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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플랫폼 일자리’ 쏟아지는데…‘노동자 안전망’ 어찌하나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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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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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하루 일손을 놓고 택시 운행을 중단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드라이버를 모집하고, 정부가 승차공유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모빌리티 산업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반발 성격입니다. 이러한 모빌리티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지만, 산업 차원의 규제 완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에 근거해 생겨난 일자리와 그 종사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입니다.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 핵심이죠.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자’들

플랫폼 노동은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노동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배달대행업체(배달의민족·부릉·바로고 등) 배달원들이나 한국엔 없지만 우버·그랩 같은 승차공유 플랫폼 등 ‘온라인 투 오프라인’(O2O) 플랫폼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흔히 플랫폼 노동자라고 합니다. 국토교통부가 “카풀 서비스의 전업기사 활동을 막겠다”고 하고 있어 카풀을 생계로 삼는 이들의 숫자는 적겠지만, 만약 카풀을 넘어 ‘우버형’ 승차공유 플랫폼이 등장할 경우 그 수는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우리는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을 중개만 할 뿐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드라이버나 승객이나 똑같은 플랫폼의 ‘고객’이라는 것이죠. 이에 따라 플랫폼은 이들과 근로계약을 맺고 직접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용역·위탁 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무제공 대가를 지급합니다. 일이 있을 때만 일하고, 일감을 통해 수수료를 받는 이들을 말하죠.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기존 일자리에 비해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자리에서 ‘고소득’을 누리기 힘들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 상당수가 프레카리아트(불안정과 노동계급의 합성어로 저임금·저숙련 노동계층을 뜻하는 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해외에선 우버의 기업가치가 134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결국 우버 플랫폼의 성장을 이끈 노동자들은 가난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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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사장님’이 아닐까요?

그런데 플랫폼이 과연 ‘사용자’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습니다. 사용자성 판단기준은 보통 노무제공 대가를 누가 주는지, 업무 지휘감독을 누가 하는지, 인사·징계 권한을 누가 행사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데요. 오투오 플랫폼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플랫폼 노동자에게 많은 제약조건을 둡니다. 이를테면 승차공유의 경우, 운전경력·차량 상태 등을 굉장히 따지죠. 또한 일하고 싶은 때만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무시간을 정해두는 경우도 많고, 플랫폼이 ‘지시’하는 대로 이동해야 하는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승객들이 매긴 평점 등을 종합해 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으니, 징계·인사 권한을 행사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충분히 오랜기간 동안 논란이 지속돼왔습니다. 유럽과 일부 지역에선 우버 드라이버의 사용자가 ‘우버’라는 판결을 내 노동자성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노동자성·사용자성 인정 여부가 중요한 것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냐 아니냐에 따라 권리에 많은 차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면, 최저임금·노동시간 한도·퇴직금·연차휴가 등을 보장받을 수 있고, 4대보험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몇개 업종에서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한 것을 제외하고는 노동법적 보호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특히 4대보험 가운데 산재보험은 사용자가 100% 내고, 고용보험 역시 사용자·노동자가 반반씩 부담하기에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ICT 발달로 플랫폼 늘어나는 추세

배달대행업체·우버·그랩 등 대표적

건당 수수료 성격 노동 대가 받아

일자리 불안정해 저소득에 머물러


플랫폼의 지휘·감독 등 받는데

노동자 인정 안돼 법적 보호 허술

유럽선 “플랫폼은 사용자” 판결

산재보험료 등 플랫폼이 부담


노동자에 파업권·교섭권 등 부여

500여 기업 회원사 둔 ‘스타트업’

“정부·기업 함께 논의하자” 제안

새 시대에 맞는 노동법 논의 기대


플랫폼 노동자 보호받을 수 있을까?

결국 산업차원의 규제완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고민 역시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겪은 전철을 그대로 밟을 필요가 없을뿐더러, 한국의 경우 사회보험 등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방법은 두 단계입니다. 먼저 사용자성이 뚜렷한 플랫폼 노동에 대해서는 용역·위탁계약을 맺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을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임금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자영업자로 ‘오분류’된 플랫폼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로 바로잡자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명확한 ‘노동자성 판단’ 기준이 필요하고 적극적인 근로감독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 그대로 플랫폼의 사용자성을 도무지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사회안전망으로 포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사회보험이나 산업안전 체계를 뜯어고쳐 근로기준법의 노동자가 아닐지라도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혜택을 부여하자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프랑스는 2016년 ‘노동과 사회적 대화의 현대화, 그리고 직업적 경로의 보장에 관한 법안’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의 산재보험료·직업훈련비용 등을 플랫폼이 부담하도록 하고,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파업권과 단결권·단체교섭권을 부여했습니다.

스타트업들의 의미있는 제안

어떤 방법, 어떤 수준이 됐든 사회적 논의와 합의 그리고 입법까지 필요한데, 그동안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지만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라는 수준에 그쳤던 플랫폼 기업들이 최근 이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습니다. 대표적인 오투오 플랫폼 기업인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메시코리아(부릉)·홈스토리생활(대리주부) 등 스타트업 500여곳을 회원사로 둔 코리아스타트업 포럼의 2주년 선언이 그것입니다.

지난 16일 발표된 이 선언문을 보면 “디지털 경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기존 시장을 혁신하며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이 변화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만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인재육성 정책이 개혁돼야 하고, 고용보험 확대와 실업부조 도입, 직업훈련제도 전면 개편 등을 통해 직업 이동이 새로운 기회가 되고, 스타트업에 인재가 유입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코스포는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 확대 추진과 관련해서 늘 문제가 됐던 것이 사업주 단체의 반발이었는데, 사업주 단체들이 전향적 태도라면 제도개선 논의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플랫폼 노동’ 뿐만 아니라 4차 산업 등 변화되는 환경을 고려해 고용노동법제 전반에 대한 변화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플랫폼(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이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경우 노동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계약을 맺고 무슨 일을 하든, 건강하게 일하고,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지 않으며, 일자리를 잃어도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법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상상력에 맞는 새로운 노동법이 만들어지길 수 있는 논의가 시작되길 기대해봅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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