 민가 중 하나로 꼽힌다.

행단이란 말처럼 집 안에 들어서면 본채 오른편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솟구쳐 있다. 600년이 넘은 이 나무들이 행단의 주인공으로 맹사성이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은행나무 아래서 맹사성은 학문에 정진하고 후학을 양성했을 것이다.

본채 뒤편은 맹사성과 부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사당 정면에 툇마루가 있어 마치 가옥처럼 느껴진다. 사당 오른편의 쪽문을 통해 언덕을 오르면 구괴정을 만난다. 맹사성과 황희, 권진 등 3명의 정승이 3그루씩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정자다.

세계일보

온양민속박물관엔 과거 백성들이 쓰던 물품들이 전시돼있다.


곡교천 인근 온양민속박물관에선 실생활에서 쓰였던 옛 생필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왕실에서 쓰인 화려하고 값비싼 오래된 유물들이 있는 박물관과는 다르다. 일상생활에서 쓰던 생필품을 전시한 곳으로, 박물관을 연 이가 출판사 계몽사를 설립한 구정 김원대 선생이다. 1978년 문을 열어 올해로 40년이다. 박물관을 딸 김은경 관장이 맡아 부친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김원대 선생은 값비싼 유물도 아닌 과거 생활에서 쓰던 당시엔 흔했던 물품을 하나씩 모았다. 새마을운동으로 옛 문물이 빨리 사라지다 보니 이를 후손들이 알 수 있게끔 모은 것이다. 말 그대로 돈이 안 되는 잡동사니를 모은 그의 고집 덕분에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이 지긋한 이들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물품이다. 손주들과 함께라면 어릴 적 추억을 눈앞에서 함께 보며 얘기꽃을 나눌 수 있다.

세계일보

물이 좋아 조선 때 임금이 많이 찾은 온양온천에서는 지금도 저렴한 가격에 목욕을 할 수 있다.


아산까지 와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온천이다. 날이 쌀쌀해지니 따뜻한 물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어진다. 온양온천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물이 좋아 조선 때 임금들이 많이 찾은 곳이다. 서울에선 전철로도 갈 수 있다. 지금도 온양온천을 찾으면 3500원이면 원탕에서 목욕을 할 수 있다.

아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