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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들 운전면허라도 땄으면"…그렇게 출소지원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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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훈장 이계환씨 "지원받은 출소자 이젠 후원도"

직업훈련으로 시작 주거지원·합동결혼식·모금까지

뉴스1

지난 7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과천시민회관에서 열린 '2018 허그(HUG) 후원의 날' 행사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이계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지부 보호위원연합회장 회장이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법무보호복지공단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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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손인해 기자 = 1977년 늦여름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자동차운전면허학원. 은평구 서울소년원에서 복역 중이던 청소년 20여명이 포승줄로 묶인 채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아이들이 출소할 때 운전면허증 하나라도 가슴에 품으면 사회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 당시 운전면허학원을 운영하던 이계환씨(78·남)의 생각이었다.

청소년 수감자들이 일반 수강생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소년원 운동장에서 자체 교육하라며 일본 차 '코로나' 1대를 통째로 기부해버렸다.

"누구든 해야 하지 않겠나"는 마음으로 시작한 출소자 지원사업이 40년을 훌쩍 넘었다. 직업훈련뿐만 아니다. 다세대주택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출소자 가정을 대신해 월세를 내주고 멀끔히 도배·장판을 해줬다. 1년에 한 번씩 여덟 쌍의 합동결혼식을 치렀고 작년엔 처음으로 출소자 자녀를 위한 모금 골프대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7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과천시민회관에서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지부 보호위원연합회장 회장인 이씨를 만났다. 그는 이날 법무부 주최로 열린 '2018 허그(HUG) 후원의 날' 행사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그동안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 출소자 지원이 40년도 넘었다.

▶ 내 땅이 아니다 보니 학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동대문구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중랑구에선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일했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오토바이 타다 잡혀 오면 타이르고 훈방하고. 80년대에 강서구에서 학원을 차렸는데 그때 남부지방검찰청 범죄예방위원으로 활동하다 지금의 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지부에서 출소자들의 운전면허 취득 지원활동을 하게 됐다.

- 출소자 중에 무면허자가 많나.

▶ 지금은 1·2종 보통면허는 다 가졌다. 근데 아직도 버스 면허는 안 가진 사람은 많다. 대형면허를 따려면 일정한 교육 기간이 있어야 하니까. 1년에 강서구에 사는 출소자 50~60명이 학원에 와서 교육을 받는다. 공단과 학원에서 지원하고 출소자들은 개인 보험료 정도만 부담한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출소자가 있나.

▶술집에서 이름만 빌려준 '바지 사장' 노릇을 하다 교도소에 들어가 우리 학원에 대형면허를 따러 온 친구가 있었다. 오전에 한두 시간 수업을 받고 오후엔 전단지를 돌리게 해서 일당 4만원을 줬다. 그 돈을 모아서 오토바이를 한대 사서 출퇴근하면서 지금은 마을버스 운전을 한다. 또 출소하고 건설업으로 굉장히 성공한 친구도 있다. 지금은 부부가 매달 30만원씩 후원을 하고 명절 때 꼬박꼬박 와서 출소자들에게 떡도 돌리고 고기도 사다 준다. 참 보람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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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지부 보호위원연합회장 회장이 지난 7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과천시민회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법무보호복지공단 제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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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소자들이 사회에 복귀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 밥벌이다. 출소자들이라고 하면 보통 직장에서 서로 안 받으려 하잖나. 실제 출소자들 집에 가서 가정생활을 본 적도 있다. 참 어렵지만 꿋꿋하게 사는 분도 있지만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있을 거다. 가서 보니까 가장 어려운 게 취업이다. 좀 좋은 데로 갔으면 좋겠다. 근데 좋은 데를 못 가는 거 같다. 공장에 취업했다가 나오고 나오고 하는데…. 정부에서 출소자들의 취업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들이 사회 일원으로서 한 가정을 이뤄서 올바르게 살면 참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 출소자들 가까이서 그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을 함께 봐왔을 텐데.

▶ 바깥보다 가정에서 배척당하는 게 가장 힘들다. 부인과 자식들이. 지금도 우리 학원에서 교육받는 이들이 50여명 된다. 배척당하니까 돈 벌어야 집에 들어간다. 그런 점이 어려운 거 같다.

-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 글쎄 가끔 든다. 가끔은 내가 뭐 나이도 있고 하니까 '내가 왜 하나'…. 그래도 막상 현장에 가보면 마음이 우러나서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다시 계속 지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6·25 사변을 겪고 신문 배달하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출소자들이 고생하는 걸 너무 잘 안다. 이들이 잘 적응하고 훌륭한 가정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계속 지원해서 도울 거다.

- 오늘 국민훈장을 받는다.

▶ 감회가 깊다. 50년 동안 일하면서 30년을 봉사활동 했다. 내가 뭘 했는지 뒤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앞으로 더 잘하라는 뜻에서 상을 주는 것 같다. 받는 즐거움도 있지만 주는 즐거움도 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출소자들이 사회적 약자가 안 됐으면 한다. 출소자 자식들이라도 잘 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참 좋겠다.
s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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