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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클린디젤’ 정책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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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영국 가는 길에 죽어 반영(反英) 진영의 영웅으로 포장된 인물이 있다. 루돌프 디젤이다. 프랑스 파리 태생의 독일 국적 발명가 디젤은 1913년 9월 영국행 여객선에서 종적을 감췄다. 시신으로 나타난 것은 열흘 뒤였다. 한 언론은 이렇게 제목을 달았다. “영국 정부에 특허권을 팔아넘기는 일을 막기 위해 스스로 바다에 뛰어든 발명가.”

디젤은 젊은 시절 열역학 강의를 듣고 열에너지 대부분을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엔진 개발에 몰두했다. 디젤 엔진이 그 소산이다. 연비가 좋을뿐더러 휘발유보다 훨씬 무거운 연료를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로 경유다. 디젤은 한때 떼돈도 벌었지만 사업화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결국 말년엔 막대한 부채에 짓눌렸다. 여객선에 탑승했던 이유다. 사업 활로를 찾아 빚더미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정확한 사인은 지금도 모른다. 음모론 색채가 짙은 영웅 대접에 저승의 디젤은 쓰게 웃을지도 모른다.

디젤 엔진은 훗날 쓰임새를 크게 확장했다. 소형 자동차와 트럭, 철도차량, 중장비, 선박, 비행기 등에 전천후로 쓰인다. 용도가 제한되는 휘발유 엔진과 대비된다. 단점이 없진 않다. 요즘엔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힌다. 대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공의 적 신세까지 됐다. 2015년 ‘폭스바겐 사태’가 기름을 끼얹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2009년부터 시행된 ‘클린디젤’ 정책이 공식 폐기됐다. 그제 열린 제56회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에서 확정됐다. 법제적 손질은 내년 상반기에 가해진다. 10년 만의 퇴장이다. 경유차 95만대는 주차료, 혼잡통행료 감면 등의 혜택을 못 받게 된다. 좋은 시절은 끝난 것이다. 2030년까지 공공부문 경유차 퇴출 조치도 이뤄진다.

이번 조치가 디젤 차량의 종언을 뜻할까. 장담할 계제는 아니다. 차량 선택은 연료비에 크게 좌우된다. 경유가격 얘기가 없는 ‘클린디젤’ 폐기 선언이 허망하게 들리는 이유다. 온실가스 부문에선 경유차가 외려 낫다는 점도 유념할 일이다. 향후 반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결국 사회 관심이 미세먼지냐, 배출가스 오염이냐에 따라 운명이 갈릴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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