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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운동·감각능력 로봇에 ‘모라베크 역설’ 붕괴?…인간 고유성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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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람은 쉬운 일이 로봇엔 난제”

운동과 감각능력은 역설계 어려워

모라베크 역설 무너뜨리는 로봇 등장

암묵지 익힌 로봇, 인간성 향한 질문



2족 로봇 아틀라스의 파쿠르 의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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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미국의 로봇 제조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장애물 통과 훈련(파쿠르)을 하는 모습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아틀라스는 통나무를 가볍게 뛰어넘고 두 발을 번갈아 다른 높이의 상자 세 개를 딛고 훌쩍 오른다. 2017년 11월 아틀라스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점프해 단상에 올라서고, 완벽하게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모습을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웬만한 사람은 흉내 못낼 체조선수 수준의 묘기다. 지난 5월엔 사람처럼 안정적 자세로 조깅하는 아틀라스의 동영상도 공개됐다. 로봇은 두 발로 눈길, 계단, 울퉁불퉁한 산길을 능숙하게 걷고 뛰며 운동능력을 진화시키고 있다.

2015년 5월 미 국방부 방위고등계획국(다르파)이 캘리포니아주 퍼모나에서 개최한 재난구조 로봇 경진대회(DRC)에서 한국과학기술원의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는 8개 임무를 44분 만에 완수하고 우승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상황에 투입할 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된 로봇경진대회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들이 경쟁했지만, 재난 현장에 로봇을 투입할 수 있는 날은 요원해보였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쓰러지는 로봇, 불안하게 몇 걸음을 떼곤 고꾸라지는 로봇, 계단과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균형을 잃고 자빠지는 로봇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로봇에 대한 측은함과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다.

아무리 인공지능과 로봇이 강력해 보여도 걷기와 계단 오르기처럼 사람에게 쉬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만큼, 두려워 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설명이 있다. ‘모라베크의 역설’이다. 사람에게 쉬운 문제가 로봇엔 어렵고 사람에게 어려운 문제는 로봇에게 쉬운 현상을 일컫는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의 로봇과학자 한스 모라베크가 1980년대 제시한 이론으로, ‘모라베크의 역설’로 불린다. 컴퓨터가 고도의 논리적 작업을 위해 수행하는 계산량은 얼마 안 되지만 운동이나 감각 능력에는 엄청난 계산 능력과 제어 능력이 필요하다.

모라베크는 이런 역설적 현상을 인류의 기나긴 진화 과정으로 설명한다. 걷거나 말하기 등의 기능은 인류가 오랜 진화 끝에 최적화한 기능이지만 논리 능력이나 바둑 같은 인지기능은 역사가 몇천년에 불과할 정도로 비교적 최근에 학습한 기능이다. 모라벡은 역설계를 통해 인공지능에 사람 역할을 모방하게 할 때 인지적 작업보다 걷기, 말하기 같은 본능적 기능을 분석해서 재구성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모라베크 역설은 타당성이 무너지는 형국이다. 아틀라스를 비롯해 스팟, 빅독 등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선보이는 2족, 4족 보행로봇들의 운동능력은 인간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또한 인간 감각능력의 핵심인 시각적 인지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은 사람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20차례 시도 끝에 성공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운동로봇의 발달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뛰어나도 고양이와 개 사진을 식별하지 못한다고 지적받아왔지만, 인간 뇌구조를 모방한 심화신경망 방식의 비지도학습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고양이를 식별해내며, 인간과의 차별점을 또하나 제거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에릭 브리뇰프슨과 앤드류 매카피는 저서 <제2의 기계시대>에서 미 리싱크로보틱스의 범용 로봇 백스터에 대해 “모라베크 역설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백스터는 특정 기능에 국한된 게 아니라, 간단한 학습을 통해 사람이 수행하는 다양한 작업을 따라하는 범용성이 특징이다. 매카피는 2016년 알파고-이세돌 대국 직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알파고의 괴력이 ‘폴라니의 역설’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헝가리 출신 철학자, 과학자인 마이클 폴라니가 1966년 저서 <암묵지>에서 “할 줄은 알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식과 능력”을 인간 인지의 특징이라고 말한 게 ‘폴라니의 역설’이다. 폴라니는 혼잡한 도로의 운전 방법이나 얼굴 식별 능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대표적 암묵지로 예시했다. 사람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 지닌 능력과 지식 대부분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암묵지이이고, 이는 언어와 논리 코드 형태로 변환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계가 모방하게 힘들다는 주장이 폴라니의 역설이다. 이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능력의 고유성과 우위를 펼치는 논리의 하나였다. 하지만 알파고와 자율주행차 등은 이러한 암묵지의 영역마저 기계가 인간을 추월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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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우월성의 근거로 거론된 운동능력, 지각능력, 암묵지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능가하는 현상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컴퓨팅 능력과 인공지능 기술 발달로 인해 모라베크와 폴라니의 주장이 더 이상 역설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물음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에 경계선이라고 그어놓은 구분선이 희미해지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지, 인간과 기계의 차별성이 결코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 기술수준과 상황에 맞춰 인간의 본질과 고유성이 정의되었다면, 기술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라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와 논의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데이터 분석방법과 코딩 능력을 익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의 특성과 능력에 대한 탐구이다. 이는 사람의 특성을 특정한 지식과 기능 위주로 정의하기보다, 인간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도구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는 모습에서 찾아질 수 있다. 기계와 달리 다양한 정보와 기능을 맥락과 의도 속에서 종합해 파악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기술 발달로 기존의 구획선이 이동한 만큼, 인간에 대한 더 적극적이고 유동적인 이해와 탐구가 절실한 때다. 교육과 직업 분야에 던져진 새로운 과제이기도 하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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