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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대고려’ 전시회 띄우느라…뒤죽박죽된 사제 상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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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의 시사문화재]

중앙박물관, 고려 유물 유치 막히자

북을 향해 왕건상 대여 촉구성 이벤트

희랑대사 좌상 1000년만의 나들이

모조품 앞세워 왕건 사당 인사까지

총괄진행자는 국정농단 연루 공무원


한겨레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이운해온 희랑조사 복제상이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 숭의전 경내에 도착해 사당의 왕건 초상과 만남 의식을 하기위해 옮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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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년 전 고려 왕조를 세운 태조 왕건에겐 불가의 큰 스승이 있었다. 왕건의 건국 사업을 물심양면 도운 10세기 해인사 고승 희랑대사다. 지난 주말 대사를 기려 만든 조각상의 복제품이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400km이상 떨어진 경기 연천 왕건 사당을 찾아가 인사하는 큰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퍼포먼스를 꾸린 이들은 1000년만의 외출이자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라고 치켜세웠다. 문화재 동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스승의 복제상이 제자의 사당을 일부러 찾아가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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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랑대사 좌상.


이 퍼포먼스를 연출한 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이다. 12월초 개막하는 고려건국 1100돌 기념 ‘대고려’ 전을 앞두고 핵심 출품작인 해인사의 희랑대사좌상과 고려대장경판 일부를 박물관으로 옮기는 이운(移運) 프로젝트가 총감독격인 배기동 관장 지휘 아래 9~10일 진행됐다. 먼저 9일 오전 절에서 희랑대사 좌상과 고려대장경 사간판(절에서 찍은 목판) 4점, 비로자나불상 복장 유물 6점의 이운을 부처에게 알리는 고불식이 열렸다. 그뒤 좌상 진품과 장경판, 복장유물들은 그날 오후 바로 박물관에 들어갔으나, 절 성보관에 진품 대신 전시되어온 희랑대사의 복제상은 박물관서 하루를 묵고 10일 오전 연천의 왕건 사당 숭의전으로 가마에 태워져 다시 옮겨졌다. 박물관 쪽은 사당 안 왕건의 초상 앞에 좌상을 안치한 뒤 배 관장이 헌관으로 참여하는 만남 예식인 고유제를 치렀고, 오후 용산 본관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별도의 영접행사까지 펼쳤다. 희랑대사 복제상과 다른 대여유물인 고려대장경판 복제본을 실은 가마를 승려와 의장행렬이 둘러싸고 취타대의 연주 속에 박물관 정문에서 열린마당까지 행진하는 거창한 얼개의 이벤트였다. 복제품만 행사장에 등장한 것에 대해 관계자들은 유물 안전과 보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 쪽이 복제상까지 끌어들여 희랑대사와 왕건의 만남 행사를 띄운 건 이유가 있다. 북한 쪽과 대여를 협의중인 고려시대 유물 가운데 희랑의 제자인 왕건의 청동조각상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왕건상이 남한에 올 경우 스승과 제자의 상이 역사상 처음 만난다는 극적 의미를 만들 수 있다.

희랑대사는 10세기 나말여초 시대 전란으로 황폐했던 해인사를 다시 일으켰고, 고려 팔만대장경이 자리한 법보종찰의 터전을 닦은 인물이다. 태조 왕건의 통일 전쟁 당시 해인사를 포함한 영남 일대의 불교세력은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과 후백제 왕 견훤을 지지하는 남악으로 갈라져 서로 맞서고 있었다. 희랑은 특유의 법력으로 당시 남도의 불교 세력들을 북악 중심으로 이끌며 건국에 큰 공훈을 세워 왕건과 나라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게 된다. 도적이 창궐하던 해인사 안팎의 영역을 지켰을뿐 아니라, 고려 건국 뒤 수백여결의 토지를 하사받아 대찰로 위상을 높이면서 조선초 팔만대장경 경판의 보존처로 간택되는 역사적 기반을 만들었다.

이런 공덕을 기려 그의 열반 직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랑조사상은 우리 미술사에서 고대·중세기 유일한 사실주의 조각의 최고 명품으로 꼽힌다. 1990년대 개성 왕건릉 부근에서 출토된 왕건상이 남쪽에 오면 당연히 스승과 제자격으로 같이 전시될 것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북한 쪽에서 왕건상을 대여해줄지 확정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박물관 쪽은 왕건상과 만월대 출토 금속활자 등 출품을 원하는 북한 유물 17점 목록을 통일부에 전달하고 지난달부터 실무접촉에 들어갔지만, 북미 관계가 경색되면서 현재까지 협상은 진척된 것 없이 미진한 상태다. 북한 박물관 쪽과의 만남조차 아직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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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개성에서 출토된 청동 왕건상. 지식산업사 제공


박물관 쪽은 희랑대사상의 방문 퍼포먼스를 통해 반드시 왕건상이 와야 한다는 의사를 북쪽에 상징적으로 표명한 것이라고 배경을 밝히고 있다. 배 관장도 “개성의 진산 송악산에서 가까운 연천의 숭의전에서 왕건 초상과 희랑대사의 상이 만남으로써 고려 건국의 의미를 분명히 알리고, 북쪽에도 우리가 왕건상 출품을 간절히 바란다는 뜻을 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현재 대고려 전시회는 대마도 불상 미반환 사태의 여파로 유럽·일본·중국 등지의 국외 공사립 박물관들이 소장한 고려 문화재들의 출품이 사실상 가로막힌 상태다. 해인사와 북한 유물에 전시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희랑대사 복제상의 숭의전 방문 행사는 박물관 쪽이 왕건상과 금속활자 등의 북한 유물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상황을 알리는 일종의 ‘촉구성 퍼포먼스’였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사실 문화재동네는 박물관의 희랑대사상 퍼포먼스를 그리 달가와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학계나 불교계는 물론 박물관 안에서도 희랑이 왕건의 큰 스승인데 제자 사당에 인사하러 가는 것 자체가 격식에 어긋날 뿐아니라 모조상을 굳이 끌어다 사당의 상봉 예식에 쓴 건 전례가 없고 진정성도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퍼포먼스를 추진한 박물관 실무진에는 박근혜 전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당시 연관된 정황이 드러났던 관료 공무원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지침을 내려보내며 문체부 창구 구실을 했던 전력이 밝혀져 문화예술인들이 징계를 요구해온 오진숙 문화교류홍보과장(4급)이 이운 프로젝트의 준비와 실행에 관여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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