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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車 피하려다 날개 짧아진 제비… 도시가 만든 야생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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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가 둥지를 박차고 나와 공중에서 천천히 선회한다. 둥지에는 아직 솜털을 벗지 못한 새끼 두 마리가 어미가 가져다줄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바닷가 절벽의 광경이 아니다. 매는 방금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와 퀸스를 연결하는 트록스넥 현수교의 110m 높이 기둥에서 날개를 펼쳤다. 뉴욕 교통국 과학자들은 대형 다리가 매들의 새로운 서식지가 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도시가 새로운 진화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 과거 야생동물을 떠나게 했던 도시의 혹독한 환경이 새로운 생물의 특성을 단기간에 진화시키고 있다. 가로등 불빛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거미가 나오고 달려드는 자동차를 날렵하게 피하는 제비도 등장했다. 도심에 살기 위해 새로운 유전자까지 갖춘 생쥐도 나왔다. 도시가 빚은 진화는 새로운 희망일까, 파국의 전조(前兆)일까.

거미와 나방의 가로등 싸움

뉴욕의 매는 비둘기라는 풍부한 먹잇감을 노리고 서식지를 도시로 이동한 경우이다. 서식지만 바뀐 게 아니라 행동까지 달라지기도 한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의 토머 크자크지키스 박사 연구진은 지난달 말 국제학술지 '자연의 과학'에 더 이상 가로등을 피하지 않게 된 거미를 발표했다. 거미는 대부분 곤충과 마찬가지로 빛을 싫어한다. 거미도 다른 천적의 눈에 띄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가로등에 거미의 먹잇감인 곤충들이 몰려든다. 연구진은 도시에 사는 거미는 이제 가로등을 과거보다 덜 피하게 됐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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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독일과 이탈리아 다섯 지역에서 도시와 농촌 모두에 사는 별무늬꼬마거미의 알집을 수집했다. 나중에 알집에서 나온 새끼 거미 783마리를 한쪽은 밝고 다른 쪽은 어두운 상자에 넣었다. 농촌 출신 거미들은 3분의 2가 어두운 방을 택했다. 반면 도시 거미들은 절반만 조명을 회피했다. 도시에 사는 부모가 가로등 밑에서 거미줄을 치던 행동이 새끼에게 이어진 것이다.

반대로 살기 위해 가로등의 유혹을 멀리하게 된 도시 나방도 있다. 지난 2016년 스위스 과학자들은 도시에 사는 집나방이 인공 조명을 피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프랑스와 스위스의 도시와 농촌에서 집나방 애벌레를 수집해 실험실에서 키웠다. 애벌레가 어른 나방으로 자란 다음에 조명 실험을 하자 농촌 나방은 바로 불빛에 몰려들었지만, 도시 나방은 절반이 빛을 멀리했다.

자동차 피하려고 날개 짧아진 제비

도시에 살기 위해 몸 형태가 바뀐 생물들도 있다. 미국 털사대 연구진은 지난 2013년 네브래스카주에 사는 삼색제비가 자동차에 부딪혀 죽는 수가 급감한 것은 날개가 갈수록 짧아졌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원래 삼색제비는 절벽에 흙으로 둥지를 짓고 사는데 최근 도시의 교량 밑을 서식지로 삼은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교량 밑 둥지를 나오면 바로 도로여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제비도 많았다. 연구진은 1983년부터 2012년 사이에 자동차에 치여 죽은 제비 2000여 마리를 조사했다. 그 결과 죽은 제비의 날개 길이가 군집의 다른 제비들보다 늘 수㎜ 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제비가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기 위해 급회전이 가능한 짧은 날개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차 사고로 죽는 제비 수는 갈수록 줄어 2012년에는 단 4마리밖에 안 됐다.

민들레와 같은 국화과 잡초인 '크레피스 상크타(Crepis sancta)'는 도시에 살기 위해 씨앗의 모양도 바꿨다. 상크타는 원래 민들레처럼 솜털이 달린 씨앗을 바람에 날려 퍼뜨린다. 하지만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에서는 씨앗이 날아가도 뿌리를 내릴 땅을 찾기 어렵다. 프랑스 기능진화생태학연구소 과학자들은 도시에 사는 상크타가 5~12세대 만에 솜털을 줄이고 씨앗의 무게를 늘려 부모가 사는 땅 근처에 바로 떨어지도록 진화했음을 밝혀냈다.

야생 동식물들이 단기간에 진화를 통해 도시 환경에 적응한 사례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호주에 사는 무당거미는 도심에 열이 누적되는 열섬 현상 덕분에 농촌 거미보다 몸집이 훨씬 커졌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사는 생쥐는 인간이 버린 음식물을 먹으려 식중독을 이겨내는 유전자까지 진화했다. 캐나다 토론토대 마크 존슨 교수와 미국 포덤대 제이슨 문시-사우스 교수는 지난해 '사이언스'에 도시에서 이뤄진 진화 사례 192건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도시와 인간은 오늘날 이뤄지고 있는 진화의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시의 진화는 생태계 파괴를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올 초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진화생물학자인 멘노 실추이젠 교수는 도시의 진화를 다룬 '도시로 온 다윈(Darwin Comes To Town)'이란 책을 썼다. 그는 "도시에서 적응한 종보다 훨씬 많은 종이 서식지를 잃고 이미 사라졌음을 알아야 한다"며 "생태계를 손대지 않고 보존해야 종 다양성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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