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오늘의시선] 반복되는 구태 국감서 벗어나려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일간 730여곳 감사 ‘수박 겉핥기’식 / 상시 감시·개선 요구 실명제 도입해야

국회 국정감사가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올해는 좀 달라지길 기대했지만 여야가 곳곳에서 충돌하면서 막말, 고성, 파행 등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국정감사 제도가 부활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왜 이런 구태 국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무엇보다 짧은 기간(20일)에 너무나 많은 피감기관(730여곳)을 감사하는 잘못된 운영이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일정 기간을 정해 국정감사를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렇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 국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혼동하고 있다. 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한 해 정부의 예산과 정책을 집중해 들여다보는 것이 국감의 핵심 취지다. 그런데 국정조사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다루면 정치 공방만 있을 뿐이다. 의원들의 묻지마 증인 신청과 전문성 결여, 피감기관의 자료제출 거부와 시정사항 불이행도 보여주기식 맹탐 국감과 중복 국감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형적인 상황에서 효율적인 국감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이 불가능하다.

세계일보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그러면 민생과 정책에 집중하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국감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상시 감시체제로 바꿔야 한다. 상임위원회의 정책 감시기능을 활성화해 상임위별로 상시 국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집중 감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매년 모든 피감기관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도에 따라 선별해 국감을 치르는 것이다. 정부 부처와 민생과 직결된 기관은 매년, 다른 기관은 격년으로 국감을 실시하는 방안이다. 만약 긴박하고 중요한 현안이 발생하면 격년 예정이었던 기관의 국감도 당해 연도에 실시하면 된다.

다음으로, 국회의 감사원 감사요청권을 강화해야 한다. 현행 국회법 127조의2에서 ‘국회는 의결로 감사원에 대하여 감사원법에 따른 감사원의 직무 범위에 속하는 사항 중 사안을 특정해 감사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감사원은 감사 요구를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감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제도는 종전에 상세하고 객관적 자료가 없어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돼 정치적 공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일이 제도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감사원이 의회에 예속돼 있기 때문에 연중 정책 감사가 가능하고, 상임위 차원에서 조사 청문회가 활성화돼 있다. 우리나라도 정책 감사를 강화하기 위해선 국회 의결을 상임위원회 3분의 1 의결로 감사원 감사 청구를 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이어, 개선 요구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부로 보내는 국감 처리 요구서에 어느 의원이 어떤 시정, 처리 요구를 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래야 그 의원이 책임감을 갖고 요구서 작성에 참여하고 정부의 추진 실적도 충실히 검토할 수 있다. 이런 실명제가 실시돼야 정부는 국감이 끝나면 국감 지적사항을 ‘즉시조치 사항’, ‘즉시조치를 위한 계획수립사항’, ‘중장기적으로 정부 정책에 반영할 만한 정책참고사항’ 등으로 분류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끝으로, 전문적인 입법 지원 조직을 갖춰야 한다. 위원회별로 매년 국감을 통해 입수된 자료를 분야별로 정리해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놓고 수시로 추가해 의원 모두가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행정부에 의존적인 자료 수집 관행에서 탈피할 수 있다.

모든 조직에는 행동 규범이 있다. 의회 불문율이란 의회 과정에서 의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성문화되지 않은 행동 규범이다. 선진 의회정치를 구현하고 있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생산적인 불문율이 있다. 국회에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과정을 질서 있게 조정해 주는 불문율을 구축하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지금의 ‘여당은 방어, 야당은 공격’이라는 잘못된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국감에선 건강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감시하는 불문율이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은 헌법 46조의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를 깊이 음미하면서 국민의 대표로서 마지막까지 국감에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