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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9개의 트로피보다 빛나는 '풍토' 심고 떠나는 최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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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북현대 인연 뒤로하고 중국 톈진 취안젠 사령탑 부임

뉴스1

20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프로축구 KEB하나은행 K리그1 우승 기념식에서 최강희 감독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전북은 이번 시즌 우승으로 K리그 2년 연속 우승과 통산 6회 우승을 달성했다.2018.10.2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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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지난 2016년의 일이다. 당시 울산현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윤정환 감독(현 세레소 오사카)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전북 선수들이 최적의 상태로 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원정팀들은 위압감을 느낀다"며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 애칭)이 부담스럽다는 뜻을 피력한 바 있다.

어느 곳을 가든 홈팀과 원정팀의 경계가 애매한 경기장이 대부분이던 K리그에 '원정팀의 무덤'급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 있다는 의미였다. 전북현대 구단의 먼 과거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 자체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윤정환 감독의 감탄이 나오기 대략 10년 전만 해도 그 전주성은 척박한 황무지 같았다.

"10년 전에는 격렬 서포터 '악당'들과 일반 관중석에 드문드문 퍼져있는 팬들을 다 합쳐도 3~4천명이 전부였다. 그때의 우리 팀 서포터들은 나와 선수들에게도 심한 욕설을 퍼부었고 일반석 팬들은 골을 넣어도 '그려그려 잘했어'하고 마는 식이었다. 처음에 관중석의 모습을 보면서 '아, 연고지를 잘못 택했다' 싶었다."

2005년 7월 전북현대의 지휘봉을 잡았던 당시를 회상하면 최강희 감독은 지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랬던 곳이 가장 먼저 '평균관중 3만명'을 꿈꾸는 팀으로 환골탈태했다. 성적이든 관중이든 가능하겠나 싶던 전북이 이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팀으로 변했다. 상전벽해까지는 아니겠으나 단순히 '발전' 정도로 포장할 수준은 넘어섰다.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배경에 깔려 있으나 역시 최강희 감독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14년 인연을 뒤로 하고 전북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최 감독의 가장 큰 업적은 9개의 트로피가 아니라 '풍토' '문화'를 정착시켜 놓았다는 것일지 모른다.

수많은 소문을 양산했던 최강희 감독이 결국 전북현대 지휘봉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선언했다. 전북 구단은 22일 "최강희 감독이 중국 슈퍼리그 톈진 취안젠의 감독 제의를 수락했다"면서 "계약기간(2020년)이 아직 남아 있지만 새로운 무대에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도전을 결심한 최 감독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미 3~4년 전부터 최강희 감독을 향한 중국 클럽들의 러브콜이 꾸준하게 이어졌다. 최 감독 스스로도 "매년 이 무렵이면 난 중국에 가 있는 사람이 됐다"는 특유의 입담으로 번번이 웃어넘긴 뒤 "전북에 뼈를 묻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최 감독은 지난 12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동기부여가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지금까지는 내 스스로 나를 바늘로 찌르면서 버텨왔는데 이제는 아파서 더 못 찌를 것 같다"는 표현으로 마음의 정리가 됐음을 에둘러 표현한 바 있다. 그로부터 열흘 뒤 톈진행이 발표됐다.

뉴스1

20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프로축구 KEB하나은행 K리그1 전북현대와 인천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팬들이 최강희 감독의 이적설에 아쉬워 하는 현수막을 걸고 있다. 최감독은 최근 중국으로의 이적설이 제기되고 있다.2018.10.20/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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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단이나 전북의 팬들도 최강희 감독 이상으로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새다. 전북과 관련된 기사의 댓글이나 축구 커뮤니티에 나오는 팬들의 반응을 보면 "떠나보내기 아쉽지만 그래도 선택은 존중한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내치고 밀어내고 자르는 게 다반사인 K리그, 나아가 프로스포츠의 현실에서 이런 헤어짐도 흔치 않다. 그만큼 최강희 감독이 전북현대에 남긴 것이 많다는 방증이다.

최 감독은 재임기간 동안 K리그 6회, AFC 챔피언스리그 2회, FA컵 1회 등 9번의 우승을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전북을 명문구단 반열에 올려놓았다. '닥공'이라는 전북만의 브랜드를 뿌리내리면서 일군 성과라 더 돋보인다. 매력적인 축구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콩나물국밥이나 비빔밥만 떠오르던 전주를 축구 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최강희 감독은 언젠가 "처음에 부임할 때 내 스스로도 과연 우승 하나라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작은 꿈이라도 품고서 해절하게 도전했다. 그래도 성적은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더 감동적인 것은 '가능성 제로'라고 여긴 운동장 분위기까지 달라졌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한 적 있다.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은 어찌어찌 노력으로 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모두가 함께 숨을 토하고 발을 구르는 '문화'까지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전주성에서는 그 뜨거움이 나오고 있다.

최 감독은 그것을 가리켜 "팬들이 해준 가장 큰 선물"고 표현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반대쪽에서도 비슷한 고마움을 가질 듯하다. 최강희 감독이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은 9개의 트로피가 아니라 전북 구단 안팎을 둘러싸고 있는 그런 '풍토'인지 모른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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