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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공매도 배후' 욕 안먹는 대신 年 400억 포기한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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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 복지위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

주가 하락해야 수익, 공매도 ‘실탄’ 주식 대여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주식 대여 중단”

국민연금 등 연기금 주식 대여 물량 비중 미미

외국인과 기관 위탁주식 활용 공매도 막기 어려워

“수수료 몇 푼에 국민의 미래를 깡통 속에 담보하나.”

“공매도 주식 대여로 외국인과 기관은 수조원 이익, 국민연금은 수조원 손실.”

23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엔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를 금지하라’는 내용의 청원 글이 100여 건 올라와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7월 기준 123조820억원어치 국내 주식을 가진 국내 증시 최대 ‘큰손’이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통틀어 상장사 지분 6.9%(시가총액 기준)가 국민연금 소유다. 국민연금은 보유한 주식을 가지고 꽤 쏠쏠한 부가 수익을 올렸다. 국내ㆍ외 금융회사에 주식을 일정 기간 빌려주고 대여료를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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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3일 오전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의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이날 김 이사장은 주식 대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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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이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주식 대여로만 688억5900만원 수수료를 벌었다. 국민연금이 빌려준 주식은 이들 회사가 공매도 투자를 할 때 주로 활용됐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대차거래) 먼저 판 다음에 이후 주식으로 되갚는 투자 방식이다. 비싸게 주식을 팔아서 이후 싸게 사야 돈을 벌 수 있다. 주가가 내려야 돈을 버는 구조다. 특정 종목의 주가가 이상 급락하고 여기에 외국인ㆍ기관투자가의 공매도가 대량 물려있을 때마다 의혹이 제기됐다. 거대 투자 세력이 주가 하락을 일부러 유도하고 공매도로 돈을 버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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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그동안 주가 하락을 유도하는 공매도 세력에 주식을 빌려주고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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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문턱에 공매도에 참여할 수 없는 데다, 주가 하락으로 피해까지 봐야 하는 개인 투자자의 원성이 특히 컸다. 국민의 노후 종잣돈을 가지고 주식 투자를 해 수익을 늘려야 할 국민연금이 공매도 세력에게 주식을 빌려줘 ‘실탄’을 공급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국민연금 보유 주식의 가치가 낮아지고, 국민연금의 ‘주인’인 일반 국민에게 투자 손실까지 안긴다는 지적이었다. 국민연금공단이 주식 대여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이날 열린 국회 복지위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서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내부 토론을 거쳐 어제(22일)부터 국내 주식 대여를 신규 거래를 중지했다”라고 말했다. 또 기존 주식 대여분에 대해선 “차입 기관과의 계약 관계를 생각해서 올 연말까지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2000년 4월부터 이어온 주식ㆍ채권 대여 사업을 18년여 만에 중단한다.

올해 들어 증시가 부진을 이어가며 국민연금 주식 대여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공분은 더 커졌다. 국민연금은 연 400억원대 주식 대여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공매도 배후 세력’이란 국민의 비판을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문제는 국민연금 주식 대여 중단만으로는 공매도 시장에 있어 달라지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보면 국내 대차거래 시장에서 올 1월 2일부터 지난 22일까지 대여된 주식 수는 77억7592만 주다. 이렇게 빌려 간 주식 모두가 공매도에 활용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이 빌려준 주식 수는 4457만 주로 0.6%에 불과하다. 외국인 투자자(42.7%)와 국내 증권사(29.0%), 자산운용사(9.3%), 은행(3.1%)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외국계와 국내 금융사가 고객으로부터 위탁받은 주식을 가지고 대차거래에 활용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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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주식 거래 중단을 선언하긴 했지만 연기금이 주식 대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아 공매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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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대차거래, 공매도 시장에서 빠진다고 해도 외국인과 국내 기관투자가의 ‘카르텔’ 구조를 깨기에는 역부족이란 의미다. 자체 보유한 증권(주식ㆍ채권)을 가지고 공매도 투자해 수익 내는 걸 제어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1월 2일~10월 22일 공매도 거래 대금에서 개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0.6%(4360억원)에 불과하다. 외국인(66.2%, 51조9014억원), 국내 기관(33.2%, 26조97억원)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신용도와 수수료 문제로 개인이 주식을 빌려(대차거래) 공매도에 직접 뛰어들기란 쉽지 않아서다. ‘기울어진 운동장’ 공매도 시장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공분이 특히 큰 이유다.

지난 4월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건으로 무차입 공매도 의혹이 이는 등 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지만 금융 당국은 ‘공매도 자체를 금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주가 하락의 위험 회피(헤지) 수단으로 공매도 제도 유지를 우선 조건으로 내놓고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15일 “폐지보다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게 타당하다”면서 “기존 공매도 규제 가운데 기관투자자에 유리하거나 시장 투명성 확보에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숙ㆍ이에스더 기자 newear@joongang.co.kr

◇공매도와 무차입 공매도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판 다음, 일정 기간 후 주식으로 갚는 투자 기법이다. 주식을 빌려 주식으로 갚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해야 이익이 난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상태(무차입)에서 공매도 거래를 하는 걸 말한다. 이는 시세 교란 위험이 있어 한국 주식시장에선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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