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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전원책 “거울 하나씩 선물하고 싶다. 자신을 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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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고민 좀 해봅시다.” 지난 일주일, 전원책 변호사에게 가장 많이 들은 답이다. 전 변호사는 10월 1일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 외부위원으로 선임됐다. 전 변호사는 한국당의 제안에 “전권을 주면 위원을 맡겠다”고 말해 왔다. 사실상 거절의 의미였다. 하지만 한국당은 전 변호사에게 전권을 줬다. 한국당 인적 쇄신의 전권을 가진다는 점, 그리고 전원책이라는 인물의 스타성이 합쳐졌다. 한국당뿐 아니라 정계가 전 변호사를 주시하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뉴스가 쏟아진다. 최고의 뉴스메이커가 된 셈이다.

그는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외부위원으로 선임된 직후 그는 기자들에게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지만 <주간경향> 인터뷰에서는 “내가 말을 많이 하면 당장 당에서 말 나온다. 입에 테이프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라며 부담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좌우에서 나를 두고 하는 말들, 다 듣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인배들과 다툴 여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수차례 전화와 문자, 그리고 조강특위 사무실 앞 ‘뻗치기’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조강특위 사무실에서 만난 전 변호사는 웃으며 “친정 같은 언론사 인터뷰도 거절했는데 이렇게 귀찮게 하니 인터뷰를 안할 수도 없다”며 마지못해 응했다. 다만 그는 시간이 없다며 ‘심야 인터뷰’만 가능하다고 했다.

10월 16일 오후 9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전 변호사는 20대로 보이는 청년 3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는 한 중년남성이 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카카오톡을 포함한 모든 SNS를 하지 않는 그는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면 무조건 많이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특유의 해박한 지식과 거침없는 주장이 펼쳐졌다. 한국당에 대한 비판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보수진영은 ‘정권을 빼앗겼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빼앗긴 게 아니라 헌납했다. 정권을 갖다 바친 주제에 빼앗겼다고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오후 10시부터 3시간가량 진행됐다.



경향신문

10월 16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전원책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 변호사를 만났다. /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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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몸무게를 재보진 않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훅 찌그러들었지?’ 그런 생각이 든다. 조강특위 외부위원을 인선할 때 고민을 너무 많이 했다. 하겠다는 분도 많았고 추천도 많았지만, 보수주의가 뭔지 이해하고 또 친박·비박과 연결이 없으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분을 찾으려다 보니 힘들었다.”

-위원으로 선임되기 전 날만 해도 고사하는 내용의 기사가 나갔다. 어떻게 맡게 된 건가.

“내가 철이 없었던 거다. 자꾸 보면 정이 든다고. 아는 얼굴이 들락날락해봐라.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전권을 주면 들어가겠다’고 했다. 내가 칼을 휘두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김용태 사무총장과 김성태 원내대표가 표결에 참여하면 친박 누구도 그 결정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한국당이 의외로 전권을 주겠다고 했다. 일언이 중천금인데 했던 말을 돌릴 수도 없고 후회막심이다.”

-후회막심이라고 했는데, 힘들 줄 몰랐나.

“욕 들을 줄은 알았지만 그때는 용기를 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리.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진짜 사방에 욕밖에 안 들린다. 어차피 현실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바보짓을 해서 이 고생을 하나. 출연료 어마무시하게 주는 방송프로그램도 다 취소하고 여기 왔다.”

-위원이 된 직후 범보수 통합론을 이야기했다. 당대 당 통합은 고려 대상이 아닌가.

“나는 당대 당 통합을 언급한 적도 없다. 처음에 보수통합 전당대회를 이야기했다. 이 단어가 오해를 살까 싶어 ‘보수 단일대오’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자기가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재야든 다른 당이든 이제 다 모이자, 싸우더라도 그 안에서 싸우자는 거다. 그런데 본인들이 보수라고도 안하는 바른미래당이 발끈했다. ‘합리적 진보’ ‘개혁적 보수’ 이런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당에서 왜 발끈하나? 손학규 당대표와 친한데 참 아쉽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등 개별 의원들의 입당도 고려하고 있나?

“특정인을 두고 이야기하지 말자. 오해를 낳는다. 나는 보수가 결집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복당파, 잔류파, 친박, 비박 등 과거를 놓고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적의 말발굽이 우리 머리를 밟을 때까지 이러고 있을 것이냐? 그러면 계속 지금처럼 하면 된다.”

-태극기부대도 범보수로 칭했는데 비판이 만만찮다.

“그분들이 무슨 극우냐? 극우는 폭력으로 모든 걸 전복하려는 집단이다. 태극기부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가진 분들이다. 한때 새누리당과 한나라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비박들 주장대로 그런 사람들을 전부 쳐낸다? 그게 신보수고 새로운 보수냐? 좌클릭을 해야만 새로운 보수인지 묻고 싶다.”

-중도로 가야 선거에서 유리하다는 의견이 있다.

“중도로 가야 할 게 있고 보수의 가치를 지켜야 할 게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들으면 깜짝 놀라겠지만, 빈부격차에 대해서라면 국가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 하지만 국가 안보는 다르다. 여당 당대표가 평양에 가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이야기하고 안보를 위협하는 합의서가 나온다. 그걸 고민하는 게 유연한 거냐? 코미디 같은 소리다. 그건 유연한 게 아니라 상대의 프레임에 갇혀서 항복하는 거다.”

-새로운 인물 영입 계획이나 전략이 있나.

“그 프로그램은 이미 작동 중이다. 인재가 따로 숨겨진 게 아니다. 인재는 많다. 당이 문을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 당 사무직들을 대상으로는 ‘슈스케’를 할 것이다. 이것도 문을 열어주는 일환이다. 당 사무직 인사들만큼 인재들이 어딨나. 고인물은 썩게 마련이다. 선거기간이 아니라도 끊임없이 수혈이 일어나야 한다. 당은 보수의 요람처럼 돼야 한다.”

-지금 한국당을 어떻게 평가하나.

“여전히 적폐청산 프레임에 갇혀서 꼼짝달싹 못한다. 야당이 뭐냐? 정부·여당이 정책을 내놓으면 대응을 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보자. 한국당에서 최저임금 공격을 많이 했다. 그런데 사격이 아니라 난사를 했다. 체계적으로 문제를 짚고 대안을 제시한 게 아니다. 평화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평화협정 상대방일지 모르지만 우리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적의 최고사령관이기도 하다. 그런 김정은과 문 대통령이 도보다리에서 비공개 대화를 했다. 한국당은 여기에 대해 아무런 지적도 안 했다.”

‘안보’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전 변호사는 중령으로 예편한 장교 출신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살인마’라고 수식했고, 최근 남북 분위기를 두고 ‘평화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는 “병역·납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가 명색이 보수주의 정당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경향신문

10월 16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전원책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 변호사를 만났다. /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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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당 통합이 아니라 ‘보수 단일대오’ 강조

전반적으로 인터뷰는 거침이 없었지만 그도 주춤하는 때가 있었다. 특정인의 실명이 거론될 때였다. 그는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와 김무성 의원에 대해 “본인들이 큰 그릇이라면 빠질 것이다. 끝까지 고집을 하면 본인들 스스로가 무덤을 파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날 홍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복귀를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홍 전 대표의 글을 보지 못했던 전 변호사는 기자에게 “뭐라고 썼는지 읽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 전 변호사는 “그분을 두고 거론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도 “그분 주변 사람들은 그분을 위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 그분의 위상을 등에 업고 자신을 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담배 태우는 횟수가 잦아졌다. 위원을 맡기 전에도 하루 한 갑을 태우는 ‘골초’였지만 지금은 하루 두 갑 이상을 태워야 속이 뚫린다고 했다. 그는 “당을 이 지경까지 만든 핵심인물들이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당의 소중한 자산이다. 지금 초·재선 중에 대안이 누가 있나?”라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변경, 경제민주화 수용 등을 당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새누리당이 한때 ‘보수’라는 단어를 안 썼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걸 ‘경제민주화’라고 했다. 그러면서 빨간색 윗옷에 반바지를 입었다. 그래야 시선을 끌고 이기는 줄 알았다. 코미디 아니냐? 정치는 펀(Fun)이 아니다. 진지한 게임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정체성도 잊은 채 혼란을 자초했다.”

-‘알아서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던 분들이 빠질 것 같지 않은데.

“내가 김무성, 홍준표, 김문수, 유승민, 황교안 이런 분들 참 좋아한다. 보수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분들이 작은 것에 집착하면 게임이 추해진다. 소아를 버리면 대중이 알아준다. 그걸 왜 안 믿고 다들 초조해하고 조강특위가 자신에게 칼을 휘두른다고 생각하나.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칼을 향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내가 그분들에 대한 질타를 막고 있다.”

-박근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당내 계파갈등이 더 심화되는 거 아닐까.

“서로 의심을 풀기 위해서는 가면을 벗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비밀리에 문 걸어닫고 난상토론하자는 거다. 이 토론 없이 친박·비박이 원하는 대로 한 번 해볼까? 비박이 원하는대로 친박 쳐내고 친박이 원하는대로 비박 쳐내면 나 하나 남는다. 전원책이 당수된다. 비례대표 20~30명 데리고 꼬마정당 하나 만들어볼까? 그걸 원하면 그렇게 하겠다.”

-‘현실정치’ 경험이 없어서 잘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치비평을 28년 해봤다. 나중에는 뉴스앵커까지 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나 앵커는 뉴스 가치판단을 한다. 이건 가치판단을 하는 중요한 정치행위다. 물론 현실정치와는 다르다. 하지만 입당을 하고 후보가 되고 출마하고 배지 달아야만 정치를 잘할 수 있나? 배지 달고 싶었으면 진작에 달았다.”

-당내 지지세력이 있어야 조강특위도 힘 있게 갈 수 있을텐데.

“한국당에 가까운 의원들 많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내 편 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소관계가 조강특위 활동이나 내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무슨 ‘전원책 계파’ 만들 일 있나. 그런 일 전혀 없다. 하지만 내가 사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반발을 한다면 그건 한국당이 자기 무덤 파는 짓이다.”

-당내 분위기를 봤을 때, 조강특위 잘될 것 같나.

“모두 위기의식은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당협위원장들이 전부 사표 쓰고 조강특위가 이렇게 설치고 있어도 가만히 있는 거 아니겠나. 타임테이블로 봐도 지금이 마지막이다. 내년 4월에 재·보궐선거가 있다. 그 이후에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새로 당권을 잡은 사람이 조강특위 만들고 공천위 만든다? 세상이 관심은커녕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눈치 안 본다고 했는데 발언이 조심스럽다.

“추상적인 표현이라는 거 안다. 하지만 구체적인 표현을 쓰면 난리가 난다. (웃음) 다만 추상적인 표현이라도 듣는 본인들은 다 안다. 이번 조강특위는 당의 면모를 완전히 바꾸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워딩 하나에도 민감하다. 불필요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다. 내가 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이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외부인사가 와서 툭 던진 한마디가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나.”

“둔한 칼은 날카롭지 않지만 모든 것을 벤다”

말은 막힘이 없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무리 전권을 가지고 있다 해도 칼을 휘두르긴 쉽지 않다. 전 변호사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는 조강특위가 칼을 뽑아야 한다. 앞으로 엄청나게 비판·비난이 쏟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둔한 칼’이라 칭하며 “둔한 칼은 날카롭지도 유연하지도 않다. 그리고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둔한 칼은 모든 것을 벤다”고 말했다.

1990년 정치평론을 시작한 이후, 그가 현실정치에 참여한 건 딱 한 번이다. 2007년 이회창 무소속 후보 대선캠프에서 정무특보를 맡았고, 2008년 자유선진당(이회창 총재 당시) 대변인을 ‘3일’ 맡았다. 당시 총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사흘 만에 관뒀지만 전 변호사는 “이 총재님이야말로 진짜 보수”라며 “총재님도 나를 아껴주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원책이 정치 욕심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그 질문에 “99% 그런 일은 없다”고 답해왔다. 100%가 아닌 이유가 뭘까. 그는 “당이랑 상관없는 사람이, 정치도 안할 사람이 왜 들어와서 칼질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1%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배지에는 관심이 없다. 시험 쳐서 대통령 뽑는다고 하면 몰라. 그 시험을 쳐볼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인터뷰 말미에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지금 한국당에는 자신을 희생하려는 사람이 없다. 저쪽에서 왜 ‘노무현 노무현’ 그랬겠나. 낙선할 거 알면서도 계속 부산에서 출마했다. 그게 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우리는 언제까지 계파정치만 하고 있을 거냐. 그런 시대는 갔다. 우리가 살려면 스스로를 좀 봐야 한다. 내가 정말 거울 하나씩 다 선물해주고 싶다.”

글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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