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매일 아침 그리는 수채화가 내 건축물의 시작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건축가' 스티븐 홀, 미국 AIA 골드 메달 수상한 거장

阿 말라위서 건설 프로젝트 맡아… 태양광 활용해 자연 친화적 설계

"혹시 불편하진 않으냐고요? 어떤 자세든 말씀하세요. (한쪽 다리를 들며) 저 이렇게도 계속 서 있을 수 있어요!"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71·미국 컬럼비아대 건축학과 교수)이 전시장에서 카메라를 앞에 두고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지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사진 찍으려 몰려든 건축학도 수십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바로 옆 실내공연장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잠시만 더 듣고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정중하면서도 위엄 있게 말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내겐 그 어떤 제약도 없다. 내 상상력은 고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던 그의 말대로였다.

조선일보

숭실대 형남공학관 전시장에서 만난 스티븐 홀은 “지난 25년간 내가 그린 모든 그림을 갖고 있다”며 “이 그림들은 내 뇌에 이어 두 번째 기억 저장소이자 작품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성형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2001년 타임지로부터 '미국 최고의 건축가'로 선정되고, 2012년에는 최고의 건축가에게 수여된다는 '미국건축가협회(AIA) 골드 메달'을 받은 스타 건축가다. 건축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현상학적(phenomenological) 건축'의 대가이기도 하다. 미국 MIT 시먼스 홀, 핀란드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등이 그의 대표작. 한국에는 2012년 지어진 서울 성북구 '대양역사관'이 있다.

그가 최근 한국을 찾은 것은 한국과 밀접한 건물을 설계하면서다. 대양상선 정유근 회장이 아프리카 원조를 위해 설립한 재단 '미라클 포 아프리카'가 세계 최빈국 말라위에 짓는 대양종합대학 마스터플랜과 주요 건물 설계를 맡았다. 그중 최근 중앙도서관 설계를 마치고 착공한 것을 계기로 숭실대에서 강연 및 전시가 열렸다.

그가 설계한 6600㎡ 규모 도서관은 물결 같은 모양의 지붕이 특징이다. 그는 "태양에너지를 통해 건물에 전기를 공급하는 동시에 자연 채광을 최대한 들여오는 것이 디자인 목적"이라고 했다. "건물에서 생산된 전기 중 20%만 도서관 전력으로 쓰이고, 나머지 80%는 캠퍼스 나머지에 쓰일 예정입니다. 지붕의 곡선이 따가운 햇볕은 최대한 차단하면서도 건물 내부에 빛이 들게 합니다." 그는 "고도 1250m에 최고기온 35도, 최저기온 22도인 현지 환경과 말라위의 에너지 부족을 최우선적으로 반영한 설계"라고 했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은 '과학과 인문학'을 콘셉트로 했다. 그는 "일부 대학이 과학기술과 공학만 강조하는 것과 달리, 과학과 인문학의 균형이 핵심이라고 보고 그에 맞게 구상했다"고 했다. 말라위 전통 공예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또 캠퍼스 맵과 도서관 건물 모두 한가운데에 풀(pool)이 있다. 그의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요소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물은 빛을 반사, 굴절하는 렌즈와 같습니다. 맑은 연못에 비치는 꽃, 나무의 색과 윤곽이 갖는 심리적 힘이란 매우 강렬해요."

그는 '그림 그리는 건축가'로 잘 알려졌다. 건축과에 진학했으나 화가를 지망하다가 다시 건축으로 길을 돌렸으며, 지금도 작은 스케치북에 수채화로 그리는 건물 밑그림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매일 아침 한 시간 동안 그림 그리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진지하게 그리기도 하고, 새벽에 녹차 한잔 마시며 상상했던 걸 그려내기도 해요. 때로는 충동적이며 장난스럽고 모호하지만, 그게 프로젝트 전체를 결정하는 아이디어가 됩니다. 스케치와 페인팅은 긴장을 풀면서 상상력을 표현하는 제 언어이자 창작의 시작점입니다."

[김상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