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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소가 많이 움직이면 짝짓기 타임” 농업 AI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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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감지해 야채·과일 자동 수확

돼지 기침 소리 채집해 건강 파악

유럽선 농업에 로봇공학 접목 활발

인력 없는 고품질 생산 가능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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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촬영해 열매가 달린 가지만 잘라내는 파프리카 자동 수확 기계 [네덜란드 바헤닝헨대 Agro Food Robo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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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코틀랜드 일부 목장에선 소에게 ‘디지털 목줄’을 걸어놓고 있다. 글래스고의 한 기업이 개발한 이 목줄은 소의 움직임을 추적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소는 번식 시기가 되면 평소보다 많이 움직인다. 이를 포착해 특정 소가 짝짓기할 준비가 됐다고 판단되면 목장주의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준다.

이스라엘 낙농기술회사인 아피밀크는 이 기술을 인수한 뒤 소의 질병을 감지하는 장치로 발전시켰다. 소가 음식을 먹고 되새김질하는 평균 시간을 체크해 이 시간이 줄어들면 알려주는 것이다.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농촌대학(SRUC) 소속 동물영양학자 리처드 듀허스트는 “소의 미묘한 행동 변화가 산독증 같은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는지 알아낸 뒤 목줄에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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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목줄에 달린 디지털 장치가 움직임 등을 추적해 짝짓기 시기와 건강 상태까지 스마트폰으로 알려준다. [Afim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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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소가 세균 감염으로 유방염을 앓으면 우유 생산량이 줄고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큰 비용을 초래한다. 이를 막기 위해 스코틀랜드 농가들은 외양간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열이 나는 소를 찾아내 치료한다. SRUC 동물과학자 카롤 안 두티는 수조에 모여드는 소를 3D 카메라로 찍은 뒤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무게와 육질 등급을 추정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두티는 “도축을 위해 출하할 최적 시기를 알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기술이 전체 공급망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과학잡지 네이처에 말했다.

유럽에서 로봇 공학과 감지 기술을 작물 생산과 목축업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ㆍ개발이 한창이다. 로봇식 농업 시스템을 적용한 농가에선 효율이 높아지고 생산이 지속 가능해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는 농업의 사업 모델을 바꿔놓을 전망이다. 그동안 농업과 목축업에선 대규모 생산 체제를 갖춰 비용을 낮춰야만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능형 로봇이 도입되면 많은 노동력을 고용할 여력이 없어도 작은 양만 고품질로 생산하는 농가가 생존할 길이 열릴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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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자동 수확 기계 [AGRO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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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퍼 애덤스대 농업기술자인 리처드 그린은 딸기 수확 로봇을 개발했다. 녹색과 적색 등을 구별하는 카메라가 딸기를 입체로 관찰해 잘라낼 줄기를 찾아낸다. 이 기계를 이용하면 2초마다 딸기 한 개를 딸 수 있는데,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고 그린은 설명했다.

네덜란드 바헤닝헨대는 파프리카 따는 기계를 연구 중이다. 컬러 카메라가 파악한 데이터를 해석하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본 줄기가 아니라 파프리카가 달린 작은 줄기만 잘라내는 게 핵심이다. 자동주행 차량이 거리에서 사람이나 물체를 파악하는 원리로 수확 기계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자동화는 적정 수확 시기를 파악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과일이나 채소를 너무 일찍 따면 성장 기간을 놓쳐 손해가 난다. 너무 늦게 따면 저장 시간을 몇주가량 단축하게 된다. 독일 라이프니츠 농업기술ㆍ바이오 경제 연구소는 사과에 센서를 달아 크기는 물론이고 엽록소와 안토시아닌의 농도를 감지한다. 이 데이터가 사과의 성장 단계를 계산하는 알고리즘에 입력되는데, 수확 적기가 되면 재배자의 휴대전화로 알람을 보낸다.

이 연구소는 배와 감귤류, 복숭아, 바나나 등에도 센서를 설치했다. 체리 재배자를 위한 스마트폰 앱도 개발 중이다. 재배자들이 체리 사진을 찍으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장률과 품질 평가 점수를 계산해주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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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앱으로 유채꽃을 찍으면 질소 비료를 얼마나 뿌려야 하는지 알려준다. [Yura Imag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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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가축사육기업 판콤은 닭 사육장에 설치하는 카메라를 판매 중이다. 이 카메라는 닭 수천 마리의 움직임을 추적해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파악한다. 루벤대 생체공학자 다이넬 버크만은 “어린 닭의 행동을 분석하면 건강 문제가 생겼는지 등을 90%가량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루벤대 연구소는 사운드토크라는 회사를 통해 돼지 기침을 모니터링하는 장비를 선보였다. 돼지우리에 달린 마이크로폰이 기침 소리를 포착하는데, 농부나 수의사가 문제를 찾아내는 것보다 12일가량 일찍 파악할 수 있다고 버크만은 말했다. 사람의 스트레스 측정기를 소형화해 소귀에 달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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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마이크로폰을 설치한 뒤 돼지 기침을 분석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한다. [SoundTalks F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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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스나부르크 응용과학대 연구팀이 개발한 자동차 크기의 로봇은 다양한 센서를 부착하고 주행하며 토양 상태를 측정한다. 토양에 수분이 얼마나 잘 머무는지 등 특성을 파악해 ‘토양 지도'를 만든다. 이 작업이 이뤄지면 하나의 들판에서 특성이 다른 여러 작물 품종을 기를 수 있게 된다.

기술을 활용한 혼합 파종은 커다란 농기계로 단일 작물을 대단위로 재배하는 기존 기업형 농업이 도전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대형 농기계는 무게가 60톤에 달하는데, 수년간 토양을 짓누르는 악영향을 끼친다. 바헤닝헨대 농업기술자 엘더트 반 핸텐은 “인간의 요소가 사라지고 자동화가 되면 농장의 크기는 무의미해진다"며 “작고 자율적인 로봇은 섞어 심기를 가능하게 하고 토양을 훼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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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물을 맞춤형으로 기를 수 있게 토양의 특성을 분석해 주는 로봇 [독일 오스나부르크응용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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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애덤스대 연구진은 1헥타르 면적의 보리를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재배·수확하는 실험을 할 예정이다. 로봇을 따로 개발하지 않되 기존 농가가 쓰는 트랙터 등에 자신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사용하기로 했다. 반 핸텐은 “로봇은 농업을 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낼 것"이라며 “아직 많은 기술이 개발 단계이지만, 과거 IT 분야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농업 분야에서도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 관련 기사 네이처 Technology: The Future of Agri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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