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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주먹다툼 사망설’에 국제사회 불신 증폭…사우디 편드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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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자국 언론인 피살 관련해 3주만에 “우발적 주먹다툼에 사망”

獨·英 등 “사우디 설명 불충분하다” 반발…투명성 촉구 한목소리

국제단체·아랍 언론인 “시신 인도하라”며 증거 제시 압박

일각선 美-사우디 공모설도 제기

美·일부 아랍 국가들만이 “사우디 발표 지지” 표

이데일리

지난 2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실종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진=AF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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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20일(현지시간) 왕실에 비판적인 칼럼을 써오던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과 관련, 3주 만에 “우발적인 주먹 다툼 중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대다수 유럽 국가들과 각종 국제단체 등은 여전히 의혹을 제기하며 한목소리로 진실규명과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미국과 일부 아랍 국가들만이 사우디 공식 입장을 지지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과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하다. 우리는 카슈끄지 사망과 관련한 상황에 대해 사우디의 투명성을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카슈끄지 사망에 대한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관련자들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카슈끄지 사망 사건의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스페인 정부는 “리야드에서 발표한 정보는 심히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앞서 사우디 정부는 용의자 18명을 체포해 조사중이라고 밝혔지만 국제 사회는 믿지 못했다. 사우디가 정황에 대한 설명만 했을 뿐,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의구심을 키웠다. 이에 카슈끄지의 시신, 즉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는 “사우디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의 시신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부검에 나서야 한다”며 유엔 차원의 공정하고 독립된 진상조사를 강력히 촉구했다.

튀르크-아랍미디어협회도 이날 이스탄불 내 사우디 총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카슈끄지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사우디 정부가 시신을 인도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살해 후 시신을 훼손했다는 터키 수사당국의 증언을 더욱 신뢰하고 있는 셈이다. 협회 회원들은 또 “살해를 지시한 자도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같이 ‘사우디의 설명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왕실의 지시가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사건’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특히 용의자들 중에 사우디 정보요원들과 왕실 경호원, 법의학 전문가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브루스 리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범행 증거를 지우려는 의도가 아닌 이상 법의학 전문가가 (살해에) 필요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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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아랍미디어협회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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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과 일부 아랍권 국가들은 사우디를 지지하고 나섰다. 사우디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 발표에 대해 이날도 “큰 첫 번째 발걸음”이라며 “사우디의 발표를 신뢰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 왕실이 “몰랐을 수도 있다”며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집트, 예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등도 사우디의 수사 결과를 ‘정의’라고 옹호했다. 또 향후 투명한 수사와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슬람협력기구(OIC)와 걸프협력회의(GCC)도 사우디를 지지했다. 이들 국가는 지난해 사우디 주도로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했을 때에도 뜻을 같이 했던 곳들이다.

일부 미국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의 ‘꼬리자르기’를 용인·지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공모 의혹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우디의 ‘뒤늦은’ 발표에 의문을 표했다. 카슈끄지가 실종된 지 18일이나 지나서야 그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우디의 주장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면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양국이 공모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에 “무기 판매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뒷거래가 의심되는 대목이는 설명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부 내 누구도 카슈끄지 피살 관련 영상이나 녹취록을 접한 사람이 없다고 거듭 일축했다.

한편 터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는 “은폐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건을 규명하겠다”고 선언했다. 누만 쿠르툴무시 정의개발당 부대표는 “사우디 정부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사우디는 범죄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와 공동조사팀을 꾸렸던 터키지만 자체 수사 결과를 토대로 다른 결론을 낼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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