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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알쓸신세] "뛰면 자궁 떨어져" 사우디 같던 美 금녀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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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불과 50여 년 전 미국 여성들은 달리기를 하면 자궁이 떨어지고 가슴에 털이 난다는 속설 탓에 마라톤 대회 참가도 금기시됐다.1967년 캐서린 스위처가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대회 관계자들이 방해하는 모습. [사진 kathrineswitz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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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사우디아라비아 헤자즈의 한 호텔에서 식사를 한 이집트 남성이 체포됐습니다. ‘니캅(얼굴 가리개)을 쓴 여성 직장 동료와 식사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남성후견인제도가 있는 사우디에선 여성이 남성 보호자 없이 공공장소에서 다른 남성과 동석하는 걸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여성의 활동제약이 없는 우리가 보기엔 이해 가지 않는 풍경입니다. 하지만 불과 50~1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선 여성이 혼자 외출하기 어려웠고, 공식적인 스포츠 행사에 남성과 똑같이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선 과거 미국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했죠.

지금의 평범한 일상은 절대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는데요, 금녀의 벽을 깬 미국 여성들의 뒷이야기 [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알쓸신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아이스크림집 메뉴판이 57페이지가 된 이유


여성이 혼자 밖에 돌아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1850년대 미국과 현재 사우디는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미국 여성은 외출 시 남편 또는 ‘샤프롱’이라고 불리는 보호자와 동행해야만 고급 레스토랑, 선술집 등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여성은 문란한 매춘부로 봤으니까요.

이 시절, 여성이 혼자 갈 수 있던 곳이 딱 한 곳이 있었는데 바로 아이스크림집이었습니다. 1866년 뉴욕타임스는 “오랫동안 아이스크림집은 여자들이 보호 없이도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고 전합니다. 때문에 미국 사회가 발전할수록, 샤프롱 없이 아이스크림집을 찾는 여성들이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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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유명 아이스크림 브랜드 쓰리트윈즈. [사진 신세계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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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여성’들이 몰리면서 아이스크림집의 메뉴도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한 저널리스트 기록에 따르면 1850년대의 한 아이스크림집은 굴·스튜·비프스테이크·오믈렛·샌드위치·햄·초콜릿 등을 비싼 가격에 팔았고, 역사학자 프리만 폴은 “1862년에 뉴욕의 한 아이스크림집 메뉴판은 57페이지에 달했다”고 말합니다. 이름은 아이스크림집이지만 실상은 모든 음식을 다 파는 곳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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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대 미국에서 여성들이 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이스크림가게 뿐이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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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스크림집 덕분에 금녀의 벽은 점점 허물어져갔습니다. 19세기 말엔 각 백화점마다 경쟁적으로 아이스크림집을 열기 시작했고, 부유층 여성들이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정착했습니다. 게다가 각 가게들은 크리스탈 분수까지 설치하면서 화려한 장식으로 여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식당들도 여성을 공략하는 게 수익성 있는 사업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거죠.

이처럼 아이스크림집의 메뉴가 점점 늘어나고 성행하면서, 여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덕분에 여성들의 활동범위가 넓어지게 됐고, 마침내 오늘날과 같이 아무 식당에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실수’로 합격한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첫 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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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교의 교표. [사진 하버드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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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식당 출입은 19세기 말에 자유로워졌지만 대학은 여전히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세계 최고 명문인 하버드대는 1977년, 예일대는 1969년에서야 여학생의 학부입학을 전면 허용했습니다. 이보다 훨씬 이른 1936년에 하버드의 의학전문대학원 격인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 입학한 여학생이 있었는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필리핀 국적의 피 델 문도입니다.

문도는 필리핀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마누엘 케손 필리핀 대통령은 그에게 “전액 장학금을 줄테니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학교를 선택하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이 때, 문도가 택한 학교는 하버드 메디컬 스쿨이었습니다. 하지만 1847년 헤리엇 헌트라는 학생이 여성 최초로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 지원했지만 탈락했고, 그 이후로도 여학생 합격자는 없었습니다. 당시 하버드대가 여학생들의 입학을 허용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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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메디컬스쿨에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 직원의 실수로 입학한 피 델 문도. [사진 피델문도메디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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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36년 문도는 뜻밖에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입학 지원서를 검토하던 직원의 실수로 문도의 성별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탓입니다. 미국 보스턴으로 날아간 문도도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남학생 기숙자에 배정돼있었기 때문이죠. 학교 측은 문도가 여성이라는걸 뒤늦게 알아차린 후 입학 취소를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커리어를 보고는 돌려보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문도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이렇게 문도는 학교 측의 우연한 실수로 ‘얼떨결’에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유일한 여학생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45년부터 하버드 메디컬 스쿨은 공식적으로 여학생을 받기 시작합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문도는 이후 필리핀으로 돌아가 아픈 아이들을 위해 힘썼습니다. 99세 나이에도 휠체어에 탄 채 환자를 돌보던 그는 지난 2011년 세상을 떠났지만, 필리핀에 있는 ‘피 델 문도 메디컬 센터’가 문도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성은 달리면 자궁이 떨어진다?


불과 50여 년 전 미국 여성들은 마라톤 대회도 참가하기 힘들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면 자궁이 떨어지고, 가슴에 털이 난다는 터무니없는 속설 때문이었죠. 이에 도전장을 던진 용감한 스무살 대학생이 있었으니, 바로 캐서린 스위처입니다.

1967년 당시 시라큐스대에 다니던 스위처는 마라톤 참가를 위해 교내 크로스컨트리팀의 코치인 아니 브릭스를 찾아갑니다. 브릭스는 “연습 때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걸 보여주면 널 보스턴에 데리고 가겠다”며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위처는 풀코스 42.195㎞보다 훨씬 더 긴 50㎞를 뛰는데 성공해내고, 결국 코치와 함께 보스턴 마라톤에 정식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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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크 셈플이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한 캐서린 스위처를 방해하고 있는 모습. [사진 kathrineswitz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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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 Switzer’라는 중성적인 이름으로 참가 접수를 한 스위처는 참가번호 ‘261번’을 가슴에 달고, 진한 립스틱을 바른 채 마라톤 출발선에 섰습니다. 가발을 쓰는 등 남장을 하고 마라톤에 참여했던 과거 여성들과는 다르게 달릴 때 만큼은 자신이 여성인 걸 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스위처의 레이스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스타트 총성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회 조직위원장 조크 셈플는 스위처가 달리지 못하도록 소리쳤습니다.

“당장 내 레이스에서 꺼지고 번호표 내놔! (Get the hell out of my race and give me those numbers)”

몸을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옆에서 달리던 코치 아니와 남자친구 존 밀러가 이를 제지해 스위처는 4시간 20분 만에 풀코스를 완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이후, 스위처가 고군분투하면서 달리는 장면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 대중들에게 퍼지면서 많은 이들이 공분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요구하는 저항운동이 시작됐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보스턴마라톤대회는 1972년에 여성의 참가를 공식 허용하게 됩니다. 이후, 완주를 막았던 셈플은 스위처에게 공식 사과를 했고 스위처는 1975년 다시 대회에 도전해 2시간 51분만에 풀코스를 완주하며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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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상징하는 번호인 261번을 달고 여전히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고 있는 캐서린 스위처.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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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위처는 비영리 단체 ‘겁 없는 261(Fearless 261)’을 세워 여성들의 체육활동을 독려하고 있는데요, 보스턴마라톤 조직위도 스위처의 26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그의 도전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쌓여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올해 6월 최초로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했고, 내년 4월엔 미국 마스터스골프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에 처음으로 여성 골프대회가 열립니다. 지난 2012년 오거스타내셔널 클럽이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사업가 달라 무어를 여성회원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정식 여성대회가 열리는건 1934년에 첫 마스터스대회가 시작된 지 85년만입니다.

지난해 자신이 마라톤에 참가한 지 50주년을 맞은 스위처는 70세의 나이로 다시 한번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다가올 50년은 이전보다 더 나을 것이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참정권을 위해 싸운 여성들, 서프러제트(Suffragette)
서프러제트는 참정권을 의미하는 ‘Suffrage’와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합친 말로, 영국에서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한 이들을 말합니다.

이 운동을 이끈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처음엔 평화적인 방법을 추구했지만, 1908년에 들어선 ‘말이 아닌 행동(Deed not Words)’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전투적인 투쟁으로 노선을 바꿨는데요. 당시 서프러제트들은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우체국에 폭탄을 던지기도 하는 등 다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해 팽크허스트는 11차례나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들은 투쟁을 중단하고 전쟁을 지원했습니다.

이런 노력덕분에 1918년에 전쟁이 끝나자 영국 정부는 30세 이상의 기혼여성과 재산을 갖춘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고, 1928년엔 21세 이상 모든 여성들이 남성과 동일한 참정권을 갖게됩니다. 미국에선 비슷한 시기인 1920년, 우리나라에선 1948년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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