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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한국형 걸그룹의 '적통' 미미시스터즈 데뷔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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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이다. 트레이드 마크는 선글라스와 가발. 그리고 총천연색 복고풍 의상. 아마 이쯤만 설명해도 눈치 빠른 이들은 짐작했을 것이다. 능청스러운 카리스마, ‘친근한’ 가창력, 해학적이고 위트 넘치는 가사. 듀오 뮤지션 미미시스터즈(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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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주년을 맞은 미미시스터즈는 ‘우리 자연사하자’라는 타이틀로 새 앨범을 발표하고 기념 공연을 갖는다. / 미미시스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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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잊히기 힘든 강렬한 첫인상으로 나타났던 이들이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요즘 세상에 10년 가지고 어디다 뭘 내밀겠느냐”고 민망해 하면서도 “‘저렴한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산전수전 겪어온 세월”이라고 익살스럽게 대꾸했다.

미미시스터즈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미니앨범 <우리, 자연사하자>를 10월 26일 발표한다. 1집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 2집 <어머, 사람 잘못 보셨어요>, 그리고 지난해 발표했던 디지털 싱글 ‘주름 파티’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보여줬던 유머·공감 가득한 음악적 내러티브를 이번에도 이어간다. 다음달 개최할 10주년 공연 역시 같은 타이틀로 열린다.

유쾌한 기발함은 미미시스터즈의 인장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왜 다른 것도 아닌 ‘자연사’가 화두가 됐을까. 아직 한창일 나이에 말이다(사실 이들은 공식적으로 본명도, 얼굴도, 나이도 공개한 적이 없다. 그저 큰 미미, 작은 미미로 칭할 뿐이다).

“올 초에 굉장히 황망한 소식을 접했어요. 음악하던 친구인데 30대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떠났거든요. 척박한 음악 환경에서 과로사로 내몰린 것 같았어요. 어디 그 친구뿐일까요. 조금만 둘러봐도 도처에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 많잖아요. 저희끼리 술마시다가 ‘우린 자연사하자’고 격려 비슷한 다짐을 했죠.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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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작가가 그린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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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국어 버전으로 발표… 캠페인송 되길

그런 다짐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생각이 ‘우리, 자연사하자’라는 곡으로 이어졌다. 진지하고 무거운 접근 대신 미미시스터즈다운 방식으로 캠페인 송을 만들기로 했다. 이들은 곡 작업을 위해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게이트키퍼(자살위험에 처한 주변인의 신호를 인식해 돕는 것) 교육을 받고 수료증까지 발급받았다. 취지가 좋다며 의기투합한 웹툰 작가 양경수는 기념 일러스트를 그려줬다.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가슴 뛰는 일이 꽤 많아/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나 같은 이상한 애도 만나지/ 5분 뒤에 누굴 만날지 5년 뒤에 뭐가 일어날지/ 걱정하지 마 기대하지 마/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야/ 혼자 먼저 가지마 우리 자연사하자/ 너무 열심히 일하지는 마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너무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지 마 일단 내가 살고 볼 일이야/ 아플 땐 의사보다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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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인도에 떨어져 있던 미미시스터즈는 매주 ‘미미식탁’이라는 이름으로 각자가 먹은 음식을 편집해 SNS에 올리며 팬들과 소통해 왔다.


곡은 한국어 버전뿐 아니라 일본어, 영어 버전으로까지 녹음해 함께 싣는다. 영어 제목은 ‘Let’s all die naturally’, 일본어 제목은 ‘みんな しぜんにしのう’. 친구의 지인, 지인의 친구를 통해 인연이 닿은 10여명의 영어·일어 원어민에게서 번역이며 발음지도까지 십시일반 도움을 받았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죠.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좋은 메시지를 나누는 일에 동참하시는 거라고 뻔뻔하게 밀고 나갔어요. 평소 음악 들을 여유가 없는 분들이, 먹고사는 데 바빠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는 분들이 쉬어가는 기분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는 11월 9일에는 서울 성산동 문화비축기지에서 디너토크쇼를 연다. 건강한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놓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여기에 이들이 준비한 맛깔난 음악과 음식이 곁들여진다. 한국 최초의 걸그룹 김시스터즈부터 트와이스에 이르기까지 걸그룹 계보를 잇는 대표곡들을 메들리로 들려줄 예정이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이시스터즈의 멤버 김희선과 미미시스터즈가 꾸미는 무대는 비장의 카드다.

큰 미미와 작은 미미. 크고 작다는 구분이 ‘키와 신체 특정 부위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은 진작에 공공연하게 밝혀온 이야기다. 처음 만난 것은 15년 전 연말 한 막창집에서였다. 각기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극 연출을 하던 이들은 첫눈에 통했고 곧 절친이 됐다. “술 사준다”는 말에 덥석 장기하의 무대에 코러스로 올라가 선글라스에 가발 차림으로 로봇같이 흐느적거리는 춤을 췄던 것이 졸지에 데뷔로 이어졌다. 청중들의 폭발적 반응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음악방송 <이하나의 페퍼민트>(KBS)에 출연했고 각종 페스티벌에 불려다니면서 일이 커졌다. 장기하와 함께 2년을 활동하다 2010년 서로 간에 음악적 집중을 하기 위해 ‘합의이혼’했다. 이듬해 1집 앨범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독립했다.

“한국형 걸그룹 적통 계승”

미미시스터즈는 자신들이 한국 전통의 걸그룹 스피릿의 적통을 계승했다고 자부한다. 이름뿐 아니라 음악적 색깔에서도 1950~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여러 ‘시스터즈’ 선배들에 대한 흠모가 나타난다. 이번 공연에 이시스터즈 김희선을 게스트로 초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2016년에는 김시스터즈의 멤버였던 김숙자와 <가요무대>(KBS)에 같이 섰으며, 이난영 탄생 100주년 헌정 기념공연도 함께했다. 1950년대 미국에까지 진출해 활약했던 김시스터즈는 작곡가 김해송과 ‘목포의 눈물’ 주인공 이난영 사이에서 난 딸들이 결성한 걸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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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시스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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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이래도 다 같은 걸그룹은 아니다. 이들은 ‘알바’와 야근을 밥먹듯 해온 생활인으로, 뮤지션으로 살았다. 큰 미미는 대기업계열 문화지원센터에서 3년 반 동안 일하다 얼마 전 퇴사했다. 작은 미미는 그 사이에 결혼과 출산을 해 일곱 살 난 아이를 두고 있으며 틈틈이 쓴 드라마 대본으로 올 초 지상파 방송에 단막극으로 데뷔했다. 지난해엔 남편이 인도 주재원으로 발령나는 바람에 두 미미는 불가피하게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거리에서 원격통화로 10주년 작업을 준비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작은 미미는 귀국해 앨범을 녹음하고 공연하는 데 필요한 한 달간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연로한 부모님을 애 봐달라고 인도까지 오시게 했다”고 말했다. 작은 미미의 아버지는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다.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SNS 라디오로 생방송을 하며 만나온 팬들은 미미시스터즈를 움직이는 핵심 엔진이다.

“팬들이 아니었다면 10주년을 기념하는 건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팬들이 저희 의견과는 상관없이 10주년 행사를 어떻게 할 건지 열 띠게 회의를 하시더라고요. 텀블벅(펀딩 플랫폼)을 통해 공연을 준비하자는 아이디어를 비롯해 온갖 조언을 다 해주셔서 이만큼 올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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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의 백댄서로 활동하던 시절의 미미시스터즈.


지난해 미미시스터즈가 발표했던 ‘주름파티’는 ‘주름이 가득한 내 얼굴에 뽀뽀할 수 있겠니’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신나고 즐겁게 늙어가자는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때문에 일부 팬들은 “지난해엔 늙고, 올해는 자연사니 앞으로는 환생하거나 저승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냐”며 재기발랄한 걱정을 늘어놓기도 한다.

인터뷰 말미에 미미시스터즈는 “사는 것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자연사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에게 ‘음악적 자연사’가 뭔지 물었다.

“계속 음악을 하면서 더 많은 분들과 만나는 거죠. 우리가 뭔가를 만들면 듣고 잔소리도 해주시고, 또 우린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걸 만들고 시도하는 거예요. 이번처럼 공연을 할 때도 관심 갖고 보러 와주시면 좋겠어요. 퇴직금 다 부었는데 안 날리게 해주시면 더 좋겠고요.”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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