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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확인해봄]그 많은 억새·핑크뮬리는 누가 짓밟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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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2018 서울억새축제' 기간 중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의 핑크뮬리가 짓밟혀 있다. 사진=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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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봄’은 잘못된 시민 의식과 제도, 독특한 제품·장소, 요즘 뜨거운 이슈 등 시민들의 다양한 궁금증을 해결해보는 코너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독한 팩첵커’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달려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가을은 단풍, 그리고 억새의 계절입니다. 요즘은 핑크뮬리가 대세인데요. 가을맞이 축제가 열리는 전국의 공원들은 앞다퉈 핑크뮬리를 심고 있습니다. 지난 18일까지 ‘2018 서울억새축제’가 열린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인스타그램에서 ‘#핑크뮬리’를 검색하면 약 29만 개에 달하는 인증샷이 나옵니다. 식물 보호를 위해 설치된 울타리를 넘지 않고 촬영한 사진도 많았지만, ‘의심스러운 인생샷’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문득 핑크뮬리와 억새가 얼마나 훼손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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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핑크뮬리'를 검색하면 수많은 인증샷을 볼 수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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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억새,핑크뮬리.. 축제 입구는 쓰레기 더미
축제 기간에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찾았습니다. 하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주차장에서 쓰레기 더미를 발견했습니다. 관람객들이 버리고 간 것들이었는데요. 축제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습니다. 내려올 땐 싹 치워져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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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공원으로 향하는 주차장 한편에 쓰레기 더미가 있어 입장하는 방문객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다. 사진=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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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하늘공원까지는 꽤 걸어야 하는데요. 잠시 잊고 있었던 하늘공원의 290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정상까지 타고 갈 수 있는 하늘공원의 명물 ‘맹꽁이 전기차’가 옆에 있었지만 그냥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드디어 도착한 하늘공원. 광활하게 펼쳐진 억새밭을 보니 잠깐 힐링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원한 가을 바람을 뒤로 하고 억새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억새밭 여기저기에 움푹 패인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은 자리죠. 바람 때문에 누웠다기엔 사정없이 짓밟혀버린 억새와 갈대를 보니 그저 안쓰럽기만 합니다.

핑크뮬리밭도 사정은 마찬가지. 억새밭에 비하면 굉장히 좁지만 그 인기를 반영하듯 사람들로 빽옥한 이곳도 시름시름 앓고 있었습니다. 공원에서 설치한 경고판이 곳곳에 있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경고판 뒤편 핑크뮬 리가 밟혀 있는 장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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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공원 억새밭에서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가 움푹 패인 자리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진=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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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선을 넘는 일부 얌체 관람객들
처음에는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는 관람객을 직접 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나 축제 현장에서 선을 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가 없었습니다. 움푹 팬 억새밭을 촬영하고 있는데 뒤에서 젊은 커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뭔가 (길처럼) 이렇게 돼있다”
“밟아 놓은거지 사람이”
“그치.. 그렇지만..”

촬영을 마치고 제가 자리를 비키자마자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억새를 밟고 ‘점프샷’을 찍는 이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라고 친구를 부추기는 분도 있었지만 저 분들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사람 때문에 식물이 훼손됐다는 걸 뻔히 알면서 들어간 거니까요. 어쩐지 우리의 민낯을 본 것 같아 얼굴이 화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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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찾은 한 시민이 출입을 통제한 선을 넘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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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60만 명 찾는 축제.. 관련법은 무용지물
현행법에 따라 억새 등을 훼손하면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49조 1항에 ‘나무를 훼손하거나 이물질을 주입하여 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행위’시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한다고 써있기 때문이죠. “‘나무’라고 써있다고 억새나 핑크뮬리는 괜찮은 것 아니냐”는 분들이 계신데 전부 포함됩니다.

그러나 무자비한 현실 앞에서 법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축제가 열리면 5만 8천평이나 되는 광활한 하늘공원에 관람객 수십만 명이 몰리기 때문이죠. 축제를 주관하는 서울녹지사무소 측에 따르면 해마다 ‘서울억새축제’를 찾는 관람객은 평균 60만 명 정도. 주최 측은 “공간이 넓고 사람이 많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법 기준은 있지만) 들어가지 말라고 계도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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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시민의식 앞에서 경고판은 무의미했다. 사진=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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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쓰러져가는 식물을 지킬 책임은 시민들에게 있는 셈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억새, 댑싸리, 핑크뮬리를 심었습니다. 방문객들의 성숙한 관람 매너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ocmcho@fnnews.com 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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