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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 빛나는 시대극…‘영드’도 박찬욱이 연출하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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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6부작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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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비비시>(BBC) 6부작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의 방영이 시작됐다. 스파이 스릴러의 거장 존 르 카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동명 소설에 기반한 이야기로,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아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화제작답게 방영 전에 이미 10월14일 비아이에프(BIF) 런던영화제를 통해 두 편이 공개됐다. 시사회에서는 호평이 대세다. 2016년 <비비시>가 역시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성공적으로 드라마화해 유수의 시상식을 휩쓴 <더 나이트 매니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녔다는 평이다.

1979년 서독, 이스라엘 대사관 담당관의 집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난다. 피해자는 8살 어린이와 노인.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추적해오던 이스라엘 정보국의 쿠르츠(마이클 섀넌)는 테러 용의자가 자신이 쫓던 인물임을 확인하고 체포팀을 조직한다. 영국 런던의 젊은 연극배우 찰리(플로렌스 퓨)는 공연 중 객석에서 자신을 살피던 의문의 남자(알렉산데르 스카르스고르드)를 눈여겨본다. 며칠 뒤 친구들과 그리스 낙소스로 여행을 떠난 그녀는 해변에서 그 객석의 남자 베커와 다시 마주친다.

<리틀 드러머 걸>의 첫 회는 보통의 스파이 첩보물과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폭탄테러 장면으로 시작해 긴장감을 조성하더니 다음에는 찰리의 오디션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것이 단순한 배우 오디션이 아니라 그녀의 운명을 뒤바꿀 더 거대한 오디션의 예고편이었다는 사실이 차차 드러난다. 가령 그리스에서 찰리가 베커와 대화할 때 읽고 있던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가 그렇다. <뜻대로 하세요>는 “온 세상은 무대요, 모든 남녀는 배우”라는 불멸의 대사로 유명한 작품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대한 연극에 휘말리는 찰리의 운명을 암시한다.

서독의 바트고데스베르크에서 영국 런던을 거쳐 그리스 아테네까지, 유럽 각국의 도시를 넘나드는 미로 같은 이야기를 홀린 듯 따라가다 보면 금방 엔딩 신에 이른다. 줄곧 평행선을 달리던 쿠르츠의 서사와 찰리의 서사가 실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은 도입부의 테러 장면 못잖은 폭발적 흡인력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작은 북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는 듯하다.

박찬욱 감독의 팬이라면 즐길 만한 요소들도 곳곳에 있다. 박찬욱 감독은 전작 영화 <아가씨>에 이어 특유의 미장센이 시대극에서 한층 빛을 발한다는 것을 또 한 번 증명한다. 특히 아크로폴리스의 신전 앞에서 찰리와 베커의 실루엣이 빚어낸 밤의 풍경은 그들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과도 어우러지며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위장된 정체성과 진실한 사랑의 경계를 줄타기했던 <아가씨>에서 그런 것처럼 찰리와 베커의 운명 또한 절반은 폐허가 된 건축물 앞에 위태롭게 서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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