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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장애인과의 공존사회는 내 가족을 위한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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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장애 아들 키운 이야기 출간, 글쓰는 엄마 류승연씨

경향신문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워온 이야기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를 최근 펴낸 작가 류승연씨(41)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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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 글쓰기로 극복…장애 아이도 가족의 일원일 뿐

대책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 반대…내달 유튜브 방송도 시작


“지하철 안에서 발달장애인이 웃으며 뛰어다니는 것이 일상의 풍경이 돼야죠.”

정치부 기자가 ‘글쓰는 엄마’가 됐다. 작가 류승연씨(41)는 발달장애 2급인 아들 김동환군(9)을 키우고 있는 전직 기자다. 김군은 출산 과정에서 입은 뇌출혈로 지적장애인이 됐다. 류씨는 10년째 장애아를 키우며 느낀 어머니의 이야기를 모아 책을 냈다. 지난 3월에는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푸른숲), 10월에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샘터)를 출간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류씨를 만나 그의 삶과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류씨는 자신을 작가가 아니라 ‘글쓰는 엄마’로 규정한다. 그는 일간지 기자일 때 ‘독종’으로 불렸다. 기자일 때도, 엄마일 때도 그는 글을 써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지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할 수 있는 씨앗을 사람들의 의식에 심으려고 글을 쓴다. 류씨는 “우리는 어차피 장애와 공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장애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애와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친구·동료를 위한 보험”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류씨가 아들의 장애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3년 동안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기자라는 직업을 사랑했던 류씨는 상실감 때문에 뉴스도 보지 않았다. 류씨는 아들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다고 한다. 류씨를 구한 것은 ‘글쓰기’다. 류씨는 “엄마이자 아줌마로서 내 이야기를 작은 매체에 매주 연재했다. 그게 숨 쉴 수 있는 창이 됐다. 육아 때문에 자정을 넘겨서야 글을 쓸 시간이 나는데도 정말 즐거웠다”고 말했다.

김군에겐 56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누나 김수인양이 있다. 가족의 모든 관심과 사랑은 자연스레 장애인인 김군에게로 모아졌다. 딸은 유치원에 다니던 한때 “나도 장애인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장애아 엄마의 삶을 기사로 연재하면서 류씨는 장애인 형제자매가 있는 비장애인 독자들이 성인이 돼서도 가슴속에 부모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류씨는 가족 공동체로서의 김군을 생각한다. 류씨는 “이렇게 키워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저는 엄마인데도 동환이를 그저 장애인으로만 봤다. 동환이가 장애인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가족이 동환이만을 위해 살았다. 궁극적으로는 동환이도, 수인이도, 남편도, 저도 한 가정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내년 7월 장애등급제를 폐지할 계획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들의 오랜 바람이었지만 류씨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류씨는 “폐지 이후 어떤 기준으로 장애인을 지원할 것인지 장애의 특성과 기능은 천차만별인데 대안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하는 ICF(국제 기능·건강·장애 분류)라는 기준은 1400개 항목으로 장애를 분류하기 때문에 개인 특성에 맞춘 지원을 할 수 있다. 만약 ICF를 도입한다고 해도 연구진 구성과 예산안 편성이 필요한데 정부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단지 인권이 중요한 시대라 장애등급제를 폐지한다면 근본적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류씨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소설·영화·드라마도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동네 바보 형’이라는 자막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류씨는 “장애인의 모습이 예능에서는 조롱으로, 다큐멘터리에서는 극복 신화로, 드라마에서는 동정으로 나타난다”며 “한 드라마에서는 자폐증을 앓는 천재 의사가 나온다. 그런 ‘서번트 증후군’은 실제 생활에서는 1%도 체감하지 못한다. TV에서만 볼 수 있는 슈퍼 장애인”이라고 비판했다.

서점에서 ‘장애’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책은 ‘사회 코너’에 꽂혀 잘 팔리지 않는다. 류씨는 ‘소설 코너’에 꽂히는 장애(인) 소설을 쓰는 꿈을 꾼다. 그는 “장애를 제대로 다룬 소설을 반드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과 공존할 수 있는 씨앗을 사람들 마음에 심고 싶다.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20~30년 뒤 그 씨앗이 꽃을 피워 세상이 바뀐다면 편히 죽을 수 있다”고 했다.

류씨는 발달장애에 관한 유튜브 방송도 12월에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류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왜 공존해야 하는지 세상에 공개적으로 외치고 싶다”며 웃었다.

글·사진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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