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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현장]"네 가방은 네 돈으로" 동탄 학부모들이 터뜨린 초록색 '비리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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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기 화성의 동탄센트럴파크에서 21일 열린 ‘사립유치원 개혁과 믿을 수 있는 유아교육을 위한 집회’에 부모를 따라 나온 어린이가 풍선을 들고 서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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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야 터져라!” “부실 식단 부숴라!”

21일 경기 화성시 동탄 센트럴파크.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학부모와 아이들 500여명이 외쳤다. 이 지역 학부모들이 꾸린 ‘동탄 유치원사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사립유치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비리 풍선’을 터뜨리고, 부실한 급식 사진을 반으로 자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비리유치원’이라고 쓴 종이를 한 글자씩 찢을 때마다 참가자들은 환호를 보냈다.

■ 아이들과 함께 ‘소풍 같은 집회’

공원은 초록색 풍선으로 물들었다. ‘아이들과 엄마아빠의 힘찬 발걸음이 있는 평화 집회’라고 공지한 터라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이 많았다. 비대위가 마련한 작은 공간에는 ‘원장님, 사업 말고 교육하세요’ ‘저희는 돈벌이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쓴 포스트잇이 붙었다. 비대위가 나눠준 피켓에 적힌 ‘도둑질은 그만!’ ‘네 가방은 네 돈으로 사라’ 같은 메시지들이 아니었다면 가족들의 가을 소풍처럼 보이는 집회였다. “아기상어, 뚜루루뚜루” 동요에 맞춰 아이들은 풍선을 흔들었다.

비대위 대표 장성훈씨(36)는 싹이 난 감자와 잘게 자른 사과 조각을 들어보이며 “우리 아이들이 이걸 먹고 유치원을 다녔다”고 말문을 뗐다. 장씨는 “이 집회를 시작으로 원장님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지원금이 우리 아이들 배를 따뜻하게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발언에 나선 한 학부모는 “지금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도 선택을 받아야 한다”며 “국공립유치원이 더 많이 생겨 학부모들이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이크는 무대 아래 참가자들에게도 돌아갔다. “우리가 내는 원비와 국가 지원금이 아이들과 선생님들께 잘 돌아갔으면 좋겠다” “비리유치원 사태는 교육당국이 방관한 탓”이라는 얘기들이 나왔다. 학부모들은 사립유치원 비리의 규모에도 놀랐지만, 유아교육을 ‘장삿속’으로만 보는 것에 더 분노한 것 같았다. 유치원 교사로 일했다는 한 참가자는 “원장님들 이익을 남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냉난방비, 급·간식비, 교재교구비는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유치원을 개방적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공립유치원 늘리는 게 해법”

비대위와 학부모들의 핵심 요구는 세 가지였다. 국가회계시스템 ‘에듀파인’으로 투명하게 운영할 것, 사립유치원도 유치원 입학관리시스템인 ‘처음학교로’를 이용해 지원할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국공립유치원을 늘려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유치원생 4명 중 3명은 사립유치원에 다닌다. 특히 대도시일수록 국공립취원율이 떨어진다. 신도시인 세종에는 공립유치원 50곳에 사립유치원은 3곳뿐이지만, 서울의 경우는 209곳 대 671곳으로 사립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비대위는 3대 요구사항을 내걸면서, 특히 공립 단설유치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30대 이모씨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된 곳 명단에 들어있더라”면서 “비리가 드러난 이후에도 원장은 ‘1원도 먹은 것이 없다’고 발뺌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유치원 입학을 앞둔 네 살배기 딸, 남편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황명희씨(40)는 “워킹맘들은 사립유치원 입학설명회를 다니는 것조차 힘들다”면서 “이 기회에 싹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이날 집회에 500명 정도 참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날 집회에서 쓴 물건들은 모두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마련했다. 동탄 학부모들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의견을 모으고, 지난 15일 비대위를 꾸린 뒤 집회를 준비했다.

이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전 원장이 교비를 빼돌려 고가의 가방 따위를 산 사실이 확인된 환희유치원이 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이덕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운영하는 리더스유치원도 동탄에 있는데, 이곳 역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회계부정 유치원 명단에 들어 있었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집회가 시작되기 직전 공원을 찾아 “시 차원에서 다방면으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서울시청역 부근에서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유아교육·보육 정상화를 위한 모두의 집회’를 열고 책임자 처벌과 국가회계시스템 도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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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의 동탄센트럴파크에 21일 오후 학부모들이 모여 ‘사립유치원 개혁과 믿을 수 있는 유아교육을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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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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