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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소년중앙] '친환경' 신념 방향 바꾸자 쓰레기가 보물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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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의 '자기주도진로 인터뷰' 17.쓰레기로 제품 만드는 '져스트프로젝트' 이영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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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봉지, 일화용 빨대, 플라스틱, 헌 티셔츠, 신문지, 버려진 현수막 등을 이용해 가방과 지갑, 열쇠고리 등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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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스트프로젝트(JUST PROJECT)는 우리가 버린 것들을 재활용해서 환경에 이로운 제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인 필리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희 브랜드에 대해 초창기에 사용했던 콘텐트입니다. 하지만 이건 전부 거짓말입니다. 잘못된 정보라는 뜻이죠.”

지난해 7월 열린 ★테드엑스 인천유(TEDx IncheonU)에서 ‘별 볼 일 없는 쓰레기에 생명을 불어넣자’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이영연 져스트프로젝트 대표의 첫 마디는 반전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고했던 신념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고백하는 창업가라니. 단박에 청중의 관심이 그의 입으로 집중됐죠. 친환경 업사이클링 분야에서 지난 5년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이씨는 이날 강연에서 그 어떤 확고한 신념도 하루아침에 거짓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자신의 삶을 통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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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연 져스트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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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환경적 책임 고민했던 천생 디자이너



이씨는 어린 시절부터 오래된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선물을 받으면 포장지나 박스를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즐겼죠. 그림을 그리거나 손으로 뭐든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자연스레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광고디자인회사·문구디자인회사·패키지디자인회사 등을 거치며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했어요. 디자이너로 사는 동안 늘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고민했죠.

“제 일의 방향을 바꾸게 된 결정적 계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사회적·환경적 책임이 있다’는 국민대학교 윤호섭 명예교수님의 가르침은 제 삶의 떠나지 않는 지표였어요. 또, 일본의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라는 책을 읽은 후 디자이너로서 환경과 사람, 일과 태도에 대해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6개월짜리 짧은 프로젝트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져스트프로젝트’는 디자이너 10년 차 서른한 살의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어요. 져스트프로젝트는 주로 패션소품·생활소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회사인데요. 일반적인 디자인회사들과 다른 점은 바로 제품의 소재입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헌 옷과 일회용 빨대, 과자 봉지 등 다양한 쓰레기들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내요.

‘내가 거짓말을 했구나’ 스스로 팩트체크



그동안 져스트프로젝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착한 제품, 건강한 소비, 쓰레기를 줄이자’ 같은 말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표현들을 깡그리 부정하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죠. 2016년 그래픽 디자이너인 친구와 함께했던 한 매체 인터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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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참가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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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스트프로젝트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친구가 망설임 없이 ‘저는 사실 친환경 제품에 관심이 없어요. 그냥 예쁘고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속이 후련하고 기분이 좋고 그 친구가 멋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제가 왜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죠. ‘예쁘고 재미있어서 만든다'는 말, 바로 그 말이 제가 소비자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고 동시에 내가 소비자들에게 해야 하는 말도 그런 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이 일을 계기로 이씨는 자신의 브랜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회사를 알리기 위해 자신이 하고 다녔던 말들이 맞는 말인지 팩트체크(fact check)를 시작했어요. 논문이나 기사도 찾아보고 환경부 연구자료와 각종 통계자료 등 틈나는 대로 찾아봤죠. 그렇게 검증을 통해 내린 결론은 '전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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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삼성디자인교육원을 방문해 져스트프로젝트의 작업에 대해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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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이롭다’는 말은 쓰레기를 줄인다는 말인데 과연 우리가 쓰레기를 얼마나 줄이고 있는지 검증해봤어요. 하루 생활쓰레기 배출량(2014년 환경부 자료)이 5만 톤인데 우리 브랜드에서 한 달 소진하는 쓰레기양이 100kg 안팎이니 숫자로 보면 절대 쓰레기를 줄인다고 볼 수 없는 거죠. 또 개발도상국인 필리핀 사람들에게 일자리 제공한다고 했는데 사실 그들은 제가 창업을 마음먹었을 때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품을 정말 잘 만들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임금을 주고 파트너로 일을 하는 것이지 제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아니었어요.”

이후 져스트프로젝트의 슬로건은 ‘We make products by our trash(우리는 쓰레기로 제품을 만듭니다)’와 ‘It is trash, but treasure to me(그것은 쓰레기지만 제겐 보물입니다)’로 달라졌습니다. 그는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게 이렇게 확 바뀔 수 있다. 앞으로도 언제든 도전받는 상황이 또 닥칠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영원불변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상황은 계속 바뀔 수 있고 우리는 계속 공부하고 배워나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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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티셔츠를 손베틀로 직조해 만든 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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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매력적인 소재…인식 개선 나설 것

제품을 만드는 일 외에도 져스트프로젝트가 하는 일은 다양합니다. 전시와 워크숍 진행, 쓰레기를 소재로 하는 일에 대한 컨설팅을 하거나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일도 하죠. 최근에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쓰레기』라는 계간잡지 발행에도 성공했어요. 지난 8월 창간호를 펴냈고 지금은 관련 전시와 이벤트를 진행 중입니다. 올해 안에 2호를 발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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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쓰레기』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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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라는 재료는 저희 팀에게 하나의 기호이고 취향이며 영감의 대상인 동시에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이러한 소재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공감하고 싶은 내용들을 『쓰레기』 잡지에 담았어요. 버려진 것들을 재화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고됩니다. 대부분 선례가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조언을 구하거나 방법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몸소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얻어낸 결과들을 볼 때면 큰 성취감과 보람을 느낍니다.”

창업 4년차이던 지난해부터 져스트프로젝트는 더 많은 도전과 성취를 이뤘는데요. 지난해 5월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과자전에 참가했고 9월에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참가해 ‘재료상점·‘팝업상점’을 두 달간 운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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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된 쓰레기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이 사진으로 마스킹테이프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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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엔 친환경 화장품기업 러쉬 코리아(LUSH KOREA)의 의뢰를 받아 각종 매장 집기를 제작하기도 했고요. 4월에는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 돈의문 박물관마을에 져스트프로젝트 홍보관을 열었습니다. 또 최근 온라인숍을 여는 한편,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낡은 건물로 작업실을 옮기고 쇼룸을 완성하기 위해 막바지 공사에 전념하고 있죠.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앞으로도 꾸준히 해나가면서 쓰레기를 '소재'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로를 찾아가야 할 청소년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어요.

"직업의 종류가 곧 진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로는 평생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늘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 먹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테드엑스(TEDx) : 테드(TED)는 기술(Technology)·오락(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을 합친 말로, 각 분야의 명사들이 참여하는 강연회이자 이 강연회를 주최하는 미국 비영리재단의 이름이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시작됐으며, 강연 영상을 무료로 공개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테드엑스(TEDx)는 미국의 테드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각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여는 행사다. 인천시민들과 함께하는 테드엑스 인천유( 인천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강연 동아리에서 출발했다.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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