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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439억원 중 68억 사라졌다…이국종 교수 울린 불용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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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어디가] ⑤


“한 지자체에서 1800억원을 들여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어놨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억여원이라고 했다. 1800억원이면 중증 외상 센터 전체 건립비용을 상회하며, 소방 항공대 두세 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의 책『골든아워』의 한 대목입니다. 13만부가 팔린 이 책에서 이 센터장은 예산 부족 얘기를 자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국종 예산’이라 불리는 권역 외상센터 중증외상 전문치료 체계 구축 예산은 439억원(2017년)→601억원(2018년)→646억원(2019년)으로 매년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북한군 병사 덕에 증액되었다던 중증외상센터 관련 예산 250억원이 그 겨울이 지나가면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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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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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의 엄살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예산은 배정이 되고 매년 늘지만, 채 다 쓰지 못한 ‘불용(不用)예산’이 됐기 때문입니다. 올해 발표된『2017 회계연도 결산』에 따르면 16개 권역 외상센터의 지난해 평균 예산 실제 집행률은 77.8%로, 쓰지 못한 돈이 68억8000만원에 이릅니다. 왜 못 썼느냐고요? 전담의료진 47명을 충원할 돈인데 사람을 못 구했습니다. 외상센터의 일은 고되고 의료사고 위험도 높아 근무를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내년엔 올해보다 200명 넘게 늘린다고 하나 충원이 안 되면 또 불용예산이 남게 됩니다. 단 3명으로 과를 운영하는 박찬용 원광대학교 외상 외과 교수(대한외상학회 총무이사)는 “내달까지 충원 가능한 의료진 명단을 제출 못 하면 예산을 받을 수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문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권역 외상센터의 불용액 문제는 매년 누차 반복됐다.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불용예산이 된 경우는 많습니다. 2017회계연도 기준으로 예산 집행이 부진한 사업은 23개 부처 147개 사업에 이릅니다. 당초 예산 3조 77억원 중 9191억원(30.6%)이 집행됐습니다. 외상센터 예산처럼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치밀한 고민이나 계산 없이 “일단 받고 보자”고 신청한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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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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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예금 예산도 그중 하나입니다. 2017년 1조 6286억원 중 7440억5400만원이 불용처리됐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매년 수신 금리를 높게 예측하면서 매년 지급 이자에서 대규모 불용이 발생한다. 예금수신액과 수신금리 예측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해대책비도 불용 규모가 큽니다. 농작물 등이 자연재해를 입었을 때 농민에게 복구 비용을 지원해주는 금액인데 지난해 예산 765억원 가운데 불용액은 321억3300만원이었습니다. 특히, 재해대책비 융자는 285억원이 편성됐지만, 수요가 없어 900만원만 대출됐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재해대책비 사업은 2013년 이후 매년 큰 폭의 예산 불용이 발생하고 있어 조정해야 한다”(국회 예산정책처)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시민과 밀접한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며 대대적으로 내세운 ‘생활 SOC’ 예산 중에서도 집행률이 낮은 사업이 많습니다. 도시재생 융자 사업은 2017년 예산이 550억여원이었지만 280억원(51%)은 불용처리가 됐습니다. 행정절차가 지연되거나 사업이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은 “집행률이 낮은 경우 민원이나 보상 때문에 지연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실효성이나 타당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습니다. 좋은 예산센터 소장인 고려대 행정학과 김태일 교수도 “쓸 명분이 없는데 예산만 타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사회적 가치를 높인다는 공감대가 있으면 투명한 공개를 전제로 예산이 지원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별취재팀=권호ㆍ서유진ㆍ한영익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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