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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피해자는 내 가족일 수 있다"…100만 청원, 왜 분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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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PC방 살인사건 후폭풍-청원자 분석 종합

세계일보

아르바이트생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성수씨.연합뉴스


“생명을 무참히 빼앗은 것도 모자라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피의자를 강력히 처벌하라.”

나이와 성별, 직업은 모두 달랐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 피살 사건’ 피의자를 엄벌해달라는 국민 청원 동의가 100만명을 넘었다.

국민청원 제도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다 수치다. 무엇이 대한민국 시민들을 분노하게 한 것일까. 세계일보가 미혼 직장인, 학부모, 대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직장인 손모씨(25)는 “30분 전 경찰이 신고를 받고 다녀갔지만 피해자는 살아남지 못했다고 들었다”며 “이 사실을 알고 공포감이 어마어마했다. 193cm 키의 건장한 청년도 막지 못한 순간을 그보다 작은 체구의 내가, 부모임이, 형제가 막을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게 의지할 수조차 없는 현실에, 사회로부터 고립된 느낌마저 들었다. 미약하게나마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며 청원 이유를 밝혔다.

청년들은 앞날이 불안했지만 모델로서의 미래를 꿈꾸던 아르바이트생 피해자에게 동질감도 느꼈다. 손모씨는 “피해자는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려던 청년이었다”며 “그의 죽음이 마치 나, 내 친구, 내 동생의 일인 것만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심신미약이 감형사유?”...경찰 대처에 대한 불신도

직장인 이모씨(31)는 수많은 사람이 청원에 동의한 것에 깊게 공감했다. 그는 “피의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기사를 보고 무척 화가 났다”며 “언제까지 음주, 심신미약이 범죄의 면죄부로써 이용이 될지...”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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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PC방 앞에 놓여진 편지들.김경호 기자


청원에 동의한 또 다른 직장인 이모씨(30)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는 “그전에 있던 ‘심신미약’ 관련 범죄들의 처벌 수위를 생각해 봤을 때... 가해자가 받게 될 처벌이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며 “초동 수사 미흡 등 경찰의 안일한 대처도 신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상적인 곳에서 범죄 발생...“대책 필요”

범행 장소가 PC방이란 사실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 듯 했다. 대학생 손성하(23)씨는 “PC방을 자주 다니는 사람으로서 처음 사건 얘기를 들었을 땐 믿지 않았다”며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음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돌려보냈고 결국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것에 어이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초등학생 딸을 둔 박모(42)씨는 “경찰이 출동했을 때 가해자를 확실하게 귀가만 시켰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PC방, 노래방, 당구장, 만화방 등은 초중고 대학생 등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장소다.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평소 피의자의 이상한 낌새 알아차렸더라면...”

대학생 박용중(25)씨는 “단지 화가 났다고 사람을 죽이는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이 평소에 그럴 낌새가 없었다고는 믿기 힘들다”며 “주위에 정신적으로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가족이나 직장동료가 치료 등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풍토가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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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피의자 김성수씨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2일 취재진에게 가족이 우울증 진단서를 경찰 측에 제출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꼭 국민청원으로 이슈화해야 하는지 의문

현재 부인이 임신 중이라는 ‘예비아빠’ 정모(34)씨는 “매번 (범죄자들이) 심신미약을 들먹이거나 음주 상태를 핑계 삼아 감형받으려는 게...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받으려 한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며 “이렇게 미디어-국민청원을 통해 이슈가 되어야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게 지금 현실”이라며 좌절감을 드러냈다.

정씨는 또 “이번 청원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부모와 그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국민이 그의 편이란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한편 피의자 김성수씨는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과 말다툼을 하다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우울증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던 사실이 알려지자 심신미약이 처벌의 감경 사유가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는 지난 22일 정신감정을 위해 충남 공주 치료감호소로 보내진 상태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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