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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미 자란 떡잎만 지원… ‘1인 크리에이터’ 새싹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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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지원사업 빈익빈 부익부

동아일보

경기콘텐츠진흥원은 교육, 네트워킹 등 다방면으로 1인 미디어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제작비 지원은 자금난에 시달리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 그러나 지원 자격의 문턱이 높아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경기콘텐츠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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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에서 하는 1인 미디어 지원사업, 있기야 있죠. 문제는 저희처럼 바닥부터 시작하는 신진 크리에이터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방송 관계자였던 김모 씨(33)는 최근 퇴사해 1인 크리에이터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일상에 밀접한 뉴스를 전달하자’는 취지로 방송뉴스 형식의 콘텐츠를 제작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하지만 그는 경기콘텐츠진흥원(경기콘진원)의 ‘경기도 1인 크리에이터 제작지원’ 사업에 지원했다가 자격 미달 통보를 받았다. 지원 자격 가운데 ‘SNS 구독자 1000명 이상’ 조항 때문이었다.

최근 문화계에서 콘텐츠 창작자를 위한 공공 지원 기준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건이 까다롭거나 현실적이지 않아 정작 지원이 절실한 이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 씨가 지원했던 지원 사업은 해마다 40팀을 선정해 1000만 원을 지급하고 영상 20편의 제작을 돕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서울산업진흥원도 비슷한 지원 사업을 운영하지만 현실성 있는 제작비를 지원하는 건 경기콘진원이 사실상 유일하다. 이 때문에 매번 경쟁률이 10 대 1에 이를 정도. 그러나 ‘최소 구독자 수’ 기준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크리에이터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일이 많다.

경기콘진원 관계자는 “외부 심사위원이 지원자의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발한다. 구독자 수 기준은 꾸준히 활동할 크리에이터인지 판별하는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해 뽑힌 40팀의 선발 당시 평균 구독자 수는 약 10만 명. 지원 기준보다 100배 가까이 높아 구독자 수가 상당한 허들로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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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콘텐츠진흥원은 교육, 네트워킹 등 다방면으로 1인 미디어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제작비 지원은 자금난에 시달리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 그러나 지원 자격의 문턱이 높아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경기콘텐츠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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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안팎에서는 이런 지원 기준이 1인 미디어 콘텐츠의 획일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산업진흥원에서 1인 미디어 교육사업을 진행하는 신득수 책임은 “이 분야는 사실 첫 구독자 1000명을 모으는 게 가장 어렵다”며 “조회 수나 구독자 수가 곧 지원 사업의 성과로 인식되는 현 상황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은 다중채널네트워크(MCN·1인 크리에이터 방송을 관리하는 회사) 업체들이 알아서 활발히 지원한다. 공공기관이라면 콘텐츠의 질이나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춰 지원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순수예술계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문학 미술 국악 등 11개 분야 저소득 예술인에게 연 300만 원을 주는 창작준비금 지원 사업을 운영한다. 하지만 이걸 받으려면 최근 3년간 예술활동을 통해 번 소득을 증명하거나 앨범, 공연 등 활동 내용을 입증해야 한다. 업계에선 “경력이 일천한 신진 예술가에겐 지나치게 높은 요건”이라며 “‘활동 기간’ 조건만 채운 ‘취미 예술인’들이 지원금을 타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단 관계자도 “전업 예술인도 아니면서 지원받은 사례가 있는 건 인지하고 있다”며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금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개선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열악한 사정의 중견 예술인들은 나이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시행하는 ‘최초예술지원’ ‘서울청년예술단’ ‘청년예술공간지원’ 등은 39세 미만 또는 데뷔 10년 이하 예술인만 대상이다. 40대 연극인 A 씨는 “원로 연극인을 위한 늘푸른연극제 같은 제도도 있지만 아무래도 청년들보다는 수혜의 기회가 적은 게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지운 easy@donga.com·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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