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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비 젖은 코드 감전 겁나” 충전소 맴도는 전기차 운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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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소 98%, 지붕 없어

빗물·이물질 유입 땐 사고 위험 커

청주·제주 등선 감전·폭발 사고도

땡볕엔 충전기 조작창 식별 어려워

운전자들 “인프라 아직도 취약해”

중앙일보

태풍 ‘콩레이’가 상륙한 지난달 6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충전소를 찾은 운전자가 비바람을 맞으며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다. 국내 대부분 전기차 공용 충전소는 지붕이 없어 악천후에 취약하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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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 감전 걱정하며 충전하기, 직사광선에 노출된 LCD창 읽어내기….”

신종 극한 직업이나 아르바이트 안내 문구가 아니다. 국내 대부분의 전기차 충전소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이다. 전기차 충전소는 일반 주유소처럼 차량이나 충전기를 덮어줄 지붕이 없다. 서울(961곳)을 비롯한 전국 7351곳의 전기차 공용 충전소는 대부분 덮개가 없는 개방형 구조물이다.

지붕 없는 전기차 충전소는 불편함은 물론 안전성도 담보할 수 없다. 악천후 속에서는 비바람을 맞아가며 충전을 해야 한다. 물론 각 가정이나 아파트·건물 지하에 설치된 개별 충전기를 이용하는 운전자는 이런 불편함을 잘 모른다. 지난 7월 차량 등록대수 4만대를 돌파한 국내 전기차 인프라가 지닌 구조적인 양면성이다.

전기차를 모는 불편은 ‘전기차 천국’을 표방한 제주에서 쉽게 확인된다. 제주 관광지와 관공서 등에 설치된 충전기 1591개 중 지붕이 설치된 곳은 1.6%(26개)에 불과하다. 제주도는 지난 9월 현재 전국 전기차(4만6038대)의 29.6%(1만3636대)를 보유한 곳이다.

지난달 6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주차장. 손에 우산을 받쳐 든 한 운전자가 굵은 빗줄기 속에서 자신의 차량과 맞는 충전기를 찾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거센 바람에 우산이 꺾이자 비를 흠뻑 뒤집어써 가며 간신히 충전기를 꽂았다. 이날 제주에는 태풍 ‘콩레이’가 스쳐 가면서 초속 34.7m의 강풍과 시간당 23.6㎜의 폭우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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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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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충전소에 도착한 한 여성 운전자는 더욱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빌린 ‘볼트’ 차량의 충전기를 이미 앞서 도착한 차량이 사용하고 있었다. 30여 분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는 자신이 충전할 차례가 돼서도 충전기를 꺼내 들지 못했다. 장대비 속에 장시간 노출된 충전기는 물론이고 차량 내 충전구에도 빗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망설이던 운전자는 차 안에 있던 검은 비닐봉지로 손을 감싼 뒤에야 충전기를 차량에 꽂았다. 이은정(38·서울)씨는 “전기차는 감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비바람 속에서 처음 충전을 하려니 두려웠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나 정부는 국내에 출시된 전기차나 충전기는 감전 사고가 날 우려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지면과 접지돼 감전 가능성이 낮은 데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안전장치까지 장착돼 있어서다. 현대자동차 박민형 부장은 “전기차는 배터리 부분과 충전파트에 방수와 방진 설계를 해 침수 등 위급 상황시 전력이 자동으로 차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기차를 처음 접한 운전자들은 “비나 눈이 올 때 마음 놓고 충전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전기장치에 물이 들어가는 데 대한 심리적 공포가 큰 데다 유사한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제주에서는 지난 8월 도청 주차장에 설치된 충전기에서 빗물 등 이물질 유입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4월에는 충북 청주에서 감전으로 추정되는 충전기 사고가 난 데 이어 대구(7월) 등에서도 사고 사례가 접수됐다.

9월 말 현재 공용 충전기는 서울 961대를 비롯해 경기 1468대, 부산 294대, 대전 126대, 광주 220대 등이 설치돼 있다. 현재 운행 중인 서울(8105대), 경기(5235대), 부산(1288대), 대전(1031대), 광주(1134대) 등의 전기차 보급상황에 비해 크게 부족한 규모다. 서울의 경우 서울시가 관리하는 공용 충전기 16대 중 지붕을 갖춘 곳은 단 4기에 불과하다. 충전기를 조작하는 액정표시장치(LCD)가 햇볕에 반사돼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LCD 조작창이 남향이나 서향으로 설치된 탓에 낮에는 숫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관광특구인 제주에서는 관광객이나 장기 출장을 온 외지인들이 전기차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공용 충전시설만을 이용해야 해서다. 김창호(51·부산)씨는 “제주의 충전소가 많이 늘어난 것을 확인하고 렌트했는데 외지인이나 악천후를 고려한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박형수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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