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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뒤끝작렬] 북한에 보낸 감귤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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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도성해 기자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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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제주공항에서 장병들이 제주산 감귤을 공군 C-130 수송기에 적재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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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로 제주 감귤 200톤을 구입해 군 수송기에 실어 지난 11일부터 이틀에 걸쳐 평양으로 보냈습니다.

전달 책임을 맡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북측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잘 전달하고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송이버섯을 상봉을 하지 못한 이산가족들에게 다시 선물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은 답례로 받은 감귤을 어떻게 처리할지 여부는 지켜볼 일이지만 남북 교류사에 기록될 훈훈한 이벤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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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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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과거 대북송금 사실을 거론하면서 "귤상자 속에 귤만 들어있다고 믿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의심을 받을 만한 위험한 불장난은 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페이스북)

귤 박스 안에 몰래 현금이라도 넣어 보낸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겁니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도 "지금까지 대북 지원 역사에는 투명한 배분 경험이 없다. 우리는 이 귤이 어떻게 배분될지 알 길이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감귤이 "김정은을 목숨으로 옹위하며 특별시(평양)에 살 권한을 허가받은 특권계층 260만 명에게 보내지는 지금, 문 대통령의 나라에는 28만 명의 결식아동이 있다"고 말했습니다.(페이스북)

북한에 감귤 보낼 돈이 있으면 남쪽 국민들부터 챙기라는 힐난입니다.

같은 당 김영우 의원도 "우리는 핵을 갖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절대적으로 안보 열세인데, 지금 북한에 감귤을 보내는 것은 정말 옳지않다"고 주장했습니다.(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도 온통 공격적입니다.

'대북 제재 위반이다'에서부터 '10kg 기준으로 제주 감귤 시세가 2~3만원이면 4~6억 원이 드는데 이 돈은 어디서 났는지 출처를 밝혀라', '내가 낸 세금을 대북 지원에 함부로 쓰지 말라'는 등의 악플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잊고 있는 게 있습니다. 북한에 감귤을 보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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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제주공항에서 장병들이 제주산 감귤을 공군 C-130 수송기에 적재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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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지난 1998년에 100톤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4만8천여 톤의 감귤을 북한에 보냈습니다. 이 감귤은 노약자와 산모, 탁아소 등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고, 제주도 방북단이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또 감귤은 대북 제재 대상도 아닙니다. 유엔 대북 제재 품목에는 농산물은 명시돼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감귤 선물은 '농사가 너무 잘돼 남아도는 감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하는 제주 농민들의 고민도 덜고,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도 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제주 방문 가능성도 생각해보게 하면서 남북 화해 무드를 이어나가는 다목적 교류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용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업무추진비로 사용한 것이고, 일괄구매했기때문에 시가보다는 저렴하게 구입했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답례차원에서 북한에 감귤을 보낸 것인데 정치적으로 과잉 해석하는 것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며 논란이 계속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한국당을 향해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사과박스부터 시작해 과일 대신 엉뚱한 물건을 과일상자에 담는 일이 자유한국당의 전문일지 모르지만 괜한 시비 걸기를 중단하라"고 말했습니다.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들이 헌납한 거액의 현금이 담긴 사과박스를 여의도 당사로 실어 나른 '차떼기 사건'을 소환하면서, 사과박스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돈을 받아본 분들이니 북한에 보내는 귤 상자 안에도 다른 것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은 것입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의 한 청취자는 어제 아침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맞습니다. 귤 상자안에는 귤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남북 화해와 평화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는 김정은 위원장 연내 답방에 대한 소망까지 들어있다"는 의견들도 덧붙여졌습니다.

인지상정에 따른 답례를 두고 "감귤로 핵폭탄은 만들지 못한다"는 웃지 못 할 해명까지 해야 하는 서글픈 에피소드 하나가 또 추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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