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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유총은 어떻게 권력이 됐나?…로비·실력행사로 정책 '좌지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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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로비력 한유총, 이익에 반할 경우 실력행사

뇌물 주고 거물 정치인 움직여 유리한 법안 입법도

선출직 교육감 지역사회 유지 유치원장 입김에 영향

"사유재산 인정 요구하려면 지원금 없이 자립해야"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이 공개된 후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몇십 년간 사립유치원·민간어린이집 등이 권력화·세력화되면서 보육시스템이 곪을 대로 곪아갔다. 정부가 유아 보육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사립유치원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왔다. 교육당국조차 민간 보육기관의 압박에 못 이겨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막강한 로비력 한유총, 이익에 반할 경우 실력행사

전국 사립유치원의 약 70%가 속해있는 거대 이익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지난 1995년 창립했다. 한유총은 2002년에 공립 단설유치원 설립 반대 운동을 펼치면서 세력화·권력화했다.

당시 정부가 공립단설유치원 확대 정책을 내놓자 한유총은 “공립유치원 설립으로 사립유치원이 경영난을 겪게 될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2004년 관련법 정비 당시 영유아교육법으로 할지, 유아교육법으로 할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한유총은 영아와 유아교육을 분리하는 ‘유아교육법’을 관철시켰다.

2012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을 도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유치원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려 했으나 한유총이 ‘사립유치원 운영비 등은 사유재산’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이를 저지했다.

결과적으로 매년 2조원이 넘는 국고를 유치원에 지원하면서도 정부는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 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사립유치원장이 자유롭게 이를 유용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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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지난해 유치원 회계감사를 학교법인과 같은 기준으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개정안’을 추진할 때도 한유총은 극렬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집단휴업을 예고하고 아이들을 볼모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을 정부를 압박했다.

지난 19대 국회 교육문화관광위원회 의원 보좌관을 지난 A씨는 “사립유치원은 함부로 건들 수 없다”며 “지역구 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의원들도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대통령 선거에도 이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2017 사립유치원 교육자 대회’에 참가해 “국공립 단설 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유력 대통령 후보가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사립유치원을 의식해 이들이 원하는 국공립유치원 신설 축소 공약을 낸 것이다. 다만 당시 발언은 학부모들의 반발을 사 역풍을 맞았다.

한유총의 정치권 로비는 대법원판결로도 확인된다. 19대 국회 때인 2013년 9월 신학용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출판기념회 찬조금 명목으로 한유총으로부터 3060만원의 입법 로비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7월 대법원판결에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신 전 의원은 사립유치원의 상속이나 양도를 손쉽게 하는 유아교육법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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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이 낸 유치원 교비와 정부 누리과정 지원금을 마음대로 유용했다는 사실이 경기도교육청 특정감사에서 적발된 경기도 화성시 환희유치원 원장이 지난 17일 학부모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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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직 교육감 지역사회 유지 유치원장 눈치봐

선출직인 17개 시도교육감은 지역 사회 입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역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감 또한 사립유치원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이번에 크게 문제가 된 경기도 사립유치원의 경우 이 지역 사립유치원이 다른 지역보다 문제가 많다기 보다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상대적으로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잠잠한 지역은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교육당국이 이를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당국이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감사한 이후 제도 개선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했다”며 “현재 비리 사립유치원과 원장 등을 향한 학부모들의 분노는 교육당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 역시 미온적으로 대응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임재택 유아보육·보육혁신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사립유치원은 교육부 관할이고, 유아교육법에 의해 학교로 돼 있다”며 “사실 국가가 관리를 제대로 했으면 비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교육당국의 직무유기”라고 비난했다.

최윤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누리과정 지원금을 투입한 만큼 그에 맞는 책임을 요구했어야 했다. 관리·감독 부실이 오늘의 사건을 만들게 했다”며 “앞으로 어떻게 회계를 투명하게 하고 사립유치원을 관리·감독할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립유치원이 사유재산을 강조하고 사립의 자율성을 주장한다면, 재정 자립 역시 주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지원금과 교부금을 받아 유치원을 운영해 재정자립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립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주장은 궁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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