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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ESC] 우울과 불안의 흙탕물, 가만히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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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커버스토리┃명상

종교적 색채는 빼고 과학화한 명상 관심 높아져

“종교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 명상은 일상적”

인지행동치료에도 명상의 요소를 더한 경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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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명상을 종교적인 색채를 벗어던지고 과학적 분석 틀로 연구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과학명상 콘서트도 열리는 추세다. 하지만 ‘명상은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의구심 없이 수긍하기가 어렵다. 과학을 빙자해 ‘명상 산업’에 눈독들인 이들의 ‘마케팅 수법’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명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최근 경향을 눈여겨보면 의구심이 호기심으로 변한다. ‘정말? 명상이 과학적이라고? 왜?’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을 풀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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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스트레스 관리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직 문제로 고민이 깊던 차여서 명상을 교육한다는 곳을 찾았는데, 한 번 가고 다시 가지 않았다. 뭔가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느껴지는 데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28살 직장인 김선화씨는 그렇게 명상을 처음 접한 뒤 다른 길을 찾았다. 명상을 하기에 앞서 명상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과학적인 연구가 많았다. 어느 정도 의심이 풀렸고, 과학을 접목한 명상을 일상에서 충분히 접하고 있는 중이다.”

과학적 사고를 교육받아온 사람에게 명상은 이렇듯 도전의 대상이 된다. 종교적인 수행으로서의 명상이라면 설명과 설득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고 건강을 관리하는 ‘도구’로 명상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먼저 느껴보세요’라는 속삭임에 합리적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노영은(27)씨도 그런 이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명상에 대해 거부감은 적었지만,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풀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많이 읽고 공부하는 것. “관련 기사를 찾아본다. 또 명상가이면서 심리학자이기도 한 타라 브랙 등 심리학 기반을 가진 작가, 선생님들의 글을 읽는다.” 이제 명상은 20대를 중심으로 트렌드로 뜨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들의 문제 제기에 답하는 전문가들도 하나둘 늘고 있다.

“명상은 과학적이고, 세속적이고, 일상적일 수 있다.” 아주대학교 명상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심리학과 김완석 교수는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종류에 관계없이 각자의 신들을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한 행위가 있다. 종교적 수행으로서의 명상이다. 종교마다 달리 부르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보면 명상은 오히려 탈종교적인 것이다. 어떤 목표로 명상을 하는지에 따라 탈종교적일 수 있다.”

최근 종교의 색채를 벗어나 대중화 하는 명상, 그 중심에는 40여년에 걸쳐 체계화하고 과학화한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자신의 현재 내적 경험에 대한 비판단적인 주의와 알아차림)이 자리 잡고 있다. 불교의 수행법인 위파사나(알아차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명상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다소 보수적일 법한 의사들도 과학적 접근에 기반 한 탈종교적인 명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도입이 막 시작되고 있는 모양새다. 가톨릭대 의과대 서울성모병원은 대학병원 중 유일하게 ‘마음챙김 명상’을 활용하고 있다. 정신질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많은 근거가 있어 시작했지만 오해와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발족한 대한명상의학회 회장이기도 한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 명상을 소개하는 데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한 가지는 불교 기반이라는 생각이 깊다는 것, 다른 한 가지는 명상이 초자연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은 명상을 하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기독교인이다. 의사고.(웃음)” 오늘날의 ‘마음챙김 명상’이 충분히 탈종교적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실제 명상이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어떤 작용을 할까? 김완석 교수는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명상을 하면 긍정적인 느낌이나 만족감 등에 작용하는 뇌의 부위가 더욱 활성화한다’는 것과 ‘명상이 신체의 면역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명상은 정신 활동일진데, 물질로 이뤄진 뇌가 변한다니? 김 교수는 “그런 생각은 과거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다는 심신이원론적 사고에 기반 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나온 여러 연구에 따르면 마음, 정신활동은 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뇌는 가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체와 정신을 일원론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들이 여럿이다”고 덧붙였다. 채정호 교수는 “이미 심리치료 관련 교과서에도 ‘마음챙김 명상’의 요소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인지행동치료의 제3동향을 보면 수용전념치료(ACT), 변증법적 행동치료(DBT) 등이 있는데, 그 치료들이 기본적으로 ‘마음챙김 명상’의 요소를 갖고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와 그것을 수용한 심리치료의 기법들을 보면 ‘명상이 과학적, 의학적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도 될 것이다.”고 말했다

누구나 과도한 업무로 생긴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의 관계를 생각할 때가 있다. 내 경우는 기자로 일하며 ‘기사 마감’에 허덕일 때다. 바로 이 순간 말이다. 다른 조건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최종 데드라인이 닥쳐오면 아침까지만 해도 잘되던 소화가 되지 않고, 가슴이 콕콕 쑤신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묻는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으셨나요?” 별다른 내장 기관의 상처를 발견하지 못한 의사가 하는 말이다. ‘심인성 질환’, ‘스트레스성 질환’이라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어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처방은 마음을 다루지 않는다. 김완석 교수는 이 부분을 지적한다. “아직까지 국내 의사 대부분은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교육을 받는다. 최근에서야 그 원인이 마음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성 만성 질환을 겪으며 온갖 방도를 찾는다. 현대인들은 게다가 스트레스가 더 많은 환경에 산다. 에스엔에스(SNS)를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지만, 돈이나 힘 등을 타인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더 받기도 한다. 김 교수는 “명상은 건강한 의미의 자기이해를 권하고, 남과의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측면이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정신 질환의 치료를 위해 스스로 명상 프로그램을 찾는 이들도 있다. 주아무개(27)씨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고, 약물 치료를 받곤 했다. 그러나 지난 5년 사이 재발할 때가 많았다. 명상을 활용해 우울증을 치료하면 재발이 드물다고 해서 일부러 관련 치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갔다. 6개월 정도 지났는데, 현재로서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채정호 교수는 약물 등 다른 치료로는 효과가 없던 환자들이 완치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다. “몇 년 씩 공황장애나 공포증 때문에 고통 받고 살던 사람이 그 ‘생각’이 진리가 아니라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어두운 마음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분들이 있다.” 전진용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새터민(탈북인)의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에 ‘마음챙김 명상’을 접목했다. 완전히 다른 체제와 공간 속에서 불안을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새터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전진용 전문의는 불안과 우울에 대한 명상의 효과와 그 원리를 ‘흙탕물 바라보기’를 빗대 설명한다. “보통은 환자에게 정신 질환, 병과 싸우라고, 불안과 우울을 떨치라고 한다. 그런데 ‘마음챙김 명상’은 불안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그것을 집중하고 바라보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흙탕물이 담긴 병에 흙을 거르려고 하면 자꾸 흙이 떠오르지만, 가만히 놔두면 물이 맑아진다. 필요하면 그 위에 물만 뜨면 된다.”

명상의 ‘효능’은 매료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과유불급의 진리는 명상의 의학적 활용에서도 적용된다. 채정호 교수, 전진용 전문의 모두 명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전진용 전문의는 “우울증이 심해 자살·자해의 위험이 있다든지 할 때 명상이 좋다고 해서 명상만 하면 안 된다. 증세가 심해지는 중에 명상만 하면 자칫 병을 키우고 만성화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명상을 치료 방법 중 하나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채정호 교수는 적절한 안내를 통해 건강하게 명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다. 독학으로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고, 심신이 건강하지 않은 분 가운데는 명상을 하다가 그 증상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상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의 국립보완통합의학센터(NCCIH)가 누리집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 ‘명상의 안전과 부작용’, ‘고려해야 할 사항’도 앞선 두 의료인의 조언과 같은 맥락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상은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 안전하다고 간주됩니다.’, ‘정신질환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명상은 증상을 유발하거나 악화할 수 있다는 드문 보고가 있습니다.’ ‘기존의 치료를 대체하기 위해 명상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명상 강사의 훈련 및 경험에 대해 질문하십시오.’ 국내의 명상에 관심 있는 이들도 적용해야 하는 원칙으로 보인다. 보다 건강한 삶을 위해, 보다 안전한 명상을 위해서 말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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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사전적 뜻은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다’이다. 그러나 정작 명상 전문가들은 생각을 거두고, 감각과 마음에 집중할 것을 권유한다. 40년 전부터 체계화한 ‘마음챙김 명상’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명상은 종교적 색채를 덜고, 과학화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정신 질환의 치료에 명상을 도입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마음 건강과 스트레스 관리에도 명상이 좋은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명상은 디지털 기기를 꺼둬야 가능할 것 같지만, 청년들은 스마트폰 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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