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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단독] 군 대신 배 탄 청년들, 더 많이 다치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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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병사 6000명 중 1명이 사망할 때, 승선근무예비역 806명 중 1명이 사망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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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인 승선근무예비역이 현역 병사보다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어 존치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승선근무예비역은 기관사·항해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배에서 3년을 근무하면 현역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국회 국방위원회)이 병무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 승선근무예비역 3227명 중 4명이 사망했다. 같은 시기 현역 병사는 45만명 중 75명이 사망했다.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병사 6000명 중 1명이 사망할 때, 승선근무예비역 806명 중 1명이 사망한 셈이다.

공상(산업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현역 병사 45만명 중 840명이 공상 처리됐다. 535명 중 1명 꼴이다. 같은 시기 승선근무요원으로 복무하다 사고를 당한 예비역은 47명으로 68명 중 1명이 근무 중 다쳤다. 김 의원은 “승선근무예비역의 산재와 사망은 병사의 공상과 사망의 10배 가까이 된다”며 “승선근무 특성상 당국의 관리·감독체계 및 권익보호장치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근무여건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근무(복무)환경이 열악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공간의 특수성이다. 24시간 운항하는 배에 사실상 퇴근은 없다. 교대근무라고 하지만 늘 대기상태로 있어야 한다. 승선근무예비역인 A씨는 “방에 자물쇠가 설치돼 있지만 잠글 수는 없다. 항상 문을 열어놓고 지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런 어려움을 호소할 수 없는 구조다. 승선근무 기간 동안 청년들은 병무청이 아니라 해운회사에 소속되는데, 좁은 해운업계 특성상 회사에 찍히면 취업이 쉽지 않다. 적게는 해양대학 4년, 길게는 해사고~해양대학 7년이 날아가는 셈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치거나 괴롭힘을 당해도 참는 편을 택한다. 올해 사망한 구민회씨(25)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역복무의 10배에 이르는 산재·사망

구씨는 지난 3월 16일 사우디아라비아 해상의 한 화학약품 운반선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부산해사고등학교와 목포해양대를 졸업한 구씨는 지난해 11월부터 3등기관사로 승선근무를 하고 있었다. 구씨가 남긴 유서, 그리고 카톡 대화 등을 종합해보면 구씨는 승선 한 달째부터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은 구씨가 사망한 이후 친구들과 나눈 카톡 대화를 보고 구체적인 괴롭힘의 내용을 알게 됐다.

“당직 교대할 때 올려보내 주지도 않고 욕이나 할 거면 왜 붙잡고 있는지.” “매뉴얼 수기로 20장씩 써오라 하고…. 자해라도 해서 집에 갈까.” “업무 숙지하라고 잠도 안 재우고 이런 식으로 괴롭히는 거지.” “방금 무릎 꿇고 왔다. 진짜 이 상황 그대로 가다간 내가 죽든가 진짜 스패너로 후리든가 둘 중 하나 될 듯.”

구씨가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올해 2월 회사에 괴롭힘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괴롭힘을 당하는 곳은 바다 위 어딘가지만 회사는 한국 부산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은 배에 타고 있을 때는 ‘민간인’ 신분이라 병무청에 신고를 할 수도 없다. 고립돼 있는 것이다.

누나 설희씨(27)는 “선내에도 고충처리 담당이 있다. 하지만 배의 특성상 비밀보장이 전혀 안 된다. 심지어 고충처리 담당이 가해자인 경우도 있다”며 “본사에 이야기하려고 해도 상급자인 1등기관사와 선장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구씨가 유서에서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은 2등기관사다.

설희씨는 동생이 괴롭힘에 대해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자 가해자가 동생의 휴대전화를 감시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올해 2월 동생으로부터 페이스북 게시물을 ‘친구공개’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동생의 휴대전화에서 “지문으로 (휴대전화를) 단디 잠가놔야지”라는 대화가 발견됐다.

사망 전날 구씨는 업무 중 오른팔을 다쳤다. 뼈에 멍이 들었다고 했다. 의사는 ‘슬링’을 차고 약을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괴롭힘은 계속됐다. 구씨는 다친 팔로 “어제도 오늘도 엄마 생각하면서 버티려 했지만 더 이상, 더 이상의 괴롭힘은 참지를 못하겠다”는 유서를 썼다. 글씨가 삐뚤삐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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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설희씨가 구민회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구씨는 3월 1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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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라도 해서 집에 갈까…”

비단 구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승선근무예비역인 A씨는 “나도 승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 유서를 썼다. ○○해양대 출신 1등기관사가 매일 내 방으로 와서 기합을 주고 귀싸대기를 때리고 옆차기를 하고 얼굴에 침도 뱉었다. 술에 취해 내 방에서 오줌을 싼 적도 있다”고 승선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의원이 병무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 32건이던 산재는 2016년 33건, 2017년 47건, 2018년(6월까지) 16건으로 증가추세다. 사망은 2014년에는 1명이었지만 2015년 3명, 2016년 4명, 2017년 4명이 숨졌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4명이 사망했다.

중도에 승선근무를 포기하는 예비역 수도 증가하고 있다. 해당 자료를 보면 2014년 22명이던 중도취소자는 2015년 31명, 2016년 31명, 2017년 42명, 2018년 7월까지 36명에 이른다. 승선근무예비역은 중간에 배에서 내릴 경우 현역으로 입대하게 된다. 그럼에도 현역을 택한 것이다.

구씨가 사망한 이후 병무청은 ▲연 2회 카톡 메시지와 휴대전화 문자 등 모바일 인권침해 여부 전수조사 ▲인권침해 발생 시 해양항만관청이나 선원근로감독관에게 조사를 의뢰 ▲긴급구제가 필요할 경우 해양수산부·해운업체와 공조해 구제방안 마련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설희씨는 병무청 대책에 코웃음을 쳤다. “1년에 두 번 휴대전화 검사를 한다고 인권침해가 잡힐지 모르겠고, 상급자들이 하급자들의 방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고 휴대전화까지 다 검사하는데 어떻게 관청이나 근로감독관에게 조사를 의뢰하겠나.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대책조차 없었다니 참담하다.”

구씨가 사망한 지 7개월이 지났다. 사건은 여전히 올해 3월에 머물러 있다. 부산해양경찰청은 구씨의 유서와 카톡 내용 등에도 불구하고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리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구씨가 속해 있던 회사 IMS코리아는 지금까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9월 21일 기준으로 16명의 예비역이 이 회사 소속이다.

김 의원은 “병무청 규정에 따르면 사망 발생시 복무관리 부실업체로 지정해서 제재가 가능하다. 하지만 병무청은 수사 종결만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업체에 대한 제재는 물론이고 이번 일을 계기로 승선근무예비역 존치 여부를 포함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희씨는 “동생과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증언을 해줘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구조다. 동료들 중 누구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해운업계가 좁기 때문에 한 번 찍히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동생은 죽었지만 이 구조는 정말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은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소한 상황이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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