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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고]분식회계 사건, 부끄러운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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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났다. 경향신문과 박용진 의원이 제시한 내부문건을 보면 속된 말로 빼박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처럼 모든 사람이 공범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물론 관계 회사, 대응안을 컨설팅해주는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들과 변호인, 분식이 아니라고 의견서를 써준 전문가, 무심했던 이해관계자까지.

경향신문

문건을 보면 기업은 자본잠식을 막기 위해 실질지배력과 공정가치 서열체계 및 콜옵션 분류방식을 이용했다. 또한 해당 회사를 감사한 회계법인은 콜옵션의 처리방식에 대한 대안까지 친절하게 제시했다. 각종 수치와 평가금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이처럼 치밀한 의도가 있으면서도 의도적인 공시누락이 아니며 적절한 가치평가라고 시종일관 변명한 삼바 측과 변호인 측은 웰메이드 영화의 주역이다.

아, 모든 구성원이 공모한 행위에 방어수단이자 면죄부를 준 국제회계기준의 애매함을 빼먹었다. 이 상황에서도 ‘국제회계기준 내의 정당한 회계처리’라고 말하는 분이 계시는가? 사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국제회계기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쪽은 기업 측이었던 것 같다. 회계사도, 교수도, 규제당국도 기업이 착점을 한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으리라. 마치 알파고처럼 사람들에게 화두를 제공한 셈이다. 실제로 공정가치서열체계에 의한 가치평가와 실질지배력에 대한 연결범위의 모호함을 이용한 회계처리를 몇몇 기업들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국제회계기준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회계기준은 사용하는 주체의 의지가 투영된 것뿐이다. 국제회계기준에서 부여한 경영자의 재량권을 남용한 주체 탓이지, 진정으로 기업의 실질을 올바르게 보고하기 위해 국제회계기준을 사용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또한 이번 사건을 통해 원칙 중심의 회계처리는 변명만 정교하고 그럴듯하면 분식으로 잡아낼 방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무리를 해서라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던 걸까? 초일류 글로벌 기업의 윤리의식은 어디로 실종된 걸까? 기업을 돕기 위해 사면팔방으로 뛰어다닌 후원자들은 어떤 동기로 움직인 것일까?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암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규제당국의 위원은 임기가 끝나자마자 기업의 사외이사로 간다. 회계감사는 형식적이고 심지어는 감사인이 대안과 숫자를 제공한다. 기업의 감시기구와 규제당국, 회계업계의 많은 관계가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국제회계기준은 변명과 모호함의 근거가 되며 새롭게 도입한 회계개혁법안은 특정 이해관계자의 배만 불리고 기업에는 비용만 야기할 뿐 정보이용자 측면에서 진정한 회계투명성의 제고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것인가? 돈만 잘 벌고 수익만 창출하고 고용을 많이 하면 면죄부를 주는 시대는 지났다.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돈과 가시적 성과와 성공만이 중요한 가치요소일 뿐이다. 너무 급격하게 성장해서일까? 과정의 중요성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경쟁, 성공, 일등, 세계화, 최고, 그들만의 이너서클….

모든 구성원의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당사자인 기업과 운명공동체가 된 회계법인, 기업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소액주주나 내부감시기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좌우나 보수·진보의 개념이 아니다. 투명과 불투명,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다. 이제 부끄럽고 치욕적인 숫자(분식회계 금액)와 순위(우리나라 회계투명성 순위)는 이별하고 싶다. 과정을 공개하고 정보접근성을 높이자. 윤리적 사고와 공시 및 회계정보의 중요성을 알리자. 학연, 지연 등 관계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벗어야 한다. 결국 투명성을 높이려면 범국민적 차원에서 결과 위주의 사고방식을 전환하고 이해관계자 간의 정보비대칭을 해소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손혁 계명대 교수·회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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