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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런 농담은 ‘노잼’···망하는 농담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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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커버스토리|농담

성공률 낮은 유머···엄격한 위계일 때 많아

성적 수치심·인종차별적 농담은 위험

약자·소수자 대상 유머 심사숙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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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 중 세조는 신하 중 신숙주, 한명회, 구치관을 아꼈다고 알려져 있다. <필원잡기>에는 세조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신숙주가 영의정이 되었을 때, 구치관이 새로 우의정이 됐다. 그래서 세조가 두 정승을 급히 내전에 불러서 일렀다. “오늘 내가 경들에게 물음이 있을 테니, 능히 대답하면 그만이지만, 대답하지 못하면 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두 정승이 모두 절하며 물음을 기다렸다. 그때 세조가 “신 정승”하고 부르자, 신숙주가 “예, 전하”하고 대답하였더니 세조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새로 된 신(新) 정승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했으니 잘못이다.” 그러면서 커다란 잔으로 벌주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구 정승”하고 불렀더니 구치관이 대답한즉, 세조가 일렀다. “나는 옛 정승인 구(舊) 정승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잘못했으니 벌주 한 잔!” 그렇게 커다란 잔으로 벌주를 내린 뒤, 세조가 또 “구 정승”하고 불렀더니 신숙주가 대답하므로 세조가 일렀다. “난 성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잘못하는구려.”

박영규의 <조선왕 시크릿 파일>에서 인용하는 세조의 성격과 관련한 에피소드인데, 둘 중 한 사람이 대답을 해도, 둘 다 대답하거나 둘 다 대답하지 않아도 벌주를 마시게 할 수 있는 ‘농담’이다. 이 뒤에 바로 이어지는 말은 이렇다. “옛말에 ‘왕은 농담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왕의 말 한 마디의 무게가 대단해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농담할 때는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회장님 앞에서는 떨어지는 낙엽도 재미있고 부는 바람도 배꼽 잡을 일이 된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웃음을 강제한다. 회장님이 아니라 부장님이어도 마찬가지가 된다. 그 와중에 아랫사람 앞에서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웃지 않으면 사람이 경직되었으니, 요즘 사람들은 유머를 모르니 하는 잔소리도 잊지 않는다. 껄껄껄.

많은 경우 농담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위계에서 발생한다. 웃음이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의무인 경우다. 백 번 들은 이야기여도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웃는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확률이 높은 유머는 위계가 엄격한 사람들 사이에서 윗사람이 구사하는 유머다. 골치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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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유머집>, <깔딱깔딱 유머집>, , <빵 터지는 건배사> <운과 복을 부르는 유머건배사>... 유머를 책으로 배우라는(정확히는 암기해서 써먹으라는) 책들이다. 한때 <최불암 시리즈>가 몇 권이나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다들 어지간히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사람은 매력적이니까. 어느 자리에서나 관심을 끌고, 경직된 분위기를 푸는 사람. 웃기다, 유머러스하다, 재미있다는 말은 어떤 사람을 설명할 때 칭찬으로 쓰인다.

억지로 웃기려는 사람에 대항하는 ‘썰렁하다’는 표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특히 저런 ‘공산품 유머’(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찾을 수 있는, 흔하고 정형화된 유머)가 많았다. 최근에는 단순히 썰렁한 농담만 문제 되지는 않는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거나, 차별적이거나 사회의 혐오를 반영해 약자나 소수자를 겨냥하는 농담들이 지적받는다.

최근 배우 앤절리나 졸리가 아들 매덕스의 대학 입학을 위한 캠퍼스 투어로 한국을 방문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요즘에는 어느 대학을 가도 한국 국적이 아닌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공장이 밀집한 지역으로 가거나 농어촌 지역에 가도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러면서 인종차별적인 유머나 이야기에 대해서 어느 때보다 많은 비판이 나온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꺼먼스’라고 외치던 유행어, 완벽하지 못한 한국어로 보이스 피싱하는 조선족에 비유하는 유머는 차별적이라고 지적받는다. 방송인 샘 오취리는 ‘흑형’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방송에서 한 적 있다. 말하는 사람은 친근감의 표현일지 모르지만 인종차별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농담이 차별적이라고 지적하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설득하려는 경우를 매우 자주 보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발화자의 의도가 아니라 수용자의 감정이다. 농담인 듯하지만 성희롱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결혼 소식을 알리면 “축하한다”고 하면 될 일을 “(웃으며)임신했어?” “(웃으며)배 속에 혼수 있는 거 아니야?” 같은 식으로 대응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팀에 들어오니까 분위기 환해지고 좋네.(웃음)” “몸매가 좋아서 남자친구가 좋아하겠네.(웃음)”

말하는 사람이 웃으면 그게 농담이 되는 줄 아는 사람도 있으나 당연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타인의 사적 영역을 건드리는 농담은 삼가자. “현장에서 다 같이 웃었으면 된 거 아냐?”라고 속 편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설령 위계가 없는 이들끼리의 자리라 해도 여러 사람의 유머 소재가 되는 사람은 불편할 수 있다. 상대는 당신이 웃겨서 지적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상대는 그저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참고 있을 수 있다. 또한, 당신의 눈앞에서 당신의 무신경함이나 무례함을 지적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약자나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머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피부색이 달라서, 장애가 있어서, 성별이 달라서, 돈이 없어서 눈에 띄는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웃음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조심해야 하는지 구분하기 어렵다면, 가장 간단한 구분법은 이것이다. 당신 자신을 농담의 소재로 하는 농담이 아니라면 조심하라.

여기서 연습 문제를 하나 풀어 볼까. 당신은 여름에 휴가를 다녀왔는데 얼굴이 많이 탔다. 사람들이 “얼굴 많이 탔네”라고 해서 “저 흑인 됐어요(웃음)”라고 말했다. 이런 표현은 괜찮을까. 애석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말이지만 문제가 된다. 실제로 에스엔에스(SNS) 계정에서 그런 코멘트나 해시태그를 단 한국인들 사진을 캡처해 해외 유저들이 문제제기를 한 모습을 본 적도 있다. 타자에 ‘빗대’ 자신에 대한 유머를 할 때 그것은 당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무슨 농담을 하라는 말이냐? 하지 말라는 농담 빼고는 다 괜찮다. 약자나 소수자를 우스갯거리로 삼는 농담만 해 온 경우가 아니면 별 어려울 일도 없다. 그런데 내가 하필이면 윗사람인데 어쩌면 좋은가? 그러면 좀 재미없어도 믿을만한 윗사람이 되는 편을 권한다. 웃기는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훈화 말씀은 짧은 훈화다. 쓸데없는 농담 주고받느라고 무한정 길어지는 회의 시간을 견뎌본 적이 있는지? 용건은 간단히, 억지 유머보다 유머가 없는 편이 언제나 모두를 위한 복된 길이다.

이다혜/ 작가·<씨네21> 기자



꿀잼&농담: 남을 웃기려는 말, 유머가 섞인 말을 뜻한다. 유머의 라틴 어원은 ‘수액, 흐르다’로 상황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시의적절한 농담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지만, 부적절한 농담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재미있는 농담은 ‘꿀잼’, ‘유잼’, ‘빅잼’, ‘레전드’로 표현하며, 채팅식 반응은 주로 ‘ㅋㅋㅋㅋㅋㅋㅋㅋ’다. 문화권마다 비슷한 형태의 채팅 용어가 있다. 영미권은 ‘lololoololololo’, 'kekekekekekeke', 타이(태국)는 ‘5555555555', 인도네시아는 ‘wkwkwkwkwkwk’, ‘kwkwkwkkwkw’, ‘hahahhahahaha'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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