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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1인당 1200만원씩 내고도… 새벽 2시간 '고난의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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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전 7시 10분 경기 동탄신도시 메타폴리스 앞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두 줄로 늘어섰다. 서울 강남행(行) 한 줄, 서울역행 한 줄. 시간이 지날수록 행렬이 점점 길어져, 나중에 온 이들은 65m짜리 버스정류장 밖으로 밀려나 찻길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사이 사람을 가득 실은 강남행 M4403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서지 않고 통과했다. 대기 행렬에서 "동탄2에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 출발지에서 버스를 타는 바람에 차 타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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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에서 서울까지는… KTX로 서울서 대구 갈 시간 - 지난 8일 오전 경기 동탄신도시 메타폴리스 앞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서 통근자들이 길게 줄을 선 채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길이 65m의 정류장 밖 찻길까지 줄을 서 있다.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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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계획대로라면 동탄에는 3년 전부터 서울을 오가는 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이 개통됐어야 한다. 해당 비용도 이미 주민들이 아파트 분양 대금에 포함해서 다 지불했다. 1인당 평균 1000만원(동탄1), 1200만원(동탄2)씩이다. 하지만 GTX-A 노선은 현재 '2021년 개통'으로 밀려 있고, 이마저 최소 3년은 더 밀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최근 '3기 신도시' 개발 방침을 발표한 가운데, 2000년대 후반 수립된 2기 신도시 주요 광역교통대책 21개 모두가 당초 준공 계획보다 지연됐고, 17개 사업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2기 신도시 주민들은 아파트를 분양받는 시점에 교통 관련 사업비(교통부담금)로 1인당 평균 1200만원을 분양가에 얹어 지불했지만, 누구도 제때에 약속된 교통 인프라를 누리지 못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통 대책이 선행되지 않는 한, 3기 신도시에 수백만 채를 지어도 목표인 서울 집값 잡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도시 대형 교통대책 21개 중 준공은 단 넷

현행법은 신도시를 건설할 때 반드시 '광역교통대책'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대책이 실현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국회 국토교통위 이현재 의원(자유한국당)이 2기 신도시 중 2006~ 2010년 교통 대책이 수립된 7개 신도시의 사업비 상위 3개씩을 추려 사업 추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달 기준 완료된 사업은 21개 중 4개에 그쳤다. 김포고속화도로(김포한강), 국도 3호선 우회도로 확장(양주) 등은 예정 시점을 넘긴 뒤긴 하지만 완공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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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업이 몇 번씩 지연됐고, 양주 국도 3호선 확장은 15년 밀렸다. 위례신도시에서는 계획된 철도망 4개 중 착공한 곳이 제로(0)다. 위례신사선은 2013년 준공 예정이던 것이 2021년으로 한 차례 밀리더니 지금은 준공 계획조차 없다. 화성동탄에서는 서울로 가는 GTX-A 계획이 지연 중이고, 시내를 관통해 이웃 도시와 연결되는 트램(Tram·노면 전차)은 구체적 사업 시행 계획이 없다.

최대 피해자는 서울 통근자들이다. 지난달 25일 오전 7시 30분 경기도 양주옥정신도시 최대 규모 C 아파트 단지를 출발,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 시청역까지 이동해봤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최단시간 코스였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기까지 18분, 버스를 타고 23분, 1호선으로 갈아타는 데 6분, 지하철을 타고 54분 걸렸다. 시청역에 내린 시각이 오전 9시 11분. 주민 이정은씨는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출퇴근에만 4시간을 쓴다"며 "작년 초 '지하철 7호선과 GTX 중 하나 정도는 빨리 되겠지'란 생각으로 입주했는데, 둘 다 일정이 계속 밀리는 걸 보니 앞날이 캄캄하다"고 했다.

어른만 힘든 게 아니다. 동탄2신도시 B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 구모(9)군의 생활계획표에는 '학원'란(欄)이 3시간으로 나와 있다. 수업은 1시간이지만, 동탄1 학원가(街)로 가는 시내버스 정류장이 멀고, 배차 간격도 길어서다.

구군 어머니(43)는 "택시를 이용하고 싶지만, 택시조차 잘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동탄1·2가 포함된 화성시의 택시 수는 인구 600명당 1대꼴. 인구당 택시 수가 서울 5분의 1 수준이다. 면적은 화성시가 690㎢로 서울(605㎢)보다 더 넓다.

◇평균 1200만원씩 내고도 수년째 '교통지옥'

사실 2기 신도시 주민은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한 비용 상당 부분을 이미 지불했다. 국회 홍철호 의원(자유한국당)에 따르면, 수도권 2기 신도시 10곳의 광역교통개선대책에 필요한 사업비는 31조3900억원. 그런데 그중 17조8063억원(56.7%)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사업 시행자가 내는 '부담금'이다. LH는 부지를 팔면서 이 돈을 건설사로부터 받았고, 건설사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해당 금액을 분양가에 녹여서 팔았다. 신도시 주민이 길게는 10여 년 전에 이미 낸 것이다.

2기 신도시 주민 1인당 평균 1200만원으로, 수원광교가 2200만원으로 가장 많고, 성남판교(2000만원), 파주운정(1700만원), 위례(1400만원), 김포한강 및 화성동탄2(각 1200만원), 화성동탄1(1000만원) 등의 순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정부는 광역교통대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관할 시·도나 LH 등에 '개선 권고' 또는 '시정 요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최근 11년간 단 한 차례도 교통 문제로 개선을 권고하거나 시정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홍철호 의원은 밝혔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2기 신도시는 '자족 도시'라는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면서 교통 대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게 패착이었다"며 "3기 신도시는 교통 대책을 철저하게 수립한 뒤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장상진 기자(jhin@chosun.com);양주=김충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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