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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수사반장]자유로 '광란의 역주행'…운전자는 우울증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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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죠. 자유로에서 차가 역주행(逆走行)하고 있습니다. 급해요. 빨리요!"

지난 22일 밤 11시 25분쯤. 경기 고양경찰서에 긴박한 112 신고가 접수됐다. 다마스 차량이 제2자유로에서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제2자유로는 제한속도가 시속 80km지만 운전자 대부분이 과속을 하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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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약을 복용한 운전자가 22일 밤 11시 제2자유로에서 역주행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사건과 무관.)/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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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뒤인 오후 11시 30분쯤. 교통순찰차들이 제2자유로 능곡IC 구간으로 진입했다. ‘역주행 다마스’의 예상 경로를 막아서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시속 80km 이상으로 폭주하는 파란색 다마스가 포착됐다. 경찰은 두 차선에 걸쳐 순찰차를 배치, 역주행 차량의 경로를 차단했다.

그러자 다마스 운전자가 운전대를 꺾어, 호수로(路) 쪽으로 내달렸다. ‘고의성 짙은 역주행’이라고 경찰은 판단했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주 중이었던 겁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고양경찰서 관계자 얘기다.

"차 세우세요!" "위험해! 차 멈춰요."
순찰차 확성기에서 정차 지시가 울려 퍼졌다. 다마스는 개의치 않았다. 정차 지시를 들은 체 만 체 적신호를 무시했고, 중앙선도 내키는 대로 넘나들었다. 영화 같은 ‘카체이싱’(Car Chasing·차량 추적)이 전개됐다. 다마스를 뒤쫓는 순찰차 속도계 바늘도 덩달아 시속 80km 넘어섰다. 추적하던 경찰들은 무전으로 예상도주로를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한편 지원병력을 요청했다.

세 번째 순찰차가 추격전에 뛰어들었다. 인근 행신지구대 차량도 잇따라 합류했다. 총 네 대의 순찰차가 무리 지어 거리를 좁히자, 다마스는 중앙선을 넘어서 유턴했다.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출동하면 인명 피해가 불가피한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 순간, 세 번째로 합류한 순찰차가 다마스 운전석을 들이받았다.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일단 ‘움직이는 폭탄’을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 "쾅!" 방향을 잃은 다마스가 그제서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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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마스 운전자 이모(43)씨가 문을 열고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중앙분리대를 훌쩍 뛰어넘기도 했다. 현장을 포위하고 있던 경찰 병력은 제2차 도주에 나선 그를 현장에서 제압했다. 시계는 오후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5분간 이어진 광란의 질주에서 이씨는 역주행 6회, 중앙선 침범 7회란 기록을 남겼다. 그가 내달린 거리는 12km에 달했다. 붙잡힌 이씨는 뜻밖의 소리를 세 차례나 반복했다.
"왜 날 잡는 거야. 지금 버스기사가 날 죽이려고 하잖아!"

측정 결과, 음주운전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우울증약을 먹고 있다"고 진술했다.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달려온 이씨 가족도 "14년 전부터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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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씨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판단, 병원에 입원 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버스기사가 날 죽이려 한다’는 이씨의 진술로 미루어 볼 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판단된다"며 "향후 병원 측과 조율해 조사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이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씨의 진술, 체포 당시의 상황이 ‘전형적인 심신미약’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희봉 로피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살인사건에서도 피의자가 ‘가상의 누군가가 날 죽이라고 했다’고 주장하면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환시(幻視)를 본다든가 하는 ‘망상장애’ 감정을 받게 된다면 사고체계가 망가졌다고 판단해 법원이 심신미약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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