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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아내 몰래 비자금? 신형 거짓말탐지기에 딱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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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체험한 첨단 수사기법

안면·귀 미세 떨림 포착하는 기기

기존 호흡·심박 기기와 함께 사용

작년 미제사건 등 1만1110건 활용

중앙일보

본지 이태윤 기자(왼쪽)가 서울지방경찰청 거짓말탐지실에서 체험 조사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이재석 심리생리검사관.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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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몰래 비상금을 숨긴 적 있습니까?”

“아니요.”

16일 오후 서울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의 거짓말탐지실, 3평 남짓한 조사실에 앉자 검사관이 물었다. TV에서 거짓말탐지기를 쓸 때 몸에 달던 여러 측정 장비는 없었다.

지난해부터 경찰이 사용하고 있는 신형 거짓말탐지기 ‘바이브라 이미지(vibraimage)’를 직접 체험해봤다. 상상과 달리 정면에 카메라만 보면 검사가 가능했다. 검사는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이재석(57ㆍ경위) 심리생리검사관이 진행했다.

“비상금이 없다”고 답변할 때마다 안면 근처의 파동이 요동쳤다. 검사화면에 나온 얼굴 주변에 빨간색이 생겼다. 바이브라는 특수 카메라를 이용해 안면 근육의 미세 움직임과 귀 안쪽의 전정기관의 떨림을 포착해 컬러 그래프로 전환한다. 그래프의 진폭과 컬러가 갑자기 변하는 지점이 거짓말로 의심되는 순간이다.

이 검사관은 “비상금이 없다는 답변에 모두 거짓 반응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결국 조사를 받은 기자는 그 날 저녁 아내에게 비자금의 존재에 대해 자수했다.

숫자 보지 않고 정확히 맞혀…기존 거짓말 탐지기도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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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자가 16일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는 모습. 비교적 좁고 고르던 얼굴 주변 파동(위쪽 TV화면)의 진폭이, 거짓 진술을 하자(아래쪽 TV화면) 넓어지고 있다. 박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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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서 7까지 숫자 중 하나를 고르세요”

기존 거짓말탐지는 몸에 측정 장비를 부착한 뒤 피부 반응, 호흡, 심박 수 등을 그래프로 나타낸다. 폴리그래프(polygraph) 방식이다. 사람은 실제와 다른 진술을 할 때 미묘한 신체 반응 변화가 생긴다. 폴리그래프는 이를 포착한다.

이 검사관의 지시에 종이에 몰래 숫자 4를 적어 접어뒀다. “1을 골랐습니까. 2를 골랐나요” 이 검사관의 거듭되는 질문에 모두 “아니요”라고 답했다. (평소 검사관만 볼 수 있는) 검사 화면에 기자의 피부반응, 호흡, 심박 수 등이 선 그래프로 기록됐다. 질문을 마친 뒤 이 검사관은 “4를 고른 것 같다”며 정답을 말했다. 이 검사관은 “숫자 4에 대해 대답할 때 호흡과 심박 수 등이 튄다.”며 “바이브라, 폴리그래프 두 방식을 같이 활용해 오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15년 안 풀린 살인사건, 용의자 ‘거짓 반응’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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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이 15년 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가리봉동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의 피의자 검거 사실을 브리핑하는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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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탐지기는 장기미제 사건 해결에도 기여했다. 범행 15년 만에 진범이 검거된 ‘가리봉동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2002년 서울 가리봉동의 한 호프집에서 범인이 여주인을 둔기로 때려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 달아난 이 사건은 15년 동안 미제 사건으로 멈춰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깨진 맥주병에서 범인의 지문 일부가 발견되면서 용의자가 좁혀졌다.

이재석 검사관 등은 핵심 용의자 장모씨를 상대로 폴리그래프와 바이브라를 동원, 3시간 넘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벌였다. “호프집에서 여주인을 둔기로 폭행했죠”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훔쳐 나왔습니까” 검사관들의 ‘돌직구’ 질문에 장씨는 모두 “아니다”고 부인했다. 겉으로 보기엔 떨지 않고 태연한 모습까지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진술이 거짓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고 이후 주요 수사 자료와 재판의 정황증거로 활용됐다. 장씨는 1ㆍ2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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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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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탐지기를 활용한 수사는 계속 늘고 있다. 2014년 8460건에서 지난해 1만1110건으로 늘었다. 특히 CCTV 등 직접증거 대신 성폭력 사건에서 활용되는 일이 많다. 특히 수사 초기 단계에서 용의자를 좁히거나 수사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준다.

최근 4년간 살인 사건에도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449건 이뤄지는 등 강력사건의 해결에도 기여하고 있다. 경찰은 최근 논란이 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도 피의자 동생 등을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성윤 경찰청 과학수사기법계장은 “기술 발전에 따라 거짓말탐지기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며 “목격자나 증거가 없는 사건 현장에서 진실을 가르는 보완 도구로서 활용 횟수를 지속해서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국희ㆍ이태윤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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